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진은 시즌 마지막 선발등판이었던 LG전에서 11승과 전 구단 상대 승리를 거두며 화려한 피날레를 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사연 많은 10승
류현진은 9월 17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을 2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올 시즌 10승을 거뒀다. 2006년 프로 첫 해, 18승(6패)을 거둬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시즌 최우수 선수와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린 것이다. 올 시즌 부상으로 부침이 많았던 한 해였기 때문에 류현진한테 10승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듯하다.
“사실 부상으로 재활군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에도 10승을 하지 못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단, 아파서 그 (달성)시기가 조금 늦춰질 것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시즌이 끝나기 전에 다행히 그 숫자에 도달할 수 있게 돼서 기분이 좋았다. 최고의 투수들이라고 일컫는 대선배들(이강철 정민철 김시진 선동열 정민태 리오스)의 뒤를 이어갈 수 있는 부분도 행복했다.”
프로 유니폼을 입은 후 항상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았던 류현진. 별다른 슬럼프 없이 자신한테 주어진 몫, 그 이상의 활약을 펼친 탓에 재활군에 머문 시간들이 그한테는 심적 갈등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의외로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빨리 1군에 복귀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었다. 물론 TV로 경기를 지켜보다 보면 마음이 울렁거릴 때도 있고, 1군 마운드가 그립기도 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나서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1군에서 경기에 나갈 때보다 재활군에 있는 시간들이 더 편했다. 아무래도 훈련 외에 쉴 수 있는 시간이 많고, 야구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보니 절로 여유가 생기더라. 아주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내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대호 형이 좋아
한국 최고의 투수와 타자를 꼽는다면? 아마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주저없이 ‘류현진과 이대호’를 언급할 것이다. 류현진 인터뷰 때마다 자주 거론되는 이름 또한 이대호다. 다섯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류현진과 이대호는 형, 동생 이상의 밀접한 관계다.
▲ 영혼의 콤비라고 불렸던 류현진과 김태균. 2007년 LG와의 경기에서 류현진이 완투승을 거둔 뒤 김태균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이대호에 대해 회한이 많은 듯 거침없이 얘기 보따리를 풀던 류현진이 이렇게 하소연한다.
“대호 형이랑 통화할 때나, 운동장에서 만날 때는 나한테 ‘롯데 경기 때는 마운드에 오르지 말라’고 협박을 한다(웃음). 그런데 정작 내가 마운드에 오르면 대호 형은 한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선다(웃음). 워낙 내 공을 잘 때리고, 성적도 앞서 있으니까, 겉으로는 나오지 말라고 해놓고, 속으론 은근히 내가 나오길 바라는 것 같다. 그래도 난 대호 형이 좋다. 하하.”
#마운드에선 ‘애늙은이’?
훈련할 때나 홈런 치고 들어오는 선배들과 코믹한 세리머니를 연출할 때의 류현진 표정은 영락없는 10대 개구쟁이 소년 같다. 그런데 마운드에만 올라서면 그의 얼굴에선 도통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선 ‘애늙은이’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류현진은 나름 노력해서 나오는 무표정이라고 말한다.
“일부러 여유 있는 척하는 게 더 많다. 나도 사람인데, 시합 앞두고선 긴장하기 마련이고, 마운드에 올라가서 위기에 몰리면 더더욱 힘들고 외로울 때가 많다. 일부러 무표정하게 보이려고 연습을 했다. 특히 안타를 맞아도, 홈런을 먹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표정을 지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마운드에서 표정의 변화가 심하면 타자한테 얕보일 수 있다고 믿는다. 투수한테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포커페이스다.”
#2012 시즌 마치고 무조건 외국행!
2012년 시즌이 끝나면 류현진은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류현진은 이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한화 팬들은 내가 팀에 잔류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난 쉽게 오지 않는 이 기회를 꼭 잡고 싶다.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내 진로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만, 지금 같아선 미국이든, 일본이든 적극적으로 날 원하는 팀이 있는 나라로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어디를 먼저 택하든, 두 나라 야구를 모두 경험해 보고 싶다. 즉 미국으로 갔다가 일본으로 갈 수도 있고, 일본 진출 후 미국 야구를 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의 야구를 먼저 택하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한국에서처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지의 여부다. 그런데 난 그 점에 있어선 자신이 있다.”
#“태균이 형과 영혼의 콤비”
지바 롯데에서 한국으로 유턴한 김태균은 내년 시즌, 무조건적으로 친정팀인 한화에 복귀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했던 선수가 류현진이었다고 한다. 2006년 한화 입단 후 김태균과 친분을 맺으며 ‘영혼의 콤비’라고 불렸던 두 사람. 김태균이 일본으로 떠나기 전인 2009년까지 한화를 대표하는 투타 간판 스타로 활약했던 탓에 류현진이 그리워하는 김태균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다.
▲ ‘2010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올스타’에 참가한 류현진이 동료와 장난을 치고 있다. |
#김광현과 라이벌 대결 원해
한국 프로야구 좌완의 ‘양웅’ 류현진, 김광현. 한 살 차이인 두 에이스들은 사적인 친분과는 관계없이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조금 느슨해진 이유는 김광현이 올 시즌 경기장보다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재활로 보낸 시간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김광현의 뇌경색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고백한다.
“광현이가 힘든 걸 내색하는 편이 아니라 나도 잘 모르고 있다가 기사를 보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광현이한테 전화하기도 뭐하고 해서 가만히 있다가 얼마전 인천 경기 때 광현이랑 만나서 많은 얘길 나눴다. 이젠 완쾌했고, 선수 생활하는 데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광현이와의 맞대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내년 시즌에는 꼭 광현이와 맞대결을 펼쳐보이고 싶다. 내가 이기든, 광현이가 이기든, 한 번 제대로 붙어서 자웅을 겨뤘으면 좋겠다. 팬들의 바람도 바람이지만, 나 또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남은 얘기들
류현진한테 이렇게 물었다. ‘9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추신수가 타석에 선다면 어떤 공을 던지겠느냐’라고. 류현진의 대답이 재미있다.
“워낙 잘 치는 타자이기 때문에 정면 대결은 피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팀이 1점차로 이기고 있다면 승부를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피해가면서 유인구를 던질 것이고, 유인구를 던졌을 때 방망이가 돌아가주면 고마운 것이고….”
그래서 만약 류현진이 타자로 서고, 투수 류현진을 상대한다면, 어떻게 공략하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무조건 초구부터 자신있게 들이밀겠다!”
류현진은 주자 만루시 가장 상대하기 싫은 타자로 이대호를 꼽았고, 자신이 타자라면 가장 상대하기 힘든 투수로 류현진이 아닌 삼성 오승환이라고 대답했다. “승환이 형 공은 같은 투수인 내가 봐도, 정말 치기 어렵다. 타자들이 칠 수가 없는 공이다. 가끔은 승환이 형 때문에 내가 타자가 아닌 투수라는 데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라며 활짝 웃었다.
류현진은 올 시즌 마지막 인터뷰가 될지도 모르는 ‘리얼토크’에 이런 인사를 남겼다. “이렇게 달려와 보니, 부상으로 생겼던 두 달간의 공백이 너무 아쉽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우리 팀이 가을야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건 진짜 비밀인데, <일요신문>에만 살짝 공개하겠다. 요즘 (윤)석민이 형의 슬라이더를 열공 중이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한 가지 소원이라면, 불가능한 시나리오지만, 대호 형이 내년 시즌 외국 진출을 해서 한국에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웃음).”
대전=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