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빅리그 진입, 양키스서 단 1경기 출장…올 시즌 피츠버그서 기분 좋은 출발
야탑고 졸업 후 뉴욕 양키스와 116만 달러(약 14억 원)에 계약해 눈물 젖은 마이너리그 생활을 감내한 박효준은 지난 해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 된 후 빅리그에서 시즌을 마무리했다가 올시즌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 기쁨을 만끽했다.
박효준은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을 통해 생존의 법칙을 깨우쳤다. 자신이 올라서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을 통해 때론 동료 선수들을 밀어 내고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피츠버그 데릭 셸튼 감독은 박효준의 ‘워크에식’(직업의식)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누구보다 훈련에 성실히 임하고, 그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게 만드는 열정이 존재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박효준의 메이저리그 스토리를 정리해본다.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길은 선수의 인내와 극복을 시험하는 과정이다. 흔히 싱글 A, 더블 A, 트리플 A 이후 빅리그로 향하는 로드맵을 떠올리지만, 루키 리그부터 시작한다면 루키 리그-루키 어드밴스드-쇼트시즌 싱글 A-클래스 A-클래스 A 어드밴스드-더블 A-트리플 A(팀마다 조금씩 다름)를 거쳐야 빅리그에 올라설 수 있다.
박효준은 야탑고 재학 중이던 2014년 7월 3일 뉴욕 양키스와 116만 달러에 계약했다. 2015년 루키, 2016년 로우 싱글 A, 2017년 로우 싱글 A/하이 싱글 A, 2018년 하이 싱글 A, 2019년 더블 A, 2020년 메이저리그 초청 선수 신분(코로나19로 마이너리그 시즌 취소), 2021년 더블 A/트리플 A 등 해마다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갔고 성장했다.
2021년 7월 17일은 박효준한테 영원히 기억될 하루로 남을 것이다. 무려 7년의 기다림 끝에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박효준이 양키스로 콜업된 배경에는 트리플 A에서의 엄청난 성적이 뒷받침됐다. 당시 박효준은 트리플 A 48경기에서 타율 0.327, 10홈런, 29타점 OPS 1.042를 기록했다. 트리플 A 전체 5위 안에 드는 성적이었다.
인내심을 갖고 빅리그 콜업을 기다린 박효준은 양키스 선수 중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공백이 생기자 빅리그의 호출을 받았고, 마침내 빅리그 무대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양키스 선수로 타석에 들어선 건 딱 한 차례뿐이었다. 이후 다시 트리플 A로 내려간 박효준은 7월 27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전격 트레이드된다.
처음에는 피츠버그 트리플 A에 합류했지만 이후 빅리그로 콜업돼 내·외야 가리지 않고 전천후 내야수로 활약했다.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고 데뷔 첫 2루타, 데뷔 첫 홈런 등을 장식하며 비상했지만 시즌을 마친 빅리그 성적은 45경기에 출전해 128타수 25안타 3홈런 14타점 타율 0.195를 기록했다.
2021년 정규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피츠버그 홈구장인 PNC파크에서 만났던 박효준은 드라마틱했던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소감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처음에는 빅리그에서 단 한 경기만 뛰어도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뉴욕 양키스에서 정말 딱 한 타석 나간 후 더 이상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을 때 무척 속상했다. 그런 상황에서 피츠버그로의 트레이드는 야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양키스와 달리 빅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안타도 치고, 홈런도 나오는 등 신바람을 냈는데 점차 타율이 하락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당시엔 멘탈이 거의 산산조각이 났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생각이 많아지면서 원래의 타격 폼이 흔들렸다. 두 달 동안 체중이 5㎏이나 빠졌다. 야구가 정말 어려운 스포츠라는 걸 새삼 절감했다.”
박효준은 메이저리그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도 경험했다. 그는 대타가 아닌 빅리그 데뷔 첫 선발 경기를 치른 8월 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을 떠올렸다.
