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참모들이 ‘오더’를 받고 전·현직 의원과 전직 검찰 간부를 주축으로 한 네거티브 대응팀을 비밀리에 가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대세론은 유효하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만난 한 친박 의원의 말이다. 그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급부상하던 초반엔 박근혜 전 대표가 타격을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 지지율은 오히려 올랐다. 이번에 정치권을 강타한 ‘안풍’이 박 전 대표 저력을 입증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추석 연휴 기간 진행된 여론조사 대부분에서 박 전 대표는 안 원장보다 우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좌관 출신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안철수라는 ‘거물’의 등장으로 ‘박근혜 대세론’에 금이 간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권에선 박 전 대표 외에 대안이 없다는 말이 공감을 얻고 있다. 한때 안 원장에게 뒤처졌던 박 전 대표가 다시 1위로 올라선 것을 보면서 야권 통합 후보가 나오더라도 ‘박근혜라면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박 전 대표 대세론은 꺾였다”면서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면 한나라당에서 새로운 후보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권 친이계에서 박 전 대표 대항마로 거론되는 정몽준 의원도 9월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박 전 대표) 지지층이 견고하다고 하는데 다르게 보면 너무 한정돼 있는 것이다. 대선이 앞으로 1년여 남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 역시 ‘박 전 대표 대세론이 무너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 원장은 특별한 활동도 없이 지지율 4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1위를 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안 원장 등장으로 선거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아성을 재확인했다고 자평하는 친박도 이러한 지적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친박 의원은 “그동안 너무 대세론에 안주한 측면이 있다. 반성 중”이라면서 “차라리 지금 ‘안풍’이 분 게 다행이다. 미리 백신을 맞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안철수 신드롬을 통해 나타난 국민들의 열망을 박 전 대표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했다.
안 원장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병 걸리셨어요?”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박 전 대표도 추석 연휴 기간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몇몇 핵심 측근들과 지금까지 세워왔던 대권 전략을 재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안 원장과 박빙의 접전을 벌이던 지난 9월 9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가능한 현장을 다니겠다”고 밝혀 지금까지의 스탠스와는 다른 광폭 행보를 예고한 바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안철수 효과다. 대세론만으론 끝까지 완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친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를 겨냥한 네거티브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구체적인 전략 수립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 자문그룹에 속해있는 한 교수는 “안 원장으로 인해 대선 레이스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기에 시작됐다”면서 “범야권과 친이계의 네거티브 공세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을 담은 보고서를 박 전 대표에게 올렸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친박 의원 역시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선 별도로 네거티브 팀을 꾸리지 않았다. 김재원 전 의원이 맡긴 했지만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능력 있는 변호사들을 ‘스카우트’해 적극적으로 BBK를 방어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엔 공식적인 네거티브 대응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고, 박 전 대표 역시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야권은 올 6월경부터 박 전 대표의 개인 사생활을 비롯한 각종 소문들에 대해 면밀히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내에서 손꼽히는 ‘정보통’ 박지원 전 원내대표, 박영선 의원 등이 주축이라고 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박 전 대표 아킬레스 건으로 여겨졌던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최태민 목사 건 이외에 새로운 것이 제법 있다고 들었다. 또한 박근령-신동욱, 박지만-서향희 부부 등 박 전 대표 친·인척들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마타도어식의 폭로로만 끝나진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표와 박지만 씨에 대한 무고 혐의로 지난 8월 24일 구속된 박근령 씨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를 변호하고 있는 조성래 전 의원을 주목하기도 한다. 조 전 의원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 단장을 맡으며 ‘박근혜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박 전 대표와의 사이가 껄끄러운 것으로 알려진 신 씨의 변호사로 조 전 의원이 선임된 것을 놓고 정가에선 ‘남다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친박에선 박 전 대표의 ‘묵인’ 아래 두 개 정도의 네거티브 대응팀이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김재원 전 의원, 율사 출신의 현역 중진 의원, 검찰 전직 고위 간부 등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 규모를 더욱 키울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은 야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것은 물론, 사정기관 관계자들과의 접촉도 강화하고 있다.
친박 내부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권력 향배에 민감한 사정기관들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유력 후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한다. 잠룡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정기관과 가까워야 고급정보들을 확보할 수 있고, 또 자신과 관련된 X파일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차기 영순위 박 전 대표와 사정기관 사이엔 이미 ‘핫라인’이 개통돼 있다는 게 정설”이라고 털어놨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선 박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상 네거티브 대응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네거티브 공격을 제대로 막기 위해선 측근들이 그 후보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내부 진영에서조차 모르는 네거티브가 나올 경우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선대위원장 맡으면 125석’
안철수 원장의 등장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한 친박 의원은 사석에서 “적어도 두 달 이상 일정이 앞당겨졌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친박 내부에선 ‘책임론’ 역풍을 우려해 박 전 대표가 총선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뤄왔다. 그러나 “대세론에 안주한다”는 지적이 높아지자 내년 총선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성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지난 8월 중순경 박 전 대표에게 올라간 이른바 ‘총선 보고서’를 접할 수 있었다. 이 보고서는 박 전 대표 참모그룹과 전직 친박 의원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박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을 포함해 총선을 진두지휘할 경우 최소 125석 이상을 따낼 수 있고, 이 경우 대권 후보로서도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제 조건은 친박이 주도하는 ‘공천’이다. 당내 대선 경선을 대비해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는 포석이 담겨 있다. 단, 병역·납세 등 엄격한 잣대를 바탕으로 공천 심사를 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보고서에 명시돼 있다. 또한 후보자들 공약 개발에도 신경을 써서 박 전 대표가 내세울 정책과 유기적인 연결을 모색할 필요성도 적혀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총선을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생각한다면 지난 여러 차례의 선거처럼 박 전 대표가 모른 척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총선 보고서대로 박 전 대표가 ‘정면 돌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박 진영에선 내년 총선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굳이 박 전 대표가 모험을 하겠느냐며 보고서 내용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친박 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보고되는 대선 전략 중 하나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 “박 전 대표가 지역구 출마 의사를 밝힌 이상, 선대위원장을 맡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선 이 보고서가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간 합의 하에 작성됐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 관심을 끈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 직계 인사들을 공천에 포함시켜 주고 총선을 지원해주는 대신,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대권 레이스에 힘을 보태주기로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