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추어들의 바둑 대회 ‘내셔널리그’가 12월 하순부터 열릴 예정이다. 사진은 7월 23일 포항에서 열린 영일만 사랑배. |
출발이 예정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대바협으로서는 큰 열매를 하나 맺었다. 그리고 늦은 것도 아니다. 사실은 준비 기간을 1년도 잡지 않은 것이 대바협의 계산착오였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그 착오가 이제는 별 허물이 아니게 되었다.
내셔널리그에 대해서는 처음 얘기가 나올 때부터 호응이 좋았고, 적극적으로 참가하겠다는 지자체가 많았다. 그런데도 출범이 차일피일된 가장 큰 이유는 참가금이었고, 지자체에 따라서는 그게 좀 부담스러웠던 것인데, 대바협이 참가금을 받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틀자 일은 쉽게 풀리고 급속도로 해결이 된 것.
대바협은 참가 팀으로부터 참가금을 받지 않는 대신 역시 한국리그처럼 메인 스폰서를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하긴 내셔널리그에 참가하려면 크든 작든 선수단을 운영해야 하고, 그것만도 간단한 일이 아닌데, 거기다 참가비 부담까지 있다면 웬만한 지자체로서는 선뜻 결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참가 팀은 서울 인천 대구 광주-전남 충북 강원 고양 의정부 함양 당진 등 10곳이고 의향을 밝혔으나 확정되지 않은 부산을 포함하면 11곳. 현재로서는 팀의 모양새가 각각이다. 일단은 한국리그처럼 지역 연고의 프랜차이즈인데, 고양 의정부 함양 당진 등은 경기 경남 충남 대신 시-군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도(道)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팀을 하겠다는 뜻이다. 팀의 구성은 만 40세 이상 시니어 선수 1명, 주니어 선수 2명, 여자 선수 1명 등 4명이 기본이고 그 이상 규모를 더 키우는 것은 팀의 자유다.
광역단체의 이름을 걸고 있는 곳 중에 서울은 (주)건화, 인천은 에몬스가구, 대구는 덕영치과가 팀의 후원자가 될 것으로 전해진다. (주)건화는 대바협의 전신 한국아마바둑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황광웅 회장의 회사. 대구의 덕영치과는, 특히 바둑계에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치과. 보통 치과가 아니다. ‘치과 종합병원’이랄까, ‘치과 재벌’이랄까, 아무튼 덕영치과를 보면 우선 5층 건물 전체를 쓰고 있는 그 규모에 놀란다. 2년 전쯤에는 서울에도 ‘지원(?)’을 열었다. 이재윤 원장은 바둑계의 오랜 패트런으로 대구-경북 지역 바둑협회, 바둑 관련 단체의 좌장이며 최근에는 한국바둑학회장도 지냈다.
또한 20년 전통의 덕영배 바둑대회는 덕영치과가 단독으로 주최하는 대회. 대구에는 덕영배 말고 대구매일신문이 주최하던 아마대왕전이 있었는데, 아마대왕전은 몇 년 전에 없어졌고, 덕영배가 그 이름을 이어받아 ‘덕영배 아마대왕전’으로 개명했다.
개막전은 12월 하순으로 잡혀 있는 ‘2011 아마바둑인의 밤’ 행사 직전일 것으로 전해진다. 10팀이 1박2일 대회를 치르고 ‘아마바둑인의 밤’에서 시상식과 함께 개막 축포를 쏜다는 것. 개막전은 풀리그로 4강을 가린 후 플레이오프 방식으로 순위를 정한다. 우승상금은 1000만 원.
내셔널리그 출범 소식은 바둑계 전체가 반가워하고 있거니와 특히 지난 1년여 내셔널리그 추진본부장을 맡아 발이 닳도록 쉴 새 없이 전국 각지를 돌며 리그를 설명하고 참가를 설득-권유한 박창규 사업본부장(54)은 감회가 새롭다.
“고생 좀 했습니다…^^ 전국을 몇 번 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팔도 유람은 한 셈이지만…. 한 달에 집에서 잔 날이 며칠 안 될 겁니다. 찾아가서 얘기하면 원론적으로는 전부 찬성-지지였어요. 문제는 참가비였는데, 그걸 치우니까 대번에 길이 뚫리는군요.”
박 본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둑계의 아나운서. 스마트한 외모에 멋진 바리톤의 음색으로 바둑계 대소 행사의 사회-진행을 도맡고 있는 사람이다. 그 친화력과 인지도도 이번 성사에 밑거름이 되었다.
지자체 중에서는 내셔널리그가 거론되기 훨씬 전인 지난해 4월 바둑선수단을 창단한 고양시가 기쁨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고양시 바둑선수단 관계자는 “우리가 깃발을 들었으니 곧 이어 제2, 제3의 선수단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 그동안 좀 외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창단 자료를 참고로 보내달라고 했던 곳이 많아, 한편으로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생기긴 생기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말만 무성하고 정작 생기지는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답답하기도 했었다. 올해를 넘기지 않고 확정된 것은 뜻밖”이라고 말한다.
선수 쟁탈전이 벌어질 조짐이다. 아니 쟁탈전이란 말은 좀 그렇고, 실력이 있는 선수, 연구생에서 갓 나온 선수, 그런 선수들 영입하기 경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내셔널 리그가 프랜차이즈를 표방하고는 있으나 모든 팀들이 당장 시니어 1명, 주니어 2명 여자 1명을 전부 지역 연고로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벌써부터 누구는 어디로 가고, 누구는 사실 고향이 어디고, 어느 팀은 누구를 확보했고, 매일 뉴스와 화제가 등장하고 있다.
바둑계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기대가 된다. 선수단을 상설 운영하느냐, 리그가 열릴 때만 운영하느냐, 그건 지자체에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느 선 이상의 성과만 낸다면 상설 운영이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것은 물론 상설 운영이다.
어쨌거나 선수들이 지역의 이름으로 출전할 것이니 프로의 한국리그보다 응원의 열기는 더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리그도 물론 지역 연고지만, 프로들의 대회라 경기 자체의 내용과 결과에 관심을 가지느라 그런지 지역 연고가 주는 독특한 흥미, 예컨대 우리 동네 선수라는 일체감이나 응원의 열기 같은 것은 약하다. 이에 비해 내셔널리그는 그야말로 매일 얼굴을 대하는 우리 동네의 낯익은 선수, 친구들의 경기가 될 것이니 현실감-현장감이 자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친밀감을 더 높인다는 의미에서, 우리 아마추어의 지역 연고는 경기도보다는 고양이나 의정부, 충남보다는 당진이나 서산, 강원도보다는 강릉이나 원주 하는 식으로 지자체의 규모가 작을수록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2월 하순의 ‘아마 바둑인의 밤’이 기다려진다.
이광구 바둑전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