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무개 씨가 중국 연길에 투자 상담건으로 방문한 이맹희 씨를 저녁 만찬에서 만나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이 씨는 이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자신이 이맹희 씨의 서자라고 말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
정 씨와 박 씨가 이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4월경이었다. 당시 이 씨는 서울 광진구에서 쌀눈쌀 판매사업과 막걸리를 제조·판매하는 ‘J 글로벌’의 회장이었다. J 글로벌은 농협이나 생산지로부터 원곡을 공급받아 자신들의 특허기술로 쌀눈쌀을 제조해 대리점을 통해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또 이 특허 쌀눈쌀로 프리미엄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J 글로벌은 이 씨의 아내인 고 아무개 씨와 고 씨의 오빠가 전·현직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이 씨와 함께 회사를 경영했다. 정 씨와 박 씨는 각각 건강식품 제조·판매 회사인 C 사의 대표이사와 CEO였다. 두 사람은 J 글로벌과 사업상 제휴 및 대리점 분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인의 소개로 이 씨를 만나게 됐다.
박 씨에 따르면 이 씨는 항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첫마디는 “나는 재벌가의 서자다”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 씨는 두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도 역시 자신이 이맹희 씨의 숨겨둔 자식이고, CJ그룹 이재현 회장과는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또 이 씨는 “재현이와는 같이 경복고를 다니며 공부한 사이이다. 재현이는 고려대에 진학했고, 나는 서울대에 진학했다. 이 때문에 왕회장님(이병철 회장)께서 나를 무척 신임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자신이 수백억대 현금과 주식, 수천 점의 그림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조 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이 씨가 자신을 ‘이맹희 씨의 서자’라고 소개하며 이맹희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더라. 당시엔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박 씨 일행은 이 씨의 말을 믿고 2010년 4월 15일 J 글로벌과 안산지역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이어 같은 해 6월경 박 씨는 J 글로벌과 보증금 5억 원에 물품대금 1억 원 등 총 6억 원에 프리미엄 막걸리의 서울·경기·인천 총판권 계약도 맺었다. 이후 J 글로벌은 박 씨 일행에게 입금을 독촉하며 만일 조속히 입금시키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며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C 사는 우선 2억 3000만 원을 J 글로벌 회사 통장으로 입금했다고 박 씨는 주장했다.
그런데 그해 8월경 박 씨가 계약금을 입금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J 글로벌의 사장을 비롯해 직원들의 퇴사가 이어지는 등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돌아갔다고 한다. 곧이어 박 씨는 J 글로벌 전·현직 직원들이 임금체불로 이 씨와 임원진을 고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박 씨는 불안한 마음에 J 글로벌 김포공장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이미 공장은 폐쇄됐고, 본사 사무실도 닫혀 있었다. 그땐 이미 회사는 온라인상에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였을 뿐이었다.
박 씨는 100여 개에 달하는 대리점 총판 계약금과 제품 판매 대금이 대리점으로부터 매달 꼬박꼬박 J 글로벌로 입금되는 상황에서 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의문은 J 글로벌의 전 직원이자 이 씨의 측근이었던 현 아무개 씨를 통해 풀렸다.
J 글로벌의 창립멤버이자 이 씨의 측근인 현 씨는 8월 31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이 씨의 사기행각에 대해 상세한 얘기를 들려줬다. 현 씨는 우선 자신과 이 씨의 인연부터 말했다. 지인의 소개로 이 씨를 알게 된 현 씨는 이 씨가 J 글로벌을 설립하기 전 4개월여 동안 수행원 역할을 하며 이 씨를 옆에서 보필했다. 이후 이 씨가 “삼성 식구들을 위해 별장 부지를 보러 다녀야 한다”는 말에 현 씨는 이 씨와 함께 2008년 10월경에 지방으로 향했다.
▲ 정 씨와 박 씨가 이 씨를 상대로 낸 고소장(왼쪽)과 J 글로벌 등기사항전부증명서. 회사 자본 총액이 10만 원에 불과하다. |
이 씨의 지방 투어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전남 장흥군 노력도라는 섬에 사업부지를 가계약해야 한다며 지인으로부터 계약금 명목으로 2000만 원을 받았다. 이후 가계약은 파기됐고 사업은 흐지부지됐다. 결국 이 씨의 지인만 돈을 날린 셈이 됐다. 이후 이 씨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지인의 돈을 갚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009년 2월을 끝으로 지방투어를 마치고 헤어진 두 사람은 2009년 J 글로벌에서 다시 만났다. 이 씨가 회사를 설립하고 현 씨를 부른 것이다. 그러나 이 씨와 다시 만난 현 씨가 본 것은 이 씨의 방만한 회사 운영과 자금 횡령 및 사기 행각뿐이었다.
J 글로벌은 전국에 대리점을 분양하며 100여 명으로부터 계약금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 씨는 “투자자로부터 200만 원에서 300만 원씩 계약금을 받고 대리점 운영권을 줬는데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수천만 원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현 씨는 “이렇게 들어온 돈은 이 씨와 부인 고 씨, 그리고 고 씨의 오빠가 관리해 총 금액이 얼마인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심지어 현 씨는 “이 씨가 투자자로부터 선수금 및 계약금으로 받은 돈을 회사 운영에 사용하지 않고 모두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며 이 씨의 횡령 의혹을 주장하기도 했다.
