‘머니 게임’으로 스타 영입 세계적 구단 성장시켜…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 비난 빗발치자 구단 매각 발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구단 첼시 FC도 후폭풍을 맞고 있다. 첼시 구단주는 러시아 출신 부호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그는 축구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러시아가 세계의 '문제아'로 공격을 받으며 아브라모비치의 축구계 입지도 좁아졌고 결국 첼시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날 결심까지 했다.
#"첼시 매각한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의 여파
아브라모비치는 석유사업을 통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부호가 됐다. 그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첼시 역시 '검은 돈'으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구단주인 아브라모비치는 첼시와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구단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겠다는 내용의 성명문을 발 빠르게 발표했다. 그는 지난 2월 27일(영국 현지 시각)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첼시 구단주가 된 지난 약 20년간 나는 그저 구단의 '관리인'이라고 생각해왔다"고 밝혔다. 구단 경영권을 산하 자선재단인 첼시 파운데이션에 넘기고 브루스 벅 회장과 이사들이 운영을 맡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비록 구단 소유권과 구단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운영권을 넘김으로써 자신에게 향하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아브라모비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3월 3일 아브라모비치는 또 다시 성명을 내 구단 매각 의지를 밝혔다. 자선재단을 설립해 매각 비용을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에게 기부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지난 19년간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것이다.
매각 작업은 적법한 절차로 이뤄진다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유럽 빅클럽 매각의 경우 기존 소유주가 부채까지 떠넘기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아브라모비치는 "대출금을 갚을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잉글랜드 중상위권 팀에서 유럽 정상으로
첼시 구단은 1905년 창단해 한 세기가 넘게 운영되고 있다. 이들의 긴 역사는 아브라모비치의 인수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다. 1960~1970년대 짧은 중흥기를 거친 첼시는 아브라모비치 인수 이전까지 프리미어리그 중상위권을 오가는 팀이었다. 종종 챔피언스리그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루드 굴리트(네덜란드), 지안프랑코 졸라(이탈리아), 디디에 데샹(프랑스) 등 슈퍼스타들이 활약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서른 줄에 접어들어서야 첼시에 입단했다. 당시 리그를 주도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아스널 등과 비교하면 부족한 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브라모비치의 인수 이후 첼시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인수 직후 20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출하며 에르난 크레스포(아르헨티나), 클로드 마켈렐레(프랑스),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아르헨티나) 등 스타들을 수집했다. 이후로도 압도적인 재력을 바탕으로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2004년 이적), 마이클 에시엔(가나, 2005년 이적), 안드리 셰브첸코(우크라이나, 2006년 이적), 페르난도 토레스(스페인, 2010년 이적) 등 축구계를 놀라게 할 대형 이적을 성사시켰다.
인수 직후 시즌인 2003-2004시즌 리그 3위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지만 첼시의 새 구단주는 만족할 줄 몰랐다. 기존 감독을 잘라내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사령탑이던 조세 무리뉴 감독을 불러들였다. 그렇게 무리뉴와 함께 첼시는 50년 만에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2012년에는 염원하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지난 19년간 아브라모비치 체제에서 첼시가 들어 올린 우승컵은 20여 개에 이른다.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아브라모비치에게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았다. 한때 그는 구단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인내심 없이 감독을 빨리 경질시키는가 하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수를 골라 영입해 팀을 해치기도 했다. 그의 구단 인수 이후 첫 10년간 아홉 번의 감독 교체가 있었다. 아브라모비치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영입생 셰브첸코와 페르난도 토레스 등은 첼시 이적 후 부진한 경기력으로 팀을 혼란에 빠뜨렸다.
#'슈가 대디'가 남긴 유산
그의 등장 이후 축구계 판도가 바뀌는 등 영향력이 막강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가 첼시를 인수할 당시 축구계에는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없다'는 격언이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는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으로 첼시를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구단으로 성장시켰다.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은 물론 첼시의 브랜드 파워 자체를 변모시켰다. 첼시는 2021년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포츠 구단 순위에서 25위를 차지했다. 첼시보다 높은 순위의 축구클럽은 6개 구단에 불과했다.
그가 축구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선수 구매에 지나치게 돈을 쓴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현재 이적 시장에서 '머니 게임'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첼시의 행태에 비판적 자세를 취하던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등 명장들도 이후에는 결과와 성공을 위해 투자가 필요한 시대가 됐음을 인정했다.
아브라모비치의 단점으로 지적된 구단 운영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것도 구단주 생활 후반부에는 개선됐다.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운영 권한 상당 부분을 전문가인 구단 수뇌부에 넘겼다.
첼시의 성장은 축구계에서 하나의 모델이 됐다. 첼시의 성공 이후 대부호의 인수 후 구단이 성장해나가는 사례가 뒤따랐다. 또 다른 ‘슈가 대디’를 구단주로 맞이한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 파리 생제르망(프랑스) 등은 현재 유럽 축구를 선도하는 엘리트 구단이 됐고 최근 사우디 자본에 인수된 뉴캐슬 유나티이드(잉글랜드)가 뒤를 따르려 하고 있다.
아브라모비치의 축구와 첼시 구단에 대한 사랑만큼은 인정받고 있다. 그는 매각 의사를 밝히며 "정말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이었다. 스탬포드브리지에서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 19년간의 '아브라모비치 시대'를 끝낸 첼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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