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해 못할 일들이 의외로 많다. 스포츠도 그렇다. 온갖 군상들이 모여 있다 보니 별의별 사안들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축구계에는 선수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챙겨주고, 그들이 직접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주는 에이전트들이 있다. 팬들이 축구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할 때 종종 인용되곤 하는 ‘측근’들이 대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은 환영받지만 일각에서는 부정적 인식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측근’이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탓이다. 당연히 지극히 수가 적은 몇몇 미꾸라지 탓에 축구판이라는 공동의 우물이 더럽혀진다. 세간의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지난주에도 아마추어 선수 학부모들에게 해외 진출 알선료 명목으로 수억 원을 가로챈 불법 에이전트 2명이 경찰에 붙잡히거나 지명수배됐다. 꼴불견 에이전트들의 대표적인 천태만상 스토리를 축구계에 떠돌고 있는 소문들을 토대로 몇 가지 짚어봤다.
# 선수들에게 ‘삥’ 뜯는다?
얼마 전, 축구인 A 씨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들었다. 외부에 상당히 잘 알려진 모 에이전시에서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에이전트 B 씨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선수들에게 서슴지 않고 금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B 씨는 해박한 축구 관련 지식으로 축구판에서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인물. 하지만 ‘내가 모른다면 아무도 모른다’는 식의 속된 말로 ‘~난체’와 주변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외골수적인 기질로 인해 동료 에이전트들 사이에서는 그리 평판이 좋은 편이 아니다.
곳곳에서 나돌고 있는 루머는 이렇다.
B 씨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나 국가대표팀에 소집돼 해외로 원정을 떠나는 소속 선수들에게 고가의 선물을 해달라고 한단다. 그가 희망하는 선물 리스트도 다양해서 명품 만년필과 볼펜부터 노트북과 아이패드 등 아무래도 국제공항 면세점이 아닐 경우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물품들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 선수가 자가용을 교체하려 하자 “싸게 넘기라”며 접근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B 씨에게 선물을 주고 안 주고는 어디까지나 해당 선수들의 의사에 달려있다. 또한 진짜 선수들이 선물을 해줬는지, 그리고 B 씨가 이를 선뜻 호주머니 속에 챙겨 넣었는지의 여부도 본인이 직접 입을 열기 전까진(입을 열지도 않았지만)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철저하게 신뢰 관계로 엮여야 할 선수와 에이전트의 관계와 질서가 다소 흐트러진다는 좋지 못한 느낌을 준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여러 선수들이 B 씨의 이러한 행각(?)에 대한 얘기를 이미 접해 들은 분위기이다. 선수 C는 A 씨에게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B 씨가 주변 동료들에게 이것저것 선물을 요구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우리(선수들) 세계에서 B 씨는 기피 인물로 찍혀 있다”고 귀띔을 했다고 한다.
A 씨는 “B 씨가 인상도 번듯하고 멀끔해서 처음 다른 행동(선물 요구)에 대한 내용을 듣고 많이 놀랐다. 선수들이 앞으로 어떤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인지 B씨는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네 선수가 곧 내 선수
이번에는 자신의 높은 인지도를 이용해 다른 이들에게 올바르지 않은 정보를 심어 넣는 경우다.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지만 굳이 예를 든다면 내가 가진 물건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라고 우기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곤 하는 에이전트들에 따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첫 번째 사안에서 거론했던 B 씨처럼 역시 업계에서 잘 알려져 있는 에이전트 C 씨는 자신의 에이전시 업체가 유명 스타 D 선수와 계약돼 있지 않음에도 불구, 외부에는 마치 D 선수와 절친한 관계인 양 행동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당연히 이 소식을 접한 D 선수의 측근들은 대단히 불쾌해하고 있다. 하지만 딱히 이를 저지할 만한 법 또는 제도적인 장치가 없어 소문이 일파만파 번지더라도 그저 속만 끓일 뿐이다.
특정 선수가 해외 이적과 국내 K리그 타 팀으로 이적을 추진할 때 이러한 소유권을 놓고 종종 말썽이 빚어지곤 한다. 역시 위임장이 문제다.
일단 E 선수가 다른 클럽으로의 이적을 추진한다고 가정할 때, E 선수는 자신과 계약이 돼 있는 F라는 에이전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이적 건을 전제로 다른 복수의 에이전트들에게 여러 장의 위임장을 써준다. 당연히 위임장을 받은 수많은 에이전트들이 E 선수의 이적 작업에 매달리는 바람에 외부에서는 누가 정말 대리인인지 알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E 선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구단은 구단 나름대로 별도 에이전트에게 ‘E를 반드시 데려오라’는 조건 하에 계약을 맺고 위임장을 써준다. 순식간에 E 선수 주변에는 에이전트들만 들끓게 된다. 계약 관계가 이곳저곳에 워낙 복잡하게 얽히다보니 원했던 이적도 성공하지 못하고, 측근들만 무더기로 생성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거론된 C 씨처럼 “계약을 끝내고 싶다”는 선수 측의 일방적인 전화 한 통이면 자동적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상황(물리적 규제 방안이 없다)을 악용해 마치 스타플레이어의 소유권을 가진 것처럼 버젓이 행동한다는 데 있다. 국내 이적이라면 어느 정도는 상호 협의나 조율이 가능하겠지만 해외 이적이 추진될 때에는 해외 파트너가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 채 선수의 실질적인 소유권을 갖지 못한 ‘가짜’ 대리인(해당 선수를 자신의 선수라고 소문내고 다니는 사람)에게 접촉해 여러 곳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이 경우, 대개의 이적은 실패로 끝나지만 거의 성사된 이적 건도 망치는 소위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첫 번째 사안에서 등장했던 에이전트 B 씨는 선수들에게 선물을 요구할 뿐 아니라 C 씨와 똑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자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어 축구계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 잔챙이 빼고 스타만
상대적으로 네임 밸류가 떨어지는 선수들은 자신이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그라운드 안팎으로 닥치는 심적인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딱히 해결 방도가 없어 고통은 배로 가중된다.
