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을 품은 신비로운 섬 울릉도. 그중에서도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 위 울릉도에서도 오지라 불리는 '깍개등'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정헌종 씨(53)가 있다.
울릉도의 자유로움이 좋아 도시 생활도 접고 깍개등에 정착한 지 어느덧 10년째. 마을에서 40여 분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라 적막하지 않을까 싶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시선이 향하는 곳마다 그림 같은 풍경이 함께하니 헌종 씨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풍족하다.
특히 봄이 시작되는 지금은 집 주변으로 울릉도 산나물이 지천으로 눈과 입이 모두 호강하는 깍개등 생활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헌종 씨 섬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깍개등 삼 남매 '쌍두', '백두', '산'이다. 늠름한 맏이 '쌍두'부터 쌍두의 귀여운 여동생 '백두', 천방지축 장난꾸러기 막내 '산'까지 깍개등 삶의 둘도 없는 동반자들이다.
사랑스러운 깍개등 삼 남매 중에서도 헌종 씨의 단짝은 '쌍두'다. 어디를 가든 항상 곁에 있는 쌍두에게 헌종 씨는 마음속 깊은 곳을 내어줬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된 두 사나이는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가 되었.. 마을로 외출을 갈 때도 쌍두는 늘 함께한다.
워낙 '아빠 껌딱지'로 유명해서 마을에서도 쌍두 모르면 간첩이다. 봄꽃이 만개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쌍두와 함께 외출에 나선 헌종 씨. 쌍두가 가장 좋아하는 '국밥 데이트'를 떠난다.
급할 것도 서두를 일도 없는 헌종 씨의 울릉도 라이프 스타일. 그런 헌종 씨가 하루 중 유일하게 바쁠 때는 아이들 밥을 챙겨주는 시간이다. 그때가 되면 유독 세심하게 살피는 녀석이 있으니 쌍두의 여동생인 백두다. 헌종 씨에겐 아픈 손가락이나 다름없다는 백두에게는 사실 아픔이 있다.
몇 년 전 유기견 센터까지 가게 된 사연이 있다는데 이후 사람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낯선 사람만 보면 꼬리를 감추고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을 정도다. 한동안 괜찮은가 싶던 백두가 또 불안한 증세를 보인다.
그런 백두가 안쓰러운 헌종 씨는 그만의 방법으로 어르고 달래기에 들어간다.
오늘은 헌종 씨가 읍내로 일하러 가는 날로 쌍두와 백두가 뒤를 자연스레 쫓는다. 하지만 마을까지 따라와서는 안 된다는 헌종 씨의 불호령에 축 처진 어깨로 다시 집에 돌아간다.
그런데 헌종 씨가 집을 비운 그 시각. 깍개등에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사건의 중심은 장난꾸러기 막내 산이인가 했더니 웬걸 다름 아닌 소심쟁이 백두다. 겁에 질려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예상치 못한 뻔뻔한 행동으로 깍개등을 들썩이게 만든다.
울릉도의 비경 속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울릉도 사나이 정헌종 씨와 그의 단짝 이야기를 만나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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