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의 한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지난 9월 26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도박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철강 업체 D사 대표의 며느리 노 아무개 씨(여·41)를 협박한 혐의로 우 아무개 씨(37)를 지난 8월 말 구속했다고 밝혔다. 우 씨는 도박 빚을 받기 위해 노 씨의 집 주차장에 주차된 노 씨 차량의 타이어를 펑크내고, 벨을 지속적으로 울리는 등 피해를 입혔다. 또 우 씨는 노 씨 아이들에 대한 협박까지 서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악몽으로 끝난 중견 철강업체 며느리의 ‘카지노 외도’ 전말을 들여다봤다.
우씨와 노 씨의 첫 만남은 2009년 말 서울 광진구의 한 특급 호텔 골프연습장에서 이뤄졌다. 국내외를 오가며 여행사 및 의류 사업을 하고 있던 우 씨는 지인으로부터 노 씨를 소개 받았다. 우 씨는 노 씨가 국내 중견철강업체 대표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후 세 사람은 자주 만나 같이 골프를 치며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중 지난해 3월경 우 씨는 노 씨에게 카지노 얘기를 꺼냈다. 우 씨는 노 씨에게 “이 호텔 카지노가 외국인 전용이지만 출입증을 구해줄 수 있다”면서 실제로 노 씨에게 외국인 명의로 발급된 ‘VIP 카드’를 건넸다. 카지노 관계자에 따르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출입카드의 경우 VIP 카드와 마일리지 카드로 나뉘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지노 관계자는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이 카지노 출입증 발급을 요청하면 외국국적증빙서류를 제출받아 카드 발급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우 씨는 경찰 조사에서 조선족에게 발급된 출입증을 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경우 입구에서 간단한 출입절차를 거치는데 이틀에 한 번꼴로 자주 카지노를 방문하는 고객의 경우 이마저도 생략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노 씨 역시 그렇게 카지노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지노 출입이 처음이었던 노 씨는 바카라 등 카지노 게임에 푹 빠졌다. 그러나 도박 초짜인 노 씨는 이내 수억 원을 탕진했다. 그러나 한 번 도박의 맛을 본 노 씨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카지노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급기야 노 씨는 우 씨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 도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노 씨는 지난해 3월부터 같은해 6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우 씨로부터 도박자금 명목으로 총 4억여 원을 빌렸다. 그러나 노 씨는 이 돈마저 모두 도박으로 잃고 말았다.
이후 노 씨는 자신이 잃은 돈의 액수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정신을 차린 뒤 카지노 출입을 그만뒀지만 그때부터 문제는 불거졌다. 우 씨가 노 씨에게 “빌린 돈을 갚으라”며 빚 독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 씨는 가족에게 도박 사실을 알리겠다며 노 씨를 협박하기도 했다. 시댁에 자신의 도박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던 노 씨는 결국 남편에게 도박 사실을 털어놨다. 이후 노 씨의 남편이 3억 원을 갚았고, 각서까지 쓴 뒤 채무 관계를 청산하기로 했다.
그렇게 카지노 빚 문제는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우 씨가 1년 만에 다시 노 씨를 찾으면서 악몽은 지속됐다. 우 씨는 1년 만인 올 6월경에 다시 노 씨 앞에 나타나 “남은 1억 8000만 원도 마저 갚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 씨는 모든 빚을 갚았다며 이를 거부했고, 이후 우 씨의 협박은 계속됐다.
지난 8월 23일 우 씨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노 씨 집에 찾아가 11시간 동안 현관 초인종을 누르며 고성을 지르는 등 행패를 부렸다. 또 주차장에 세워둔 노 씨의 고급 외제차 타이어의 바람을 빼놓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었다. 우 씨의 협박은 가족에게로 이어졌다. 우 씨는 “경찰에 도박 사실을 알려 시댁(업체)이 세무조사를 받게 하겠다”며 노 씨를 협박했다. 또 우 씨는 “딸 얼굴 잘 봐뒀다” 등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노 씨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참다못한 노 씨는 결국 경찰에 우 씨를 고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노 씨가 도박을 한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고민하다 결국 우 씨를 경찰에 고소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우 씨에게 주거침입, 공갈미수 등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우 씨가 의도적으로 노 씨에게 접근해 도박에 빠뜨린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우 씨는 당시 사업을 하는 등 소위 말하는 하우스 롤링을 전문으로 하는 도박꾼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빌린 돈의 액수를 두고 두 사람이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씨 측은 3억 원을 빌려 이를 다 갚았다는 입장인 반면 우 씨 측은 4억여 원을 빌려 3억 원만 받아 나머지 돈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우 씨의 주장을 증명할 만한 차용증 등 증거가 전무한 상황이다”고 전했다. 또 경찰은 “노 씨 외에 추가적인 피해자를 찾지는 못했다. 피해자가 신분노출을 꺼리고 직접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실상 밝혀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노 씨를 입건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찰은 “노 씨는 카지노를 불법으로 출입하며 도박을 한 혐의가 있지만 피해자라는 점을 감안해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도둑질을 했는데… 망을 봐준 사람이 신고한다고 협박해서 도둑이 경찰에 신고한 거네요. 그런데 경찰은 도둑질한 사람은 안 잡은 건가요” “잘 못 건드렸다가는 서장부터 줄줄이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 한국 경찰은 이런 사람 건드리지 못합니다” 등의 비판적인 글을 올리고 있다.
또한 경찰은 우 씨가 노 씨에게 건넨 카지노 출입증을 입수한 경위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와 통화한 카지노 관계자도 “우 씨가 출입증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전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