현 씨는 임금체불 얘기도 꺼냈다. 그는 “J 글로벌에서 일을 시작하고 지난 2010년 3월 회사를 나올 때까지 제대로 월급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현 씨는 김포공장의 특허 기계에 대해 가압류 조치를 취하고 경매에 부쳤다. 현 씨는 “그나마 나는 이런 조치를 취했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돈 한 푼 못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 씨는 회사와 계약을 맺은 업체들에게 제대로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31일 기자는 J 글로벌의 광고 대행을 맡았던 광고대행업체 대표 A 씨와 통화했다. 이 씨는 A 씨에게도 자신이 재벌가의 일원임을 자랑했다고 한다. A 씨는 “J 글로벌이 2010년 3월부터 4개월간 일간지에 6000만 원 상당의 광고를 게재했다. 하지만 이 씨는 이 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광고대금을 신문사에 지급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후 A 씨는 이 씨에게 대납한 광고대금을 요구했으나 이 씨는 그때마다 “기다려라. 좋은 일 있다. 지금 투자하는 곳에서 곧 돈이 나온다”고 핑계를 대며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결국 A 씨가 이 씨로부터 받은 돈은 모두 1500만 원에 불과했다.
이 씨의 사기 행각은 회사에서뿐만 아니었다. 박 씨가 회사로 찾아간 날 박 씨는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봉사단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은 은퇴한 국가대표출신들이 모여 장애인들과 불우 학생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단체다. 그런데 이런 단체와 이 씨가 무슨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2010년 8월 이 씨는 지인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B 처장을 만났다. 이 씨는 B 처장에게도 역시 “신세계 이명희 회장이 고모다”며 자신을 삼성 패밀리로 소개했다. 한창 얘기가 오가던 중 ‘함께하는 사람들’이 그해 8월말에 장애인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회 얘기를 들은 이 씨는 “장애인 마라톤 대회에 우리가 메인스폰서가 돼 주겠다. 대신 우리 회사 홍보를 해달라”고 B 처장에게 제안했다. 자금 운영이 여의치 않은 봉사단체에게 메인스폰서 지원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은 이 씨의 말을 믿고 행사를 준비했고, 약 9000만 원의 행사비용을 지출했다. 이후 대회가 임박해 행사비용을 치러야 물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B 처장은 이 씨에게 행사비용 결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씨는 “돈 몇 푼 되냐. 대회 후에 지급하겠다”며 약속한 행사비용을 주지 않았다.
결국 2만여 명을 초청하려 했던 행사는 규모를 대폭 축소해 5000~6000명을 초청하는 선에서 치러졌고, 9000만 원 상당의 행사비용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두 지불해야 했다. 물론 대회가 끝난 후에도 이 씨로부터 지원금은 없었다. 삼성전자에서 TV를 지원받아 주겠다는 이 씨의 말도 모두 거짓이었다.
이 씨는 ‘대형병원 VIP실 먹튀’ 사기 행각도 벌였다. 2010년 10월경에 서울 강남의 Y 대학병원에서 경추디스크 치료를 받으며 VIP실을 이용한 이 씨가 그해 11월경 병실비 3000여만 원을 떼먹고 도망간 것이다. 이 씨는 Y 병원에서도 자신이 ‘재벌 패밀리’임을 강조했다. 이와 동시에 이 씨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대회에 대회장으로 이름이 찍힌 브로슈어를 보여주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병원 측에 과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병원 측에서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이 씨가 도망간 뒤 병원에서는 난리가 났고, 병원은 브로슈어를 보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전화해 이 씨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이후 ‘함께하는 사람들’은 박 씨에게까지 이 사실을 전해졌다. 이 일로 병원 내부에서는 문책성 징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이 씨로부터 우리만 사기당한 줄로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 씨의 사기 행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박 씨와 정 씨는 이 씨와 그 일가족을 검찰에 고소했고, 지난 8월 30일 박 씨는 이 씨와 서울 광진경찰서에서 대질심문을 벌였다.
박 씨 등은 이 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 진술하며 이 씨가 ‘재벌가 패밀리’임을 사칭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날 이 씨는 경찰서에는 재벌가의 서자라는 얘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고 박 씨는 전했다. 이와 관련 박 씨는 이 씨의 신분을 CJ 비서실 통해 확인한 결과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고소인들이 억지 주장” 인터뷰
기자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허위사실 유포·사기·횡령 등 갖은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아무개 씨와 전화로 인터를 했다.
- 박 씨와 정 씨의 고소로 얼마 전 경찰서에서 대질심문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박 씨가 쌀눈쌀 대리점 사업을 하겠다고 와서는 막걸리 사업까지 하겠다고 여기저기 돈을 끌어 모아 오히려 우리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해명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 박 씨가 제기한 ‘재벌가 패밀리’ 사칭은 어떻게 된 것인가.
▲개인적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회사 건과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 그럼 박 씨의 주장이 거짓이란 말인가.
▲사실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 두 사람이 내연관계다. 박 씨가 정 씨를 이용해 많은 돈을 탕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 때문에 고소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알고 있나.
▲개인적인 질문에는 답변 않겠다고 말했다.
- Y 대형병원에서 진료 받은 적 있나.
▲이만 전화 끊겠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