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야, 아빠 끝내기 홈런쇼 봤니?”
8월 23일, 이곳 시간으로 오전에 셋째 딸 미미가 태어났습니다. 몸무게 7파운드(약 3.2㎏)의 건강하고 사랑스런 아이였어요. 사내아이들만 봐왔던 저로선 미미가 세상 밖으로 나와 제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여자아이라 그런지 더 예쁘고 여린 모습이라 안는 것조차 조심스럽기만 하더라고요. 아내와 상의 끝에 미미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혜빈’과 ‘소희’ 중에서 ‘소희’로 결정하고, 이틀을 꼬박 병원 소파에서 지내면서도 아내와 딸을 쳐다보며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달뜬 마음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트레이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더블헤더 경기를 앞둔 오전 10시 30분이었어요. 매니 악타 감독의 부탁으로 전화를 했다는 그는 ‘혹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얼마나 급박하고 어려운 상황이었으면 출산 휴가를 받고 병원에 있는 선수한테 전화를 했을까요? 아내한테 물어보니까 자신은 걱정하지 말고 야구장으로 가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서둘러 야구장으로 향했고, 11시 30분에 도착해서는 1시간 동안 급하게 몸을 풀고, 오후 1시 경기에 나가게 된 겁니다.
1차전 9회말에 터진 끝내기 홈런은 제 인생의 첫 끝내기였고, 팀한테 큰 도움이 된 홈런이었으며, 무엇보다 병원에서 TV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아내와 딸에게 바치는 ‘선물’이었습니다. 1차전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까 많이 울더라고요. 기쁨의 눈물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름 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낸 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끝내기 홈런의 의미보다 딸이 태어난 다음날 멋진 홈런으로 경기를 마무리한 상황이 아내 입장에서도 너무 드라마틱했던 거였죠.
그리고 2차전. 솔로홈런과 안타를 터트리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8회말 타석에서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옆구리 통증을 감지하게 됐어요. 스윙을 하다 멈추는 순간에 왼쪽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지는데, 마치 바늘로 살을 콕콕 찌르는 듯한 엄청난 아픔이 뒤따랐습니다.
옆구리 통증을 느끼고 아내와 딸이 있는 병원으로 퇴근을 하는데 참, 많은 생각들이 오갔습니다. 1차전에선 끝내기 홈런으로 큰 기쁨을 느끼게 하더니 2차전에선 생각지도 못한 옆구리 통증으로 또 다른 절망감을 맛보게 하고…, 하루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제대로 맛보게 된 부분들이 너무 영화 같아서 자꾸 허벅지를 꼬집어 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라면 그 통증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엄지손가락 부상 후 급하게 재활을 서둘렀고, ‘빛의 속도’로 다시 타석에 들어섰으며, 딸이 태어났고, 새 생명을 만났다는 벅찬 감격과 수면 부족, 끝내기 홈런의 짜릿함 등등이 순식간에 벌어지면서 제 몸이 잠깐 놀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심하라고, 천천히 가라고 몸에서 신호를 보냈다며 위안을 삼기도 했어요.
올해 유난히 우여곡절의 시간들을 ‘자주’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전 가진 게 많은 사람이고,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클리블랜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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