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오후 경북 구미시 금오공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과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안철수 돌풍이 분다. ‘6일 천하’로 서울시장 출마 해프닝은 막을 내렸지만 한번 불었던 바람은 쉽게 잦아들 태세가 아니다. 그의 출현을 반기는 측에서는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반면 기성정치권은 ‘간이 배밖에 나온 행동’에 대해 “거품이 곧 꺼질 것”이라며 애써 무시한다. 과연 그럴까. 안철수 신드롬을 읽기 위해선 우리가 지금까지 끼고 있었던 낡은 안경을 벗어던져야 한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프레임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내년 대선 출마 여부, 정치적 파괴력, 현실정치 극복 등의 ‘낡은’ 질문에 그는 “에이, 그럴 리가요” 하면서 간단하게 받아넘긴다. 자신의 프레임에서 볼 때 그런 질문은 곁가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질은? 그는 싸움의 판을 바꾸려고 한다. 그동안 기득권이 누려온 낡은 틀을 상식과 탈이념이라는 새로운 판으로 개조하려고 한다. 특히 싸움의 판이 바뀌면 박근혜도 대세론의 왕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안철수 현상의 촉발로 이제 대선정국은 안철수 프레임 대 기득권 프레임으로 재편되고 있다. ‘안풍’이 몰고 온 대권구도의 지각변동을 추적해봤다.
“전세난 청년실업 노령화 저출산 등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를 정치권이 제대로 해결한 게 있느냐. 그렇게 하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느냐. 아니다. 정치가 사회현안과 따로 놀고 있다. 자기들끼리 권력놀음에 빠져 있다. 관중들은 안중에도 없다. 국민들은 위에서 다 보고 있는데 못 본 척 대권놀음에 빠져 있다. 안철수 현상은 이런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다. 고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정치인으로 뽑았는데 결과를 보라. 차라리 ‘우리’(시민)가 하는 게 낫다. 안 원장이 정치적으로 무슨 능력이 있느냐. 그의 급부상은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에서 끌어내려 상식 있는 사람이 맡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안철수 신드롬을 우리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꿈틀대던 변화의 기운이 정치에 접목되면서 일어난 사회변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그가 포착한 안철수 신드롬은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더 이상 ‘군림’하는 권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보수층 일각에서는 아직도 안철수 신드롬에 대해 일시적 인기라며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안 원장에 대한 사상과 재산 검증을 통해 국민들의 허황된 이미지를 깨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이에 시중 여론은 “악성코드가 백신 검증하는 소리 하고 있다”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안철수 현상을 비난하는 기성 정치인들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안 원장이 설령 검증을 통해 비도덕적이라고 해도 지금의 정치인에 비해서는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다. 지금은 안철수 프레임에 한국 정치가 완전히 갇히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안 원장을 인신공격식으로 몰아붙이거나 비하할 경우 모두 역효과만 내고 퇴출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도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의 단일화에 대해 한나라당이 ‘좌파 단일화 정치쇼’라고 색깔공세를 편 데 대해 “내 참, ‘안 교수를 까지 마세요’라고 미리 말했는데…”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그런데 정치컨설턴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이미 지난해 안철수 원장의 부상을 예상했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정치란, 돈 조직 언론의 힘을 빌려야만 할 수 있는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의 현실은 3선, 4선 의원이 될수록, 즉 권력이 많아질수록 대권과 멀어진다. 초선 의원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안철수 씨 같은 과학기술자가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터넷과 SNS 등과 같은 디지털의 혁명에서 찾고 있다.
