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미PGA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에서 우승한 나상욱이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 세계가 인정한 골프 스윙의 대가
나상욱은 파워가 부족하다. 드라이버샷의 비거리가 280야드로 올 시즌 미PGA에서 172위에 올라 있다. 대회마다 140여 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최하위권이라고 보면 된다. 181㎝의 나상욱은 작은 키가 아니다. 하지만 체중이 75㎏로 호리호리하고 선천적으로 파워가 부족하다. 미국주니어골프무대(AJGA)에서 100회 이상 우승을 차지한 골프신동으로, 어렸을 때는 파워 부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성인 프로무대에서는 천재성이 발목을 잡았다.
나상욱의 두 살 터울 형으로 AJGA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미PGA 클래스A 자격증을 가진 나상현 경희대 객원교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상욱이는 미PGA 선수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스윙 전문가로 통한다. 부치 하먼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슨코치는 거의 대부분 배워봤고,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워낙 노력을 많이 하다 보니 골프스윙에 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상욱의 짧은 비거리는 천재를 노력하게 만들었다. 비거리를 만회하려다 보니 퍼팅 등 쇼트게임과 우드 및 롱아이언 샷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2004, 2005년 나상욱 전담기자로 미국에서 투어생활을 함께했던 JNA의 최민석 기자는 “나상욱 프로는 항상 ‘비거리가 10야드만 더 나가면…’ 하고 아쉬워했다. 그런데 옆에서 보면 그런 한계 때문에 골프에 더 매진했고, 정확성이나 집중력 등 다른 기술들이 아주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최 기자는 “지금까지 본 선수 중 나상욱만큼 골프기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또 이를 익힌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극찬했다. 실제로 나상욱은 올해 라운드당 퍼트 수에서 27.78개로 전체 2위에 올라 있다.
# 그런데 이제 20야드가 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나상욱이 지난 여름 스윙교정을 계기로 20야드 이상 거리가 늘었다는 사실이다. 거리가 늘다 보니 아이언샷이 그린을 넘어가 거리조절에 애를 먹기도 했다. 요즘은 예전보다 아이언 클럽을 한두 클럽 짧게 잡는다.
현재 나상욱은 특별히 레슨프로를 두고 있지 않다. 스스로 진단을 하고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을 때 기존 코치들을 찾아가 문의한다. 특히 두 살 위인 친형, 나상현 교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 여름 나상현 교수는 방학을 맞아 미국으로 건너가 나상욱과 함께 스윙교정을 하며 미PGA 두 대회를 함께 다녔다. 이 기간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톱10에 드는 등 성적도 좋아졌다. 고질적인 약점인 비거리를 늘렸기 때문에 호성적이 기대됐다고 한다.
실제로 나상욱은 이번 저스틴 팀버레이크 오픈에서 드라이버샷의 비거리 부분에서 314야드를 기록해 30위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단타자였던 나상욱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사막지역(라스베이거스)으로 평소보다 거리가 좀 늘어난 효과도 있지만 이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나상욱의 거리가 확실히 늘어났음이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7년 만의 첫 우승이 꼭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대회 3라운드에서 헛스윙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사실 이것도 스윙교정 및 비거리 증가 과정에서 나왔다. 아직 스윙이 몸에 익지 않아 치려는 순간 아니다 싶으면 그냥 연습스윙으로 허공을 가르는 것이다. 동료선수나 미PGA 경기위원들도 다 알고 있다고 한다. 치려는 ‘의도’가 없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미PGA사무국이 화젯거리를 만들기 위해 홈페이지에 이 장면을 띄웠고, 부러 논란을 키웠다고 한다. 나상욱의 가벼운 항의로 모두 소명됐다.
# “근자에…” 뼈 속까지 한국인
지난 2월 PGA 투어 노던 트러스트오픈 당시 나상욱은 우승 경쟁을 펼치면서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꼭 아버지께 우승컵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이 바람이 8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아버지 나용훈 씨(58)도 한국에서 집중치료를 받으면서 이제는 거의 완쾌했다.
나상욱은 이번에 우승하자마자 제주도에서 요양 중인 아버지께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나용훈 씨는 “장하다. 수고했다”고 격려했고, 나상욱은 자신의 형에게 “지난 8년간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며 기뻐했다. 참고로 나용훈 씨는 축구선수 출신으로 경신중학교 때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과 함께 뛴 바 있다.
나상욱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했고, 1991년 도미한 이후에도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미국에서 여유 있게 살았다. 나용훈 씨와 어머니 정혜원 씨(54)는 자녀교육에 엄격했다. 한 번은 두 아들이 영어로 싸우는 것을 본 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집에서는 영어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한글학교는 물론이고, 한자교육까지 시켰다.
