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안철수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4년 동안 대세라는 박근혜 전 대표의 대중 지지마저 간단하게 무력화시킨 힘의 핵심은 안철수 개인의 특성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것을 보지 못한다. 구태의연한 ‘민심’ ‘변화’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현재 정치권의 모습이다. 얼마나 당혹스러웠으면?
안철수가 지난 20년 동안 무엇을 했고, 또 어떤 이야기를 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소리다. 그것을 다 알고 안철수에 열광하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 백신 만들어 보급했고, 안철수 연구소로 돈 벌었고, 연예프로 ‘무릎팍도사’에 나왔다. 요즘에는 ‘청춘콘서트’라는 대학생 대상 대중강연과 멘토 노릇까지 한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한다면? 안철수라는 인간에 대한 심리 분석은 이 질문에 대한 몇 가지 분명한 단서를 제공한다.
대중이 안철수 교수를 잠재적 대선주자로 받아들이는 현상의 핵심은 어떤 종류의 반감이다. ‘정치권에 이제 올 것이 왔구나’는 위기로 받아들였다는 MB 대통령의 언급은 대중에게 거의 ‘사오정’ 수준의 응답이다. 정치권에 대한 반감, 불신의 진앙지에 계신 분이 ‘남 이야기’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중이 느끼는 삶이란, 무엇이 문제인지 딱 질러 지적할 수는 없지만, 삶이 불안하고 즐겁지 않다. 아니 ‘고소영’이라고 대표되는 기득권 집단에 내가 있지 않기에, 삶이 더 희망이 없다는 피해의식만 남아 있다. 이럴 때 대중은 세상의 변화를 기대한다. 누군가 사기 치지 않고, 내가 믿을 만한 인간이 나서서 뭔가를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안철수 교수는 바로 이런 대중의 기대와 부합한다.
대중의 기대와 바람이 어떻게 되든, 안철수 씨가 대통령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안철수 씨 개인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 씨는 자신이 할 일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수행하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문제 또는 과제를 먼저 설정하고 그것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식이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하며 자신의 꿈을 믿고 그것을 현실에서 이루려 한다. 그는 연구든 사업이든, 심지어 행정이든 스스로 배워 전문성도 확보하고 또 그것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 꿈을 꾸는 ‘아이디얼리스트’의 성향이다.
이런 경우, 그가 처음 설정한 문제, 과제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정치인들이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고, 또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과는 반대다. 안철수만의 문제해결 방식, 그가 지향하는 세상의 변화는 ‘청춘콘서트’에 잘 드러난다.
지금까지 안철수 씨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한 사람으로 보인다. 의사에서 소프트웨어 사업가, 다시 학생과 교수의 역할로 바뀐 것이 한 개인에게는 새롭고 다른 길이지만, 그 일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는 각 영역에서 가장 규범적인 길을 갔다. 비주류로 움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주류의 입장에서 살아왔다.
정치의 영역으로 그가 옮겨 갈 때에 그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가 컴퓨터 백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질병에 대한 백신이라는 비유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낼지와 같은 문제는 그의 개인의 것이 아니다. 해결하는 방법조차 그가 혼자 할 일이 아니다. 대중이나 사회 전체에서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바꾸어야 하는 작업이다. 정치로 이것을 하는 것은 바로 예수가 2000년 전 로마 지배의 이스라엘에서 하려 했던 일이다. 현재 그는 ‘열두 제자’도 ‘사도 바울’도 없다.
대중의 기대란 신기루와 같다. 차근차근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하는 그에게 대중의 기대는 독이다. 현실적으로 어떤 성과를 바로 만들어내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는 정해진 분명한 과제를 수정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긴박하게 발생하는 변화에 대해 그 스스로 정작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통찰이나 혜안을 쓸 수 있지 않다. 그는 마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정운찬 전 총리다. 그가 대중정치인으로 나서는 순간 순식간에 밑천이 드러났다.
안 교수가 대중에게 부각되는 것은 그의 생각이 현실의 규범이나 관행 이런 것들을 거부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상, 에고이스트, 독특, 창의, 독립, 자유, 확장, 호기심, 개성’, 이런 단어들로 설명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정치인이 되는 순간 이들 단어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일반인 중 ‘난 사람’으로 볼 때와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으로 볼 때, 완전히 다른 인지적 이해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안철수는 이해하기 힘든,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익숙한 대세를 거부하려는 그의 시도는 놀라움으로 수용될 것이다. ‘오늘은 또 왜 저러는 거야’ ‘쟤는 왜 저렇게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거야’라는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이미 우리는 노무현을 통해 이것을 경험했다. 안 교수가 정치인으로 자리를 잡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다. 그는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더 안 교수가 이 사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를 기대한다. 변화 없는 우리의 정치권에 파문의 ‘짱돌’을 던지는 역할, 또 다른 차원의 결단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대중들은 그의 또 다른 희생을 통해 더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