안철수 현상으로 촉발된 정치 패러다임의 전이는 현재의 대권 구도를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닌 새것과 헌것의 대결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안철수 신드롬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은 간에 기존 대권구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전망이다. 특히 ‘안풍’은 박근혜 대세론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계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안철수 신드롬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실망감의 또 다른 표출이라고 본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현안에 대해 일체 언급도 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 그가 책임 있는 여권의 대권주자로서 지금까지 한 것이 뭐가 있느냐. 언제나 뒷북만 치면서 여론을 쫓아다니지 않았느냐. 국민들은 이런 박 전 대표의 무책임한 행보가 ‘대권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박 전 대표가 답을 내놓기에는 때가 늦었다. 안철수 프레임은 권력을 가진 정치인 누구든 국민들 속으로 내려오라는 명령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표는 기득권 구세력으로 몰릴 일만 남았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친박진영에서는 “언론이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일단 소나기가 잦아들면 분위기가 박 전 대표 쪽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준비한 것을 보여주지도 않은 상태다”라며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친박계의 공개적인 ‘평정심’ 표출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드디어 올 것이 온 것 아니냐”며 긴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지금까지 세종시 정국 등을 거치며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변수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박 전 대표의 안철수 임팩트에 대해 “선거의 바로미터인 40대에서 단번에 첫 조사부터 안 원장이 이긴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박 전 대표가 강세였던 충청권에서도 안 원장이 더 높게 나온 것도 예상 밖의 결과다. ‘40대 중도층과 무당파’가 안 원장에게로 급속하게 쏠리고 있다. 당분간 조정기가 있겠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처음 맞는 위기다. 파격적인 대응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박 전 대표로서도 답답한 형국으로 몰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안풍’에 따른 박 전 대표의 대세론 몰락 조짐은 그가 대세론이라는 피로를 극복하고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끊임없이 국민들과 교감하는 노력을 지금까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앞서의 친이계 의원은 이에 대해 “뒤늦게 친박계에서 조기 공개행보를 주장하고 있는데 때는 늦었다. 안철수 신드롬으로 정치판의 프레임이 신-구 교체로 이미 바뀌어 버렸다. 이제 박 전 대표가 무슨 얘길 해도 모두가 뒷북으로 여긴다. 그동안 침묵만 하면서 한발 뒤로 뺀 것에 대한 반발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라고 전제하면서 “특히 안 원장은 이번에 50%의 지지율로도 5%의 지지를 받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통 큰 양보를 해 정치의 최대 미덕인 ‘자기희생’을 실현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의 희생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어떤 감동을 보여주었나. 박 전 대표는 이미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해도 양보와 희생보다는 정략적이라는 이미지가 더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안풍’이 박근혜 대세론을 허물 중대변수로 등장하면서 안철수 원장의 차기 대선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도 차기를 염두에 둔 고도의 계산이라는 정치 공학적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과연 안 원장은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을까. 안 원장의 차기대선 출마 예상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존의 낡은 프레임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이 역시 안철수 프레임으로 해석해야 답이 나온다.
안 원장을 지지한다는 여권의 한 전략 관계자는 “안철수 프레임으로 해석하면 ‘안 원장은 정치인의 권력욕에서 자유롭다’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기성 정치인들이 코웃음을 치겠지만 안철수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게 그를 정확하게 읽는 코드라고 본다. 이번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과 박원순 변호사 지지도 이런 시각에서라면 가능하다. 그가 대선전에 뛰어들지 말지의 여부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신-구 교체를 위해 대선판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또 한번 아름다운 희생을 할 수도 있다.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우리 사회 최대의 공적(구체적 대안 제시 없이 정략적으로 대권 쟁취에만 매몰된 집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명령’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권을 차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낡은 것이 새 것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역사의 진리다. 정치판은 이미 안철수 프레임이라는 외통수에 걸렸다. 헤어 나오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이 안철수 프레임의 늪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 그 탈출 방법은 단 한 가지. 하루빨리 민심의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오로지 국민의 마음만을 읽으려고 하는’ 노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단짝 P 씨가 둘 사이 갈랐다고?
▲ 윤여준 전 장관 |
하지만 안 원장도 ‘친구’ 윤 전 장관과 갑자기 거리두기를 하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정황도 포착된다. 최근 윤 전 장관을 만난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안 원장이 윤 전 장관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윤 전 장관의 정체성과 관련해) 너무 한쪽에서 공격을 하니까 해명성 발언을 하겠다고 해서 윤 전 장관이 ‘그럼 편하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랬는데 안 원장이 윤 전 장관의 용인을 넘어서는 수위 높은 비판을 했고 이에 윤 전 장관이 속이 좀 상한 것 같다. 안 원장이 나중에 어떤 경로를 통해 사과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이 그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윤 전 장관은 안 원장이 생각을 돌려서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 오면 재고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이 먼저 어떻게 할 마음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안 원장과 윤 전 장관의 관계가 어긋나게 된 배경에 측근 P 씨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앞서의 인사는 이에 대해 “안 원장과 P 씨는 몇 년간 단짝으로 지냈다고 한다. P 씨가 안 원장의 비서실장이라는 말도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안 원장에 대해 극찬을 하고 영웅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한다. 워낙 언변이 뛰어나 듣는 사람들도 안 원장을 다시 볼 정도로 P 씨가 안 원장의 급부상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청춘콘서트 등을 거치면서 안 원장이 윤 전 장관과 잦은 만남을 갖고 의지하게 되면서 P 씨가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세 사람만의 보이지 않는 미묘한 긴장 관계가 안-윤이 멀어지게 된 계기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윤여준 전 장관은 비록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오랫동안 구 여권의 정권 파수꾼 역할을 해왔지만 정치권에서는 민심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탁월한 지략가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안철수 현상을 거치면서 내심 자존심에 상처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 그가 자주 언론에 노출된 것도 “언론대응 할 사람도 없고 해서 할 수 없이 했던 것이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짓이냐 하면서 정말 부끄럽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