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낙태가 사유를 조작하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방법으로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낙태가 불법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난 이후 중절수술을 하는 병원을 찾기가 다소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취재 결과 암암리에 국내에서도 불법 낙태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일요신문>이 ‘낙태 감소’라는 조사결과 뒤에 숨겨진 어두운 현실을 집중 조명해봤다.
“전화로는 상담 받지 않으니 예약 후 직접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산부인과’를 입력한 후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봤다. 총 10군데 중 2곳만 “우리는 낙태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머지 8곳은 위와 같은 대답을 했다. ‘낙태가 가능하냐’고 기자가 재차 물어보니 한결같이 “일단 오라”는 답을 줬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으나 방문을 한다면 수술이 가능하다는 뉘앙스였다.
낙태를 알선하는 브로커들도 쉽게 접촉할 수 있었다. 기자는 단 30분 만에 3명의 브로커와 상담을 할 수 있었다. 브로커들은 5만~20만 원가량의 소개비를 요구했으며 서울 외에도 인천, 대전, 대구 등지의 지방도 연결이 가능하니 원하는 곳을 고르라고 말했다.
브로커 사이의 경쟁도 치열했다. “다른 분들이 소개해주는 시설은 깨끗하지도 않고 별로다” “직접 병원 확인했기 때문에 확실하다” “다른 사람보다 소개비가 싸다” 등의 갖가지 말로 유치전(?)을 펼쳤다.
낙태근절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프로라이프 의사회 관계자는 9월 27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낙태수술은 산부인과에서 가장 큰 수입원이라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겉으로는 낙태를 하지 않는다고 해놓고선 뒤로는 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브로커까지 동원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기도 한다”며 “임신한 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평균 40만~60만 원 정도면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마땅한 병원을 찾지 못해 중국으로 ‘원정 낙태’를 떠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아 태아가 많이 자랐거나 주위의 시선 때문에 먼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 역시도 브로커와 연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중국 연길에서 수년간 낙태를 알선해 온 브로커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최대 32주까지도 낙태가 가능하다. 중국은 낙태가 합법적이고 워낙 수술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의료수준도 최고다. 돈만 마련하면 언제든지 낙태시술을 받을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중국행을 권장했다.
▲ 중국 원정 낙태 환자가 묵는 한국인 전용 병실에는 한국 음식·TV·도우미 등이 지원된다. 오른쪽은 국내서 몰래 유통되고 있는 경구용 낙태약. |
한국 이름, 주민번호를 사용하지 않으며 서류 등도 준비해준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서 낙태 수술을 받으려면 상대남성의 동의서와 거주지 사회구역(동사무소), 공안국파출소에서 확인서류를 첨부해야 하지만 이 역시도 다 해결해주니 걱정 말라”고 전했다.
비용은 국내보다 최대 2배 가까이 비쌌다. 브로커는 “10주 미만이면 70만 원, 10주 이상은 130만 원이다. 여기에는 수술비, 진료비, 초음파비, 입원비 등 중국에서 필요한 비용 일체가 포함돼 있다. 다만 비행기 값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쉬운 낙태방법으로 알려진 것은 먹는 낙태약이었다. 부모의 동의 없이는 수술이 불가능한 미성년자나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먹는 약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물론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낙태약은 없다. 하지만 미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시판되는 경구용 낙태약이 몰래 국내에서도 유통되고 있었다. 일명 미페프리스톤(RU486)으로 불리는 이 약은 복용하면 수정된 난자의 자궁 내 착상을 막아 유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태국에 살고 있다는 브로커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이 브로커는 “미페프리스톤 3알과 유도분만제 2알을 포함해 35만 원이다. 입금 확인 후 2~3일 내로 받아 볼 수 있고, 임신 7주 이내에 복용하면 거의 대부분 유산이 된다”며 약의 효능을 자랑했다.
유도분만제를 함께 먹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낙태약만으로는 확실한 유산 효과를 얻기 어렵다. 게다가 체내에 태아가 남아 있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유도분만제도 함께 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송 중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자 “직접 구입해 국제택배로 한국으로 보낸다. 겨우 5알이기 때문에 적발될 위험도 없다”며 구매를 적극 권했다.
진오비 최안나 대변인은 “교묘히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어 수술해주는 의사를 처벌해야 낙태가 줄어들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낙태약, 원정낙태뿐만 아니라 조산원에서 불법 낙태를 하기도 하고 강간, 계류유산 등으로 진료기록을 조작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낙태는 마취를 해야 하고 적출물이 생기기 때문에 얼마든지 단속할 수 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낙태를 근절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민정 인턴기자 mmjj@ilyo.co.kr
떴다 하면 시끌 외교 갈등까지
‘본디엡호’는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명 ‘낙태선’으로 불리는 이 배에는 공해에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장비를 갖추고 있고 의사·간호사도 함께 태우고 다닌다. 낙태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이라도 배를 타고 공해로 나와 수술을 받으면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이 배는 2001년 아일랜드를 처음으로 2003년 폴란드, 2004년 포르투갈을 방문했다.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항구에서 배를 타고 ‘본디엡호’에 올라 수술을 받거나 경구용 낙태약을 처방받아 낙태를 했다.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본디엡호’가 향하는 나라마다 낙태 찬반 시위가 벌어져 논란을 일으켰다. 포르투갈 방문 당시에는 정부가 ‘본디엡호’를 영해 밖으로 쫓아내 네덜란드와 외교 갈등까지 초래하기도 했다.
결국 2004년 보수적인 네덜란드 집권 기독민주당 정부가 암스테르담 병원 반경 25㎞ 내에서만 의료시술을 허용, 선상 낙태 수술을 사실상 금지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2007년에 네덜란드 정부는 국기를 달고 공해상에서 7주 이내의 임신부들에게 경구용 낙태약을 처방하는 것을 허용했다. 네덜란드가 7주 이내 임신부의 낙태를 법으로 허용한데 따른 것이다. 현재까지도 ‘파도 위의 여성들’은 논란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