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계2구역 재개발 예정지 모습(위)과 조감도. |
지난 8월 19일 서울북부지방검찰청 형사5부는 서울 상계2구역 재개발 사업의 정비업체 선정과정에서 조합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정비업체 대표 신 아무개 씨와 이 과정에서 자금을 전달하고 이권을 챙긴 혐의로 조직폭력 S파 두목 김 아무개 씨(55)를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은 또 이들로부터 정비업체 선정대가로 약 4억 2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합장 김 아무개 씨(56)도 불구속 입건했다. 정비업체 대표 신 씨는 뇌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폭력조직 두목이 상계2구역 재개발사업의 정비업체, 시공사, 설계업체 선정과정에 개입하여 부당한 돈 거래를 하고 이 대가로 이권을 챙기고 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5년 12월 16일 서울시는 상계지구를 3차 뉴타운지역으로 지정한 뒤 노후·불량주택이 밀집되고, 도로·공원 등 기반시설이 열악한 노원구 상계동 일대의 주거환경개선 및 기반시설확충을 위해 이 일대를 주거지형 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상계지구 중에서도 상계2구역 재개발 사업은 공사비만 4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재개발정비사업’이었다. 2016년까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자력2구역 111번지 일대 10만 842㎡에 장기전세주택 시프트를 포함, 아파트 2019가구를 신축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상계지구재개발사업이 공시된 뒤 많은 조합원의 기대와는 달리 상계2구역 재개발 사업은 시공사와 정비업체 선정 등을 놓고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상계2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사 및 정비업체 선정을 앞두고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검은 커넥션’의 실체에 대해 ‘괴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공개 입찰에 참여한 H 건설∙S 건설∙S 정비업체와 조합 집행부 사이에 돈이 오가고, 이 지역 폭력조직 두목 김 씨가 업체 선정을 놓고 이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였다. 조합장과 일부 대의원이 돈 몇 푼에 비리에 연루됐다는 소문은 조합원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됐다.
실제로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비리의혹에 휩싸였던 업체들은 입찰조차 하지 않고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인근 지역 재개발 사업권과 상계2구역 사업권을 놓고 시공사들 간에 ‘모종의 딜’이 있지 않았냐는 추측이 잇따랐다. 결과적으로 상계2구역의 시공사는 삼성&GS건설 컨소시엄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시공사의 공사비용이 너무 과다하게 책정됐다는 등 조합원들의 원성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정비업체 선정 과정에도 의혹은 계속 제기됐다. 지난 2010년 4월 열린 조합총회에서 S 정비업체는 J 업체와 최종 후보에 올라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최근 S 정비업체의 비리 의혹이 검찰에 의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조사 결과 S 정비업체 대표 신 씨는 정비업체 선정 대가로 조합장 김 씨에게 4억 2000만 원을 무이자 대여 형식으로 지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형태는 ‘차용’ 이었지만 사실상 뇌물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신 씨는 회사 자금 3억 7000만 원을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결과 조합장 김 씨는 신 씨로부터 돈을 받고 S 정비업체의 정비업체 선정을 돕기 위해 회계감사를 미실시하고, 부동산 거래에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최종 경쟁에서 탈락된 J 업체 관계자는 9월 1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상대 업체의 조건이 우리 회사보다 좋아 최종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에 ‘검은 커넥션’ 등 소문이 무성했지만 입찰 업체 입장에서 이를 문제 삼기는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종의 거래 뒤에 폭력조직 S파가 숨어 있었다는 점이다. 신 씨의 돈도 S파 두목 김 씨를 거쳐 조합장 김 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검찰의 자금원 추적결과 공여자금 대부분이 S 파 두목 김 씨로부터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S파 두목 김 씨는 이 대가로 향후 재개발사업과 관련된 이권을 챙기고 다른 조직폭력배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S파가 지역 재개발 이권을 노리고 재개발 사업판에 발을 들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상계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S파는 아파트 베란다 섀시 설치 사업에 개입하면서 조직의 사업 범위를 재개발 사업으로 확대했다. 개발사업 관련 각종 이권을 따내고 청부폭력을 휘두르던 이들 조직은 1990년대 초반 조직원들 대부분이 검거되면서 와해됐으나, 두목 김 씨가 출소하면서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이후 S파는 2008년 11월 상계 뉴타운 이권 사업을 노리고 지역 내의 다른 폭력조직인 S동파, 신S파와 연계했다. S파는 상계2구역, S동파는 상계3, 4구역, 신S파는 상계6구역을 맡는다는 모종의 계약을 맺고 다른 지역 폭력조직의 개입을 막는 등 연합 활동을 펼쳤다. 이때부터 S파는 상계2구역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검은 커넥션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사실 재개발 사업과 조폭의 관계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폭력조직이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형태는 대개 처음에는 섀시 사업으로 참여하다 용역업체로 궂은일을 도맡는다. 이후 ‘재개발 사업판’에서 세를 확대한 뒤 직접 조합집행부를 장악하며 업체선정 등에 개입하고 사업권 전체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검찰관계자는 “나이트클럽이나 오락실 등을 운영하며 조직을 꾸려나가는 것에 비해 뉴타운으로 선정된 지역에서 시행사와 브로커 관계를 형성하거나 용역업체 관계를 맺으면 수십억에서 수 백억 원에 달하는 커미션을 챙길 수 있다. 이것이 조폭들이 재개발 지역에서 이권을 탐내는 이유다”고 말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재개발 장악하려 조직끼리 손잡기도
지난 1989년 10월 서울 상계동 일대를 지역기반으로 이 지역 출신들로 결성된 S파는 일본 야쿠자식 행동강령과 잔인한 폭력을 내세워 세를 확장해 나갔다. 당시 상계동에서 대여섯 개의 단란주점을 운영하면서 조직 운용자금을 마련하던 S파는 아파트출입문 보조키 설치, 베란다 섀시 설치 사업 등을 하며 재개발 사업 이권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91년 1월 초 서울 중계지구 개발현장에서는 상가건축 조합장 김 아무개 씨의 사주로 6억 1500만 원을 받고 조합장 반대파인 A 부위원장을 생선회칼 등으로 난자해 전치 12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청부폭력을 저질렀다.
1994년 S파 두목 김 씨와 조직원 23명이 반대파 행동대원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조직이 와해됐으나 2007년 7월께 대부분 출소해 조직을 재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에도 S파는 도시 재개발사업의 이권을 독점하기 위해 서울 상계지역 3개 폭력조직과 연합세력을 결성해 활동하다 경찰에 무더기로 검거되기도 했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