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수 조용형 눈 밖에…
▲ 항명파동으로 구설에 올랐던 유병수. 사진은 지난 3월 인천유나이티드 미디어데이 기자회견 모습. 윤성호 기자 |
대표적인 예로 한 번 찍히면 영원히 대표팀에 재승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여러 차례 있었으니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동안 평가전, 공식 대회 등 각종 A매치 기간에 대표팀 엔트리에 뽑혔다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해 다음 소집 때 탈락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
지난 1월 카타르 아시안컵 호주와의 2차전 때 유병수(알 힐랄)가 후반 교체 투입됐다가 21분 만에 교체 아웃된 이후 자신의 미니 홈피를 통해 ‘정말 못해먹겠다’는 뉘앙스의 글을 올렸다가 한바탕 큰 소란이 빚어졌다. 감독에 대한 항명부터, 교체된 선수를 빼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평가까지 여론은 썩 좋지 않았다. 당연히 유병수는 이후 대표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경기 연속 페널티킥을 허용한 결정적인 파울로 아웃된 곽태휘(울산), 조 감독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포어 리베로’ 포지션을 맡아 시험대에 올랐다가 결국 신임을 받지 못한 조용형(알 라얀) 등도 조광래호의 ‘블랙 리스트’에 오른 선수들이었다. 여기에 일부 K리그 선수들도 아픔을 많이 겪었다. 적게는 한 경기, 많아야 두 경기 정도 치르는 단기 소집 때 파주NFC에 모습을 드러낸 뒤 다음 소집 때 더 이상 모습을 찾기 어려운 선수들도 여럿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항간에서는 “조 감독이 지나치게 선수들을 물갈이한다. 대체 선발의 기준을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단순히 선수들을 많이 바꾼다고 해서, 새로운 선수들을 찾아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나라 축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대표팀에는 그 상황에 걸맞은 인원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감독이 꾀하는 전술적인 특성에 맞는 최적의 멤버들을 선정해야 하고, 아울러 그 시기에 최적의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이 뽑히는 게 당연하다. 타이밍이라는 변수는 무시할 수 없다.
#이동국, 브라질월드컵 갈까
▲ 지난 7일 폴란드와의 평가전에 선발 출전한 이동국.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서 ‘해외 연수’ ‘먹튀’ 논란을 극복하고 K리그에서 성공적인 안착을 해 제2의 전성기를 보내는 이동국은 10월 7일 폴란드 평가전과 11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2차전에 대비한 소집 명단에 올랐다.
이는 솔직히 말해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동국에 대한 조광래호 코칭스태프의 평가는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문전 앞에서만 어슬렁거리며 골을 주워 먹기만 하는 공격수는 필요 없다’는 나름의 기준을 가졌던 조 감독이었다. 실제 이동국은 전북에서 재기하기 전까지 ‘어슬렁거리는’ 대표적인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손꼽혀왔다.
물론 대표팀 승선 여부를 놓고 마지막까지 망설인 게 사실이었다. 여기에 선발 시기도 복잡 미묘했다. 이동국은 처음부터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엔트리가 발표됐을 때 이동국의 이름은 리스트에 없었다. 이동국이 발탁된 결정적인 계기는 9월 2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전북과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 간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보인 무력 시위였다.
당시 조 감독은 브라질 출신 피지컬 담당 가마 코치를 제외한 박태하, 서정원, 김현태 골키퍼 담당 코치 등 코칭스태프를 모두 대동하고 전주를 찾았다. 이들이 출장을 떠나온 주목적은 두 가지였다. 세레소 오사카에 몸담고 있는 미드필더 김보경과 골키퍼 김진현을 점검하기 위함이었고, 처음 발탁시킨 전북 소속의 측면 날개 서정진의 플레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경악할 만한 일이 터졌다. 전반 12분 만에 김보경은 전북 최철순의 머리에 안면을 부딪쳐 코뼈가 부러지는 전치 2개월의 큰 부상을 입었고, 대표팀 넘버원 골키퍼 정성룡(수원)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김 코치가 점찍은 김진현은 무려 6실점이나 했다. 공교롭게도 이 중 4골을 이동국이 뽑아냈다.
당연히 대표팀 코치진은 부산해졌다. 기대했던 시나리오가 아닌 탓이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펄펄 날고 있는 선수를 뽑았으니 이견이 나올 만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동국을 선발했다고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공식 발표한 이후 사단이 터졌다.
이동국의 의사를 묻기 위해 서정원 코치가 전주를 다시 방문해 이동국을 만나 면담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보도자료를 통해 배포한 “이동국이 제대로 된 기량을 보여주겠다는 굳은 의지를 나타내 다시 뽑게 됐다”는 조 감독의 코멘트가 문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이동국이 마치 김보경의 대체 자원으로 뽑힌 듯한 인상도 전북을 불편하게 했다.
