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 돌던 ‘이심송심’ 다시 고개, 친문계 버금가는 계파 가능성…“대선 패배 지도부 출마 명분 없어” 반대 기류도
‘송영길 차출설’이 여권 권력구도에 소용돌이를 몰고 올 전망이다.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과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놓고 ‘사전 교감’을 나눈 정황이 포착되면서 정가를 흔들고 있다. 이른바 ‘이송(이재명·송영길) 연합군’이다. 이들은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이심송심(송영길이 이재명을 밀어준다)’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방선거 역할론을 요구받는 이 고문이 전격 등판을 할 경우 ‘송영길 차출설’은 한층 현실화한다. 친문(친문재인)계에 맞선 ‘이재명계+일부 운동권’ 그룹의 계파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권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애초 ‘송영길 서울시장 출마’는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거론됐다.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이재명 역할론+송영길 차출설’의 시너지 효과가 한몫했다고 한다. 대선 패배 이후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은 서울시장 불출마 쪽으로 기울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카드는 필패라는 인식이 강하다. 당 안팎에선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카드도 거론되지만, 여권 인사들은 “정권심판 프레임에 걸릴 수 있다”며 “임종석 카드는 현실성이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 인사 중 출마 여부를 고민하는 이는 박주민 의원 정도다. 그는 앞서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지역위원장에서 물러났다. 다만 당 내부 기류는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6·1 지방선거 역시 ‘부동산 대전’이 불가피한데, 임대료 인상 꼼수 논란에 휘말린 박 의원이 오세훈 현 시장의 대항마가 될 수 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임대차 3법을 대표 발의한 박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2020년 7월 30일) 직전 서울 신당동 자신의 아파트 월세를 26%가량 올렸다. ‘박주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란은 4·7 서울시장 보선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터졌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역전할 모멘텀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 찾기에 난항을 겪자, 여권 일각에선 송영길 이낙연 정세균 등 ‘거물급’이 오르내렸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나란히 국회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최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오른 정 전 총리는 서울시장 전략공천에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선 직전에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됐던 차출설에 대해 정 전 총리는 “차라리 진안군수를 하겠다”며 일축했었다. 정 전 총리는 대선 이후 주변 지인들에게 “당분간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를 둘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낙연 전 대표 출마 가능성을 놓고는 한때 전망이 엇갈렸다. 당 한 관계자는 “움직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NY(이낙연)계에서 이 전 대표 출마를 위해 연판장을 돌렸다는 설도 끊이지 않았다. 다만 민주당 한 관계자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NY계 의원들은 “이 전 대표는 무리수를 두는 정치인이 아니다”라며 “당이 삼고초려를 넘어 십고초려를 해야만 그때서야 검토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 와중에 이 전 대표가 6·1 지방선거 이후 연구차 미국으로 출국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낙연 차출설’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 전 대표 측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끝내고 남북관계 등의 연구를 위해 미국 워싱턴DC의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 1년가량 머무를 예정이다. 최근 미국행을 굳힌 이 전 대표는 “직접 선수로 뛰는 일은 없을 것”이란 말을 주변에 전했다고 한다. 다만 당이 요청하면 선거 유세는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낙연·정세균 차출설’은 희미해지고 ‘송영길 차출설’만 남은 배경이다. 복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송 전 대표는 3월 27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시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외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란 글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사저 신축 현장 사진을 올렸다.
그 직전 민주당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중반 출생자) 대표인 전용기 의원과 이동학 전 최고위원, 박영훈 전국대학생위원장 등은 송 전 대표를 찾아가 “지방선거에서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겉으론 지방선거 역할론이지만, 속내는 서울시장 차출설의 연장선이다. 송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방선거 역할론’ 등에 대해 구체적인 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주변에는 “당이 결정할 사항”이라고만 했다. 당이 요청한다면 서울시장 출마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관전 포인트는 ‘이송 연합군’의 현실 가능성 및 그 파괴력이다. 이 고문과 송 전 대표는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3월 25일 송영길 차출설을 공개 거론한 직후 직접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고문이 “송 전 대표가 최선의 선택”이란 취지로 말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이 고문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고문 측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재명계 맏형인 정성호 의원을 비롯해 김남국 의원 등은 3월 29일 사찰에 머물던 송 전 대표를 찾아가 면담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고문의 메시지 정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고문은 “송 전 대표가 나서줘야 한다”라는 이수진 의원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이용빈 민주당 의원이 올린 ‘송영길 차출설’ 글에도 ‘좋아요’를 눌렀다.
양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 때도 송 전 대표가 이 고문을 물밑 지원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때다. 당 인사들은 “경선 공정성 논란으로 번지지 않았을 뿐, 송심(송영길 의중)이 이 고문에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비주류 대표끼리 통하는 게 있지 않았겠느냐”며 “송 전 대표와 NY계의 간극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앞선에서 끌고 뒤에서 지원받는 순서만 바뀌었을 뿐 ‘송영길 차출설’의 본질은 이심송심, ‘이송 연합군’이란 뜻이다.
6·1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역할론과 송영길 차출론이 맞물릴 경우 당내 권력구도 변화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흥 강자로 떠오른 이재명계와 송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 일부가 가세할 경우 당 최대 주주인 친문계에 버금가는 계파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재명계 파워는 대선 이후 첫 당내 선거였던 ‘원내대표 경선’에서 확인됐다. 명낙(이재명·이낙연) 대리전 성격을 띤 이번 경선에서 신이재명계의 핵심인 박홍근 의원은 NY계 친문인 박광온 의원을 꺾고 새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강한 야당’을 통한 선명성 강화가 박홍근호를 띄웠지만, 당 내부에선 ‘당 주류 이동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변수는 이송 연합군에 대한 당내 반대 기류다. 친문 핵심인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송영길 차출론’에 대해 “송 전 대표만 대안이 아니다”라며 “거물급 몇 분 더 있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86그룹의 우상호 의원도 “대선 패배 책임을 진 지도부가 그다음 선거에서 전략공천을 받는 전례가 없다”고 했다.
수도권 한 중진 의원은 “의원들 반응이 시큰둥하다”며 “송 전 대표가 출마할 명분이 있겠느냐”라고 전했다. 수도권 초선 의원도 “당 분란만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 내부는 이 고문이 3월 중순께 ‘송영길 서울시장·김동연 경기도지사’ 출마의 필요성을 위해 민주당 비대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일부 언론 보도 이후 뒤숭숭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민주당 공보국은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 부인했다. 고용진 수석대변인도 “아무도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며 “이미 출마한 분들도 있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이 고문이 정성호 의원을 필두로 한 7인회를 앞세워 막후에서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다. 대선 이후 이재명계가 당 세력 재편의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맡은 상황에서 이 고문이 전방위로 나서는 데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셈이다. 송 전 대표는 3월 30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대종사 추대 법회에 참석한 뒤 서울시장 출마 질문을 받고 “제가 아니라 당이 응답해야 한다”며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여권 한 핵심 관계자는 “6·1 지방선거 전후로 포스트 대선 정국을 차지하기 위한 계파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10여 년간 당을 장악했던 당 주류의 세력 교체가 이뤄질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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