소속 선수들에게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일부 몰지각한 에이전트들 탓에 선수들 간에는 뭔가 허물기 어려운 벽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벽이라 함은 일종의 계급이나 신분적(?) 차이를 지칭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에이전트들의 행태는 선수들 사이에 불필요한 위화감을 조성했다. 물론 선수들이 모두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는 없다. 철저한 실력 세계인 만큼 인기와 몸값이 모두 동일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선까지는 모두에게 동등한 대접을 해줄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선수를 위하는 에이전트라면 말이다.
A급이 아닌 선수들은 자신과 계약된 에이전트가 일부 스타들만 챙기고 있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모 스포츠 업체와 맺은 용품 공급이 상대적으로 덜 돌아오고 있다는 소외감부터 자신을 만나러 찾아오는 횟수가 적다는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닌 아주 작은 사안까지 에이전트들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수들이 제 분수도 모르고 돈만 밝히는 것 같다’ ‘선수들이 실력도 갖추지 못하고 너무 제 멋대로 행동하려 한다’ ‘선수들이 자신의 사인과 도장이 찍혀 있는 계약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등등 불평하는 에이전트들 못지않게 선수들의 분노 지수도 비례해서 높아지고 있다.
에이전트 G 씨도 이를 인정했다.
“선수들의 생각이 아주 틀렸다고는 하기 어렵다. 내가 관리하는 선수들 모두에게 동등한 관심을 줘야 한다는 얘기도 맞다. 아마 대다수 에이전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항상 미국 할리우드 인기 영화였던 <제리 맥과이어>에 나오는 톰 크루즈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실과 이상은 분명 다르다. 우리(에이전트들)도 역시 사람인지라 기왕이면 실력이 보다 우수한 선수들에게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실제로 챙겨야 할 부분도 이름값이 높은 선수들이 많다.”
그렇다면 수도권 구단에 속한 선수들에게만 에이전트들이 신경을 집중한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축구계의 상황이 실제로 이렇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타들이 대개 수도권에 머물고 있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에이전트 H 씨는 “스타들은 FC서울과 수원 삼성이라는 소위 빅 클럽들이 연고한 수도권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거나 자꾸 지방을 벗어나려 한다. 에이전트들은 아무래도 일주일에 한 번밖에 관전 기회가 없는 K리그 라운드가 찾아오면 지방보다는 소속 선수들이 좀 더 많은 수도권을 찾다보니 그런 불평불만들이 터지는 것 같다”고 했다.
# 특정 커넥션의 존재
어쩌면 에이전트들에게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닐 수도 있다. 시선을 축구계 전체로 확대해 살펴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관계라는 게 굉장히 중요시되는 요즘, 커넥션과 연결 고리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항상 긍정적인 요소만 주는 건 아니다. 분명 옳지 못한 관계라는 것도 존재한다.
에이전트들의 커넥션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지칭되고 있다. 특정 감독과의 관계, 특정 구단 스카우트 담당자와의 관계 등등 그다지 좋지 못한 얘기들과 소문들이 많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는 해도 특정 감독들과의 각별한 친분은 에이전트들에게 필수 요소처럼 비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K리그의 모 감독이 전 소속 팀의 지휘봉을 내려놓고, 새 팀으로 옮겨갈 때 그 감독은 모 에이전트와 각별한 친분이 있다는 점이 전 소속 팀에게는 대단히 좋지 않은 요소로 불거진 바 있다. 전 소속 팀 고위 관계자가 “그 감독과 특정 에이전트 간의 친분이 선수단의 불화의 불씨로 작용했다”며 강한 불쾌감을 내비친 바 있었다.
업계에서만 알려진 무명 에이전트 I 씨는 “요즘은 감독 커넥션이 많이 줄어들긴 줄어들었다. 하지만 관계가 유지되는지 여부에 따라 고소득과 저소득의 차이를 내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돈을 많이 벌려면 감독, 스카우트 담당자와 친해져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래도 이해는 충분히 된다. 인지상정이란 말이 있듯이 아무래도 대개는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비추고, 한 번이라도 식사 자리를 했던 사람을 챙기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축구계 비리는 대개 여기서 나왔다. 용병 영입과 선수 영입도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 구두 약속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일부 선수들은 아직도 감독과 특정 에이전트 간의 커넥션이 자신의 팀 내 위상과 입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출전 기회를 많이 부여받지 못하는 게 실력보다는 이면에 숨겨진 ‘관계’라고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문도 많이 흘러 나왔다.
근래 들어 K리그에서는 그런 얘기들이 많이 줄어들었으나 아마추어 축구계에는 출전부터 선수 수급(스카우트)까지 검은 돈이 항상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돈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해당 선수의 출전 여부가 가려진다는 구설이 나오기도 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