당시 전북 측이 내놓은 이동국의 입장은 달랐다. 이동국은 전북 최강희 감독에게 다른 얘기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국은 소속 팀이 1위 수성을 하기 위한 중요한 상황을 맞이했고, 그간 전북 소속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갔다가 별다른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상처만 입고 돌아왔던 과거를 서 코치에게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대표팀에서 뛰고 싶지 않다”는 말도 하진 않았다. 국내에서 ‘내가 제일 잘나가’를 외치는 선수로서, 고참급 선수로서의 의견을 전달한 것이었다.
전북 이철근 단장도 불쾌해했다. 세레소 오사카전 당일 전반까지만 해도 자신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았던 조 감독이 이동국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뽑은 모양새가 진정 필요해서 선발한 게 아니라 까마득한 후배 김보경에 밀렸다가 어쩔 수 없이 발탁한 상황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더욱 모호했던 건 (전북 입장에서는 가장 싫은 상황이었으나) 이동국이 승선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나왔을 때, 최강희 감독은 인터넷 인터뷰를 통해 “동국이는 지금 소속 팀에서 충분히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는 답변을 내놓은 이후였다. 불과 몇 시간 차로 최 감독의 말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었다. 최 감독은 서 코치가 별다른 연락도 없이 전주를 다녀간 것에 대해서도 섭섭해 했다.
최 감독은 “김보경이 다치기 전에 진작 뽑아줬다면 이런 오해도 없었을 것이다. K리그 최고의 선수가 가서 제대로 기회도 잡지 못해 벤치에만 앉아있다 자존심을 구기고 또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며 씁쓸해 했다.
11월 예정된 또 다른 소집 명단에 이동국이 뽑힐지 여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분명한 점은 이동국도 내심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멋지게 현역에서 은퇴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선발됐든, 그렇지 않든 이동국이 다시 조 감독의 눈에 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30대 초·중반 나이대는 월드컵이란 굵직한 국제 이벤트에서 그간의 관록을 풀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 감독은 후한 평가를 했다. “동국이가 정말 달라졌다. 문전 20m 이내 움직임이 예전과 천양지차다.” 조 감독의 측근도 이런 말을 했다. “조 감독도 계속 이동국의 플레이를 체크해왔다. 한 번 잘했다고 뽑는 스타일도 아니다.”
#편애와 무한신뢰 사이
▲ 지난 7일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작전 지시를 하는 조광래 감독. |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유럽무대는 전 세계 축구를 이끌어가는 기둥이란 점에 부정적인 표를 던질 이는 드물다. 실제로 국내 무대에서 실력이 검증된 스타들이 해당 클럽들에 선택을 받아 그곳에 머물고 영예를 누리는 것이 사실이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어온 이들은 대개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못해온 것도 아니다. 2000년대를 풍미하고 태극마크를 반납, 당당히 역사의 뒤안길로 돌아선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조 감독은 이러한 외부 얘기에 “결코 아니다”란 입장을 견지한다. 국가를 대표할 만한 실력이 있으면 K리그 선수들도 충분히 중용한다는 것. 오히려 복권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센터백 곽태휘는 한동안 마음앓이를 하다 소속 팀 울산에서의 맹활약으로 다시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명예회복의 길이 다시금 열렸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곽태휘는 1981년생으로 이번 소집 명단에 오른 조병국(베갈타 센다이) 등과 나이 30줄을 넘긴 선수들 중 한 명이니, 조 감독이 무조건 영건들만 중용한다고도 보기 어렵다.
다만 조광래호가 견지하고,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이 전원이 압박해 들어가고 빠른 패스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유럽에서 통하는 실력이 국내에서만 뛰는 선수들에 비해 아무래도 일종의 어드밴티지를 얻을 수밖에 없는 것도 맞다.
조 감독이 풀어내야 할 또 다른 오해도 분명 있다. “소속 팀에서의 현재 플레이가 팀 네임밸류와 관계없이 좋아야 한다”는 예전부터 견지해온 기준이다. 아쉽게도 유럽 리거들 일부는 이러한 조 감독의 엄격한 기준을 벗어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별다른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이나 지동원(선덜랜드) 등이 K리그에서 뛰고 있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월등히 실력이 좋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컨디션마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탓이다.
한 에이전트는 “해외파를 중용하는 뜻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 선수들은 조광래 감독이 세운 기준과 영향에서 벗어난 치외 법권 지역에 있는 것 같다. 컨디션이나 활약상이 국내파에 비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좀 더 확실한 선발 기준이 필요하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황보관 축구협회 기술교육국장 역시 “해외파가 제 몫을 하지 못하면 대표팀 전체의 틀이 무너질 수 있어 걱정스럽다. 해외파 운용의 묘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편애’와 ‘무한신뢰’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조광래 감독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