“피츠버그 홈경기에 7번 타자 유격수로 데뷔 첫 선발 출전을 하게 됐다. 그런데 세 번째 타석에서 데뷔 첫 안타를 2루타로 장식했다. 안타를 치고 2루에 도착했을 때 필라델피아 2루수인 디디 그레고리우스가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더라. 그레고리우스는 양키스 시절 팀 동료로 친분을 맺었는데 이번에 상대 팀 선수로 만났음에도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는 걸 보고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디디 그레고리우스뿐만 아니라 3루에서 만난 알렉 봄도 첫 안타를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이런 게 메이저리그의 문화인 것 같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경쟁 관계를 떠나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해주는 선수들을 통해 야구 외적으로 배우는 게 많다.”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단 한 경기라도 빅리그에서 뛰고 싶다고 생각했던 박효준. 그 바람대로(?) 한 타석만 소화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상황에 대해 “한 경기만이 아닌 한 10경기 정도는 빅리그에서 뛰고 싶다고 목표를 세웠어야 했다”며 미소를 짓는다. 물론 피츠버그로 트레이드된 후 빅리그에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지만 7년을 양키스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한 박효준으로선 양키스와의 빅리그 인연이 한 타석으로 끝낸 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하나의 벽을 넘으면 또 다른 벽이 있더라. 빅리그 무대에서 뛰고 싶었고, 그 무대가 주어졌는데 이번에는 성적을 통해 내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인 건 지금 이런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빅리그 첫 해이기 때문에 이해와 배려를 받을 수 있었지만 내년에도 이런 모습을 반복한다면 용납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시즌 빅리그에서 다양한 ‘느낌표’를 안고 시즌을 마무리했던 박효준은 비시즌 동안 독하게 훈련에 임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체력과 파워. 그는 웨이트트레이닝과 벌크업을 통해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나갔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직장 폐쇄가 길어지면서 박효준은 예상보다 길게 한국에 머물러야 했고, 비자 문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미국행이 미뤄지면서 스프링캠프 합류가 다소 늦어졌다.
자리 경쟁이 불가피한 박효준으로선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시범 경기 동안 최대한 여유를 잃지 않고 주어진 타석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박효준은 시범경기에 9경기 선발 출장해 29타석을 소화했고 타율 0.308(26타수 8안타) 2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3월 28일(한국시간) 뉴욕 양키스와 시범경기에서 게릿 콜을 상대로 98.3마일(약 158km)의 포심 패스트볼을 공략해 중전 안타를 뽑아냈을 때 박효준은 “게릿 콜이라서 더 신경 쓰고 부담 느낀 게 없었다”면서 “어느 순간부터 타석에 들어섰을 때 상대 투수의 이름을 떠올리기보단 내가 어떻게 그 투수를 공략할지를 먼저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효준은 지난해 대표팀 관련해서 현실의 벽에 부딪힌 자신을 발견했다. 도쿄올림픽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박효준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선다며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내가 야구하면서 세운 큰 목표들 중 하나가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살리고 싶은 욕심이 크다. 야구하면서 늘 대표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태극마크 달고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번에야 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을 이끈 김경문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미국에서 활약 중인 박효준보다 KBO리그 선수에게 먼저 기회를 줬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박효준은 상대팀으로 맞붙게 될 미국 대표팀 선수들 중 아는 선수들이 많고, 그들이 어떤 장점을 갖고 있고, 어떤 선수인지 잘 알기 때문에 대표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며 기대를 부풀렸다. 그는 김경문 감독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실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표팀은 박효준을 올림픽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올림픽대표팀 출전의 기회는 사라졌지만 박효준은 이후 빅리그 데뷔를 이뤘고 뉴욕 양키스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 되면서 빅리그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박효준은 2022년 4월 8일(한국시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 개막전에 9번 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 1삼진을 기록했다. 박효준은 빅리그 통산 184승을 거둔 세인트루이스의 베테랑 우완 투수 애덤 웨인라이트를 상대로 6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 선두타자로 나서 시즌 첫 안타를 신고했다.
경기 후 박효준은 문자를 통해 자신이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며 생애 첫 빅리그 개막전 경기를 소화한 소감을 전했다.
캐나다 토론토=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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