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서울시장 야권후보단일화에 성공한 민주노동당 이상규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다른 후보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야권이 선거연합에 합의, 한나라당 후보와 1 대 1 대결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어느 정당도 이견이 없다. 다만 어떻게 야권 대표선수를 뽑을 것인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단적으로 ‘통합경선이냐, 경선 후 통합이냐’가 가장 큰 쟁점이다. ‘통합경선론’은 야4당과 정치권 밖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려는 후보들을 한데 모아 경선을 진행하자는 구상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상 선거인단이 참여하는 경선은 정당 내에서만 가능하다. 이에 따라 통합경선론이 채택될 경우 1차 컷오프와 최종 경선 모두 여론조사 경선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또 최종 경선에는 당세가 약한 정당이나 정치권 밖에선 각각 1명씩의 후보가, 민주당에선 복수의 후보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경선 후 통합론’은 각 당별로 자체 후보를 먼저 뽑은 뒤 후보단일화를 시도하자는 구상이다. 이 경우 1차 컷오프에 해당하는 당별 경선은 당원 투표나 국민참여경선(당원 투표 + 비당원 선거인단 투표), 완전국민경선(당원·비당원 구분 없는 선거인단 투표) 등으로 진행하고, 최종 후보단일화는 여론조사 경선을 통하게 된다. 최종 경선에는 당별로 1명씩의 후보만 진출하게 된다.
‘통합경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형식이다. 이는 당세가 취약한 정당 후보나 정치권 밖 인사들을 끌어들이기에 좋고, 최종 경선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이 방식에선 민주당 지지층의 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난립 양상인 민주당 출마 희망자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경선 후 통합’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비롯해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각 당별 후보 경선이 선거인단 투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후보 검증에 유리하고 잘 될 경우 경선효과를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당세가 약한 정당에 불리하고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기도 어렵다. 또 민주당 후보 경선마저 흥행에 실패할 경우 나중에 통합후보를 선출하더라도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각각의 방식이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각 당과 출마 희망자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당장 야4당과 ‘혁신과 통합’의 통합후보 추진 협상 초기부터 기 싸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혁신과 통합’은 야권 통합후보 선출 방식으로 민주당은 다수의 후보를 내고,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 세력은 1명씩 후보를 내 경선을 치르는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상임이사도 이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민주당에선 “민주당만 여러 후보가 나가면 다른 정당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며 각 당별로 후보 1명씩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 같은 입장차는 통합후보 선출을 위한 ‘룰 싸움’이 야권 선거연합에 최대 분수령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게다가 야권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이번 재·보선 후보등록은 10월 6~7일. ‘통합경선’이든 ‘경선 후 통합’이든 아무리 늦어도 9월말까지는 최종 경선 진출자가 가려져야 한다. 야권이 추석 전까지 ‘경선 룰’에 합의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선 결국 통합의 주체들이 현재 야권이 처한 위기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느냐, 얼마나 기득권을 포기하고 헌신할 자세가 돼 있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예상치도 못했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부패 스캔들은 야권의 재·보선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곽 교육감이 진보 성향인 데다 그 자신이 진보 진영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당선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곽 교육감 스캔들 때문에 국민들이 야권의 후보단일화를 매관매직으로 받아들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야권 통합후보 추진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이번 재·보선이 갖는 엄중한 의미를 외면한 채 서로 이해타산을 따진다면 남는 것은 참담한 패배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