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은 지난 2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정부 권력형 비리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을 의결했다. 사진제공=민주당 |
민주당은 지난 2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정부 권력형 비리 진상조사특별위원회(진상조사특위)’ 구성을 의결했다. 위원장에는 검사 출신의 박주선 최고위원이 임명됐다. 진상조사특위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부정·부패와 국정 농단 실태를 규명함으로써 현 정부의 국정난맥상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일 계획이다. 동시에 박 최고위원이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바뀌었는데도 대통령 측근 비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검찰이 한심스럽다”며 특별검사제 도입 가능성까지 시사한 데서 알 수 있듯, 향후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압박해 나갈 방침이다.
민주당이 주목하는 의혹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각각이 단순 측근 비리를 넘어 내년도 양대 선거의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는 휘발성을 갖고 있다. 우선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이 있다. 이미 은진수 전 위원과 김해수 전 비서관이 구속됐고 김두우 전 수석도 구속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루된 사람들의 면면도 만만찮지만 저축은행 부실 사태는 피해자가 수만 명에 달한다는 점에서 여권엔 뼈아프게 다가간다. 더욱이 피해자 대부분이 이른바 ‘세상 물정에 어두운’ 고령자, 저소득층, 영세 자영업자 등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에 쏠려 있어 그 후유증이 곧바로 양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SLS그룹 로비 의혹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입에서 벌써 신재민 전 차관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최측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이름까지 나왔다. 자신이 애써 일군 기업이 억울하게 무너지게 됐다며 언론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는 이 회장의 ‘손가락’이 어디까지 향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4대강 사업도 있다. 사업 자체가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데다 민주당이 줄기차게 반대해 온 사안이다. 현재까지는 이 대통령의 사촌이 경찰 조사를 받는 수준이지만 민주당은 4대강 사업이 현 정부에서의 정·경유착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고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1년 국정감사에서 소리만 요란했지 실속은 없는 것으로 드러난 현 정부의 각종 자원외교 실패 사례도 주목된다. 아직까지 여권 인사 중 구체적인 비리 의혹이 불거진 사례는 없지만 자원외교는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전 차관이 주도해 온 사업이다. 뭔가 터지기 시작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 사안 모두 실제로 문제가 있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은 견제세력으로서 야당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가뜩이나 존재감이 없어 ‘안철수 바람’ ‘박원순 바람’에 휘둘리고 있는 민주당으로선 국민들 머릿속에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 좋은 호재를 만난 셈이다.
지난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참가자들이 일제히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의혹을 강하게 성토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주가 폭락, 물가 급등, 환율 급등 등으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청와대와 정권 핵심 발 ‘부패 쓰나미’가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강타하고 있다”며 “권력의 몸통에 대한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만이 검찰의 사명임을 잊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대통령의 왼팔, 오른팔로 불리는 사람들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것은 임기 말의 추한 모습”이라며 “대통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꼬집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은 말로는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불공정사회’를 만든 것에 대해 반성하고 검찰이 즉각 측근 비리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배숙 최고위원은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이라며 “검찰 수사가 ‘물타기’ ‘꼬리 자르기’ 식으로 가선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기세는 검찰 수사와 진상조사특위 활동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이 10·26 재·보선과 내년 양대 선거에 미칠 엄청난 파급력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임기 말 권력형 비리 사건은 경제난, 여권 분열과 함께 ‘정권 교체를 위한 3대 필수요소’로 꼽힌다. 각각이 민심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의미다. 그 중에서도 권력형 비리 사건은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
두 차례의 정권 교체와 그때마다 반복된 정치자금 수사 등을 거치면서 국가 지도자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기준은 이미 한참 높아진 상태다. 더욱이 높은 실업률과 재정 위기, 물가 급등 등 경제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나쁘다. ‘국민은 고통받고 있는데 권력자들은 다 해먹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민심이반은 피할 수 없다. 김영삼 정부 말기의 ‘김현철 게이트’, 김대중 정부 말기의 ‘홍3(김홍일·홍업·홍걸) 게이트’ 등이 그랬다. “10·26 재·보선과 내년 양대 선거의 결과는 어쩌면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결정될 수도 있다”는 한 민주당 관계자의 말은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