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박근혜 전 대표, 안철수 원장. |
이번 추석 여론조사의 핵심은 박근혜 전 대표와 안철수 원장과의 양자대결이었다. 3개 언론사(조선일보:박-45.2% 안-41.2%/ 서울신문:박-46.1% 안-44.3%/ 국민일보:박-49.8% 안-40.1%) 모두 박 전 대표가 1.8%~9.8%포인트가량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오차범위 안팎의 말 그대로 박 전 대표의 박빙 우세였다.
이렇듯 추석 민심은 박 전 대표의 박빙 우세로 일단 모아지고 있지만 그 해석을 두고는 차이가 있다. 먼저 ‘박근혜 대세론의 유지’에 방점을 찍는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세론이 안철수 돌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라며 긍정적 해석을 내린다. 사실 추석 전만 해도 안 원장이 최대 26.4%포인트의 격차(7, 8일 MBC·엠비존의 모바일 조사)로 박 전 대표를 앞서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추석을 거치면서 박 전 대표의 지지세가 결집했고 결국 안풍의 거센 공격에도 박빙 우세를 보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고정 지지층은 20~25% 정도로 보는데 지난 2008년 이후 4년 동안 비교적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번에 확인됐다. 외풍이 강하게 불었지만 그 자체 복원력도 상당히 견고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세론이 허풍이 아니라 실체가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세종시 정국-동남권 신공항 논란-무상급식 정국 등의 부정적 변수가 발생했을 때 최대 15%포인트까지 빠진 전례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안풍에도 그가 기존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추석 민심이 박근혜 대세론의 맷집을 확인시켜 주기는 했지만 기존 지지층에 의한 떠받치기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와 국민일보의 조사를 보면 박 전 대표는 수도권에서 박빙 우위, 영남에서 절대 우위, 충청에서 우위, 호남에서 절대 열세를 보였다. 이는 호남에서 안풍에 잠식당한 것만 빼면 기존 지지층이 그대로 남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연령별로는 40대 이상에서 우위, 30대 이하에서 열세였다. 이런 조사는 4년 전의 박 전 대표 지지층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해석 논란과 함께 ‘안풍이 허풍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번 추석 여론조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다.
이에 대해 대체로 전문가들은 “안풍이 조정기를 거치고 있기 때문에 ‘허풍’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여기에는 정치인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견해가 조금씩 엇갈린다. 기존 정치인들은 물론 ‘안풍’이 현실적인 정치세력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뒷좌석 운전자가 되지 말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하며 “뒷좌석에서는 잔소리하기는 쉬워도 막상 본인이 직접 운전해보면 현실은 이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의 ‘정치적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안풍=거품’이라는 등식에 대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단 ‘안풍’이 조정을 받을 순 있지만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할 수 있는 변수로 상존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견해다. 앞서의 윤희웅 실장은 이에 대해 “안 원장 지지도는 현재 시점에선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안 원장이 정치인으로 언론에 부각되지 않고, 정치행보를 보이지 않으면서 지지율이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안 원장의 잠재력에 대해선 인정한다. 그가 총선에서부터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거나 내년 대선과 관련해 정치활동 가능성을 열어놓는 발언을 하면 박 전 대표를 긴장하게 하는 최대 라이벌로 부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안 원장의 폭발력은 일시적인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그의 비전과 가치관이 내년 총선과 대선의 시대정신과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하는 것이 추석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무당파층의 증가다. 국민일보 조사에 따르면, 정당지지도를 중심으로 볼 때 무당파층은 42.5%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48.0%), 30대(52.2%)는 절반 가까이가 ‘지지정당이 없다’고 응답했다. 더구나 ‘제3 정당 필요성’에 대해 지역적으로는 서울(53.2%)에서 ‘동의’가 가장 높았고,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61.4%)과 화이트칼라 직업군(61.7%)에서 60% 가까이가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를 토대로 보면 서울 등지에 사는 20~30대 고학력 화이트칼라 계층이 무당파군을 형성하며 안풍을 지지하는 근본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무당파층이 안풍을 지지하는 것뿐 아니라 제2, 제3의 안풍을 견인해낼 정치적 동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음을 이번 안철수 바람에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무당파층이 안철수 원장이 아니더라도 그가 지지하는 인사나 제3의 대권주자가 깜짝 출현할 경우 그들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강남 4구에서조차 안 원장의 지지율이 높은 점을 두고 한 정치학과 교수는 “강남 8학군 출신의 엘리트들이 안철수 원장의 성공모델을 보고 정치적 성장 동인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이 강남 키즈들의 롤 모델로 인식되면 강남이 그를 대권주자 반열로 밀어 올리는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안 원장이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둬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들며 당분간 안풍의 위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는 측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