이 덕에 나상욱과 형 나상현 교수는 한국어가 유창하다. 재미있는 것은 나상욱이 한국말을 잘하지만 골프를 하다 보니 한국의 어른들과 접촉을 많이 해 20대 전후, 그리고 지금까지 표현이 옛날 어른들이 쓰던 한자를 많이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요즘에’라는 말 대신 ‘근자에’라고 말하는 식이다.
최민석 기자에 따르면 나상욱은 ‘재미동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은 뼈 속까지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재미동포로 부르는 것이 영 어색하다는 것이다. 여덟 살에 이민을 왔고, 이후 영주권을 취득한 상태에서 부모가 시민권을 얻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미국국적을 갖게 됐다. 이후 18세에 프로 선언을 했고, 2004년부터 미PGA에서 뛰었으니 군대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 지난해 5월 17일 ‘SK 텔레콤 오픈 2010 초청선수 기자회견’에서 나상욱이 각오를 밝히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
나상욱은 형 상현 씨에게 아주 잘한다. 두 살 차이지만 형한테는 꼼짝도 못한다고 한다. 이유는 부모가 나상욱의 골프 후원에 집중하면서 상현 씨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혼자 모든 것을 알아서 해왔기에 형에 대한 미안함이 클 수밖에 없다. 유난히 똑똑했던 상현 씨는 중학교 이후 공부에 전념해 미국 서부의 최고명문으로 꼽히는 UCLA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후 UNLV(라스베이거스주립대)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PGA 클래스A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는 한국체육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경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상현 씨가 UNLV에 다닐 때 나상욱은 형과 가깝게 지내기 위해 자신의 집을 라스베이거스에 구했고, 이번에 첫 우승도 라스베이거스의 홈코스에서 일궜다. 2007년에는 상현 씨가 나상욱을 따라 캐디로 1년간 미PGA 투어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나상욱을 떠나 상현 씨는 한국에서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유능한 골프전문가다. 나상욱이 얼마나 형을 따르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나상욱은 형이 경희대에 근무하게 되자 지난해 여름 경희대에 입학해 형과 사제관계가 됐다.
향후 나상욱은 10년 이상 미PGA서 정상급 선수로 활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상현 씨는 한국에 정착해 골프발전에 매진할 계획이다. 영어는 물론이고, 미PGA 등 골프에 해박한 상현 씨는 차세대 골프해설가로도 주목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상현 씨는 존 댈리, 브라이언 게이, 조 어글비 등 미PGA의 톱랭커들과 친분이 두텁기도 하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 ‘동생의 미PGA 경기를 형이 해설하는 것도 가능할 전망이다.
# 박지성의 빅팬, 스피드광, 여친은 없다!
나상욱은 골프밖에 모른다. 프로 초창기 시절 뉴저지 대회에 나갔는데, 어머니 정 씨가 잠깐 뉴욕에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온 어머니에게 진지하게 하는 질문이 “엄마, 정말 뉴욕사람들은 다 넥타이에 양복 입고 다녀?”였다. 미국에서 주니어시절을 보낸 20대 초반의 젊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세상 물정을 몰랐다.
골프밖에 모르고, 미국에서 그 흔한 맥주도 잘 먹지 못한다.
“언젠가 나상욱 프로가 연속으로 컷 탈락을 한 적이 있었어요. 일찍 대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죠. 나 프로가 뭐하는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화장실에 가서 웩웩 하고 구토를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속이 상해 냉장고의 캔 맥주를 하나 꺼내 먹고선 탈이 났더라고요. 그만큼 술이나 노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거죠.”
함께 2년간 미국에서 생활했던 최민석 기자의 전언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상욱은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쉬는 시간에도 주로 축구 비디오 게임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단연 박지성이다. 이유는 언젠가 박지성에 관한 TV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형, 박지성 선수가 나랑 똑같아요. 사람이 참 솔직하고, 운동밖에 모르고, 정말 마음에 들어요. 꼭 만나고 싶어요. 형 동생 하며 지내고 싶어요. 같은 운동선수끼리니까 잘 통할 것 같아요.” 당시 나상욱은 형 상현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박지성이 뛰는 게임을 즐겨 시청하고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직접 박지성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 나상욱의 바람이다. 박지성이 자신보다 두 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형’으로 모시고 싶어 한다.
나상욱은 현재 여자친구가 없다. 부모는 물론이고, 자신도 결혼은 무조건 한국여자와 하고 싶어 한다. 차분한 외모와 성격과는 달리 은근 스피드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BMW750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데, 람보르기니도 갖고 있어 가끔 이 애마로 스피드를 즐긴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나상욱은 식도락가 수준은 아니지만, 꽃등심부터 인앤아웃(미국 서부에 있는 패스트푸드 식당)이나 라면 등 평범한 음식까지 다양하게 즐기는 편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