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에 젖은 영동의 모습. |
가을의 영동은 안개의 고장이다. 맑은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안개가 피어오른다. 전북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이 영동의 제원·양산·심천·용산·황간을 돌아 모동면 쪽으로 빠져나가고, 상촌에서 매곡을 거쳐 황간면에서 금강에 세력을 보태는 물한계곡 등 크고 작은 물길이 영동 구석구석을 누비며 들을 적신다. 이 물길들이 새벽마다 안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낮에 따뜻하게 데워진 대기가 밤사이 차가워지고, 가장 쌀쌀한 새벽으로 오면서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 붙는데 이것이 안개다. 강과 계곡 등 습기의 무한공급처를 곁에 둔 데다가, 새벽녘이면 같은 위도상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서 기온이 훨씬 낮은 영동은 안개 발생의 최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영동의 안개 낀 새벽풍경을 보고 싶다면, 경부고속도로 옥천IC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 4번국도가 영동으로 이어지는데, 옥천군의 끄트머리 마을인 원동리를 지나면서 금강을 끼고 달린다. 이때부터 안개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풍경을 지웠다 그렸다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안개는 해가 떠오를 무렵 가장 기승을 부린다. 안개에 젖은 들녘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 같다. 딱히 어디라고 짚을 것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황간IC를 이용해서 영동으로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 황간IC 가까운 곳에 월류봉이 있는데, 안개 낀 풍경이 아름답다.
영동은 과일이 참 맛있는 고장이다. 포도·호두·사과·배·밤·감…. 어느 것 하나 영동이 키운 것 치고 실하지 않은 게 없다. 아래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진을 치고, 위로도 백화·천관·천태산 등이 호위하는 영동은 전형적인 분지다. 지형적 특성에서 비롯된 영동의 기후는 가을철 일교차가 무척 크다. 그래서 과일이 달면서도 과육이 단단하다.
안개와 놀다가 상촌면으로 길을 잡는다. 영동은 전체 가구의 75% 이상이 감 농사를 짓는다. 주로 재배하는 것은 떫은 감인 둥시와 월하시다. 그 중 월하시는 영동이 주산지로 밀도와 당도가 으뜸이어서 곶감으로 만들었을 때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이들 떫은 감 생산량은 전국의 10%, 충북의 70% 가량 된다. 대개의 면에서 감을 출하하지만, 가장 많이 나는 곳이 상촌면이다. 면소재지 일대가 온통 감나무다. 과수원으로 가꾸는 곳이 허다하고, 가로수도 감나무다.
▲ 상촌면 곶감 널어말리는 풍경. 아래 사진은 노근리 쌍굴다리로 표시된 것들이 모두 총탄자국이다. |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사연은 너무 아프고, 우리는 그 아픔을 아무리 애를 써도 다 보듬지 못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인 7월 26일~29일 나흘간 노근리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주민들을 쌍굴다리 부근에 몰아넣고 미군이 폭격기와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한 것이다. 이 때 사망한 사람이 무려 300명이 넘는다는 점과 오인이 아닌 계획적 사격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지금도 이 굴다리에는 총알자국들이 선명히 남아 있다. 아픈 기억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에는 들꽃이 흐드러졌다. 참으로 염치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게 꽃들 탓인가, 애꿎은 꽃들을 타박할 이유는 없다.
노근리에서 나와 5번군도로 바꿔 타고 15분쯤 달려 상촌면으로 들어간다. 상촌면은 그야말로 감천지다. 그러나 면소재지를 지나쳐 길을 더 간다. 물한계곡 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영동 자체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지역이지만 물한계곡은 이곳에서도 더 깊은 산골인 상촌면 남서쪽 민주지산과 삼도봉 아래 있다. 물한계곡에는 한천마을에서부터 시작해 가정, 중말, 괴재, 핏뜰, 황점 등 여섯 개의 자연부락이 상류에서부터 차례대로 형성돼 있다.
이들 마을의 풍경은 지나온 면소재지와 비할 바 아니다. 오지를 방불케 하는 한적한 마을들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집집마다 감나무 두어 그루씩 품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 일대에는 밤과 호두나무도 꽤 많다. 나무밑을 뒤지며 열매를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촘촘히 쌓은 돌담이 특징인 괴재는 호도골이라고도 불리는데, 간혹 아람이 벌어진 채 매달려 있다가 바람에 떨어지며 지붕을 때리는 호두소리가 고샅을 걷는 이방인을 깜짝 놀래킨다.
10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 이 마을들에서는 감따기 작업이 시작된다. 옹기종기 모인 집집마다 감을 따고 손질하느라 분주한데, 동구 밖까지 뛰쳐나와 꼬리치는 강아지만 한가롭다. 주민들은 나무 위로 올라가 장대를 이용해 감들을 잘도 딴다. 수확한 감은 손으로 곱게 깎아 처마 밑이나 덕장에 널어 말린다. 요즘은 기계로 감을 깎는 곳도 많은데, 물한계곡 부락 쪽은 아직까지도 손을 고집한다.
영국사를 두고 떠날 수는 없다. 천태산(天台山) 밑에 있는 자그마한 절이다. 매표소에서 약 20여 분 올라가면 천태산 기슭에 영국사가 편안하게 앉아 있다. 영국사까지 이어진 길은 계곡 물소리를 벗하고 간다.
슬슬 산보하듯 걸어 닿은 영국사 앞에는 13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나 충남 금산의 보석사 은행나무보다 훨씬 커 보이는 나무에는 20~30가마니는 나올 것 같은 은행열매들이 가지가 처지도록 달려 있다.
▲ 와인코리아의 와인보관용 토굴. |
김동옥 여행전문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경부고속도로 옥천IC→4번국도, 황간IC→4번국도, 영동IC→19번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먹거리: 영동은 어죽과 민물매운탕 등이 일품이다. 금강을 끼고 있어 재료의 수급이 쉽기 때문이다. 어죽은 양산면에 자리한 가선식당(043-743-8665), 민물매운탕은 같은 양산면에 있는 오아시스가든(호탄리 25-6번지, 043-744-8736)이 잘 한다.
▲잠자리: 영동읍내에는 영동파크(계산리 654-1번지, 043-744-9220), 샵모텔(계산리 689-9번지, 043-744-7228) 등 숙박업소가 많다.
▲문의: 영동군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yd21.go.kr) 문화공보과 043-740-3202, 와인코리아(http://www.winekr.co.kr) 043-744-3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