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업계에 M&A풍문이 난무한 가운데 구본무 최태원 두 총수가 비밀리에 만나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합성한 것임. | ||
구본무 LG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7월20일 비밀회동으로 벌써부터 통신업계가 떠들썩하다. SK와 LG 양측은 애써 확대해석을 꺼려하고 있지만 재계 3, 4위 그룹 총수가 비공개적으로 만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두 그룹은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간에 걸려있는 문제가 많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는 문제는 통신업계의 구조조정안. 두 그룹은 각각 유선통신망(LG)과 무선통신망(SK)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두 그룹 모두 유선망이든 무선망이든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안고 있다. 때문에 둘의 만남은 통신업계로서는 큰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올 8월부터 LG그룹의 인터넷망 임대사업자인 파워콤은 소매시장에 진출해 직접 고객확보에 나서게 돼 통신업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파워콤은 그간 사업망을 하나로 등 인터넷망 사업자들에게 임대해준 일종의 도매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소매사업 진출로 파워콤의 임대망을 사용하던 통신업체들이 긴장을 하게 됐다. LG는 파워콤의 소매시장 진출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유선통신사업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7월 초 구본무 회장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비공식적으로 만난 것도 LG의 통신시장 진출에 대한 최근의 관심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LG그룹의 구 회장은 그동안 전경련 모임에 일절 나서지 않는 등 재계 그룹 총수들과의 개별적 만남을 자제해 왔기 때문에 최근의 회동은 더욱 그 배경을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
통신시장 환경이 유무선통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선통신망 확보가 절실한 SK는 SK텔레콤에 유선전략 TF(Task Force)를 두고 유무선 통합 전략을 꾸준히 모색해 오고 있다. 최근의 시장상황을 볼 때 SK텔레콤이 손잡을 수 있는 유선사업자는 하나로텔레콤(하나로), 파워콤 중 하나이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대세다.
최근 두 총수의 만남을 계기로 SK와 하나로의 밀월 대신 SK텔레콤과 파워콤의 관계가 합작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로는 이미 기존사업모델이 다양하게 있어 제휴 후 곧바로 사업모델로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KT의 유선망을 능가하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파워콤은 잠재력으로 볼 때 훨씬 더 매력적이다.
SK텔레콤은 이미 2천만 명이 넘는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신규사업모델을 만들기 위한 자본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파워콤만으로도 충분히 유선통신사업에서 승산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파워콤의 지분 5%를 확보하고 있고 하나로 지분 또한 4.78% 확보하고 있어 언제든지 두 회사에 대해 인수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다.
한편 LG와 SK가 공동으로 하나로를 인수한다는 새로운 시나리오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가입자수 6백17만으로 유선통신망 시장의 50%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KT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규모라야 가능하다는 것. LG와 SK가 손을 잡고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다면 데이콤, 파워콤, 하나로, 두루넷을 하나로 합친 거대 통합망이 생긴다.
사업제휴뿐 아니라 LG와 SK 간의 빅딜설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LG와 SK 모두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사업 구조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과 통신이 그룹의 양대축인 SK는 통신 부분의 성장이 정체되는 데다 유무선통합환경에서 KT-KTF연합군에 막혀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가전사업과 통신사업의 명운을 가를 것으로 보이는 홈오토메이션 사업분야에서 벌써 KT와 삼성이 공조를 한 지 오래됐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유선과 무선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에서 무선분야의 강자로만 안주했던 SK가 손을 놓고 있다가는 자칫 시장의 미아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태원 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 이미 단말기 제조분야를 매각하는 등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LG 역시 사정이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LG의 통신사업군은 구본무 회장이 주도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LG그룹의 살림에 보탬이 되지 않고 있다. LG텔레콤이나 데이콤 등 유무선 사업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시장 1위 기업이 없다. 장부상 흑자는 정통부의 ‘선심’에 달려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게다가 LG는 임자 없는 하이닉스 인수의 강력한 후보자로 떠오르고 있다. 통신단말기 분야의 LG정보통신은 LG전자에 합병된 뒤 LG의 보약이 됐다. DJ정부에서 현대전자에 내준 반도체 사업의 ‘회수’는 LG그룹이 통신사업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득이 될 것이다’라는 게 중론이다. 또 LG의 품을 떠나 있는 LG카드 인수 후보자 명단에도 LG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중복투자’, ‘경쟁력 미비’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 통신사업 분야를 ‘구조조정’할 수도 있다는 게 재계 일각의 분석이다.
게다가 LG가 들고 있는 카드는 SK로선 무척 탐나는 물건이다. 그래서 두 회장의 만남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지난 7월12일 하이닉스의 워크아웃 조기졸업이 확정돼 채권단이 매각절차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도 구 회장의 마음을 바쁘게 하고 있을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현대전자에 LG반도체를 넘겨주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LG로서는 하이닉스의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현재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9조원이 넘어가고 있어 30%의 지분만 인수하려고 해도 3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LG카드도 빅딜의 또다른 변수다. LG카드는 최근 부실을 털어내고 수익성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또 SK의 카드사업 진출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볼 때 SK와 LG가 공동으로 LG카드를 인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와 LG 양측은 두 그룹 총수의 회동에 대해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합작설은 너무 앞서간 해석이다. 소버린과 관련해 이에 대한 얘기를 했을 가능성은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재계 선후배가 인사차 만났을 뿐”이라는 얘기다. 한편 LG그룹은 하이닉스, LG카드 인수설이 제기될 때마다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