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연재는 가녀린 외모와 달리 인터뷰 내내 강한 승부 근성을 드러냈다.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바나나와 우유가 식사?
손연재가 대회 기간 때 먹는 식단이 공개되면서 팬들 사이에선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바나나와 우유로만 점심을 때운다는 메뉴를 보고 ‘그것 먹고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들이 많았단다. 손연재는 정색하며 ‘결코 그렇게 먹고 운동할 수가 없다’고 설명을 곁들인다.
“운동을 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바나나와 우유만 먹고선 절대로 힘을 낼 수가 없어요. 그 식단은 아주 드문 예이고, 실제론 잘 먹으면서 운동해요. 체중 때문에 항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만, 고된 훈련을 이겨내려면 잘 먹어야 해요. 필요할 때는 고기도 먹고, 피자도 먹는답니다.”
# CF 촬영에만 집중한다?
김연아가 훈련을 위해 캐나다 토론토와 LA에서 머물렀다면 손연재는 러시아에서 주로 생활한다. 한국에는 국제대회가 끝났거나 일이 있을 때만 잠시 들르는 수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출전 티켓을 손에 쥔 손연재는 오는 10월 말까지 한국에 머물며 학교 수업과 전국체전, 그리고 CF 촬영 등을 소화하게 된다. 요즘 손연재가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CF 촬영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이전보단 광고 촬영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훈련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CF를 많이 찍는 건 아니에요. 특히 CF를 통해 벌어 들인 수입의 대부분은 훈련비에 쓰여요. 러시아에서 훈련할 때 한 달에 약 3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되는데 전적으로 개인 부담이거든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러시아 전지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그러나 얼굴이 알려지고 스폰서도 생기고 광고 촬영이 들어오면서 해외 전지훈련이 가능해졌어요. 매니지먼트사에서도 모든 광고 요청을 다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제 이미지에 걸맞은 내용의 CF를 찍고 있다고 믿어요.”
# 리듬체조로 갈라쇼를?
리듬체조가 손연재라는 이름을 통해 더욱 많이 관심을 받고 알려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손연재는 국내 리듬체조 사상 처음으로 갈라쇼를 개최하며 세계적인 유명 리듬체조 선수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바 있다. 국제대회에서만 마주했던 선수들과 한국 무대에 함께 서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국내에 리듬체조도 쇼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 정립을 시도했다.
“리듬체조로 갈라쇼를 해 보인다는 데 대해 많은 분들이 의아해 했어요. 그러나 리듬체조가 조금 더 대중들에게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었죠. 성공적으로 잘 끝나서 다행이고, 갈라쇼에서 만났던 세계적인 스타들을 국제대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더 반갑고 친하게 지내게 되더라고요. 제 혼자 힘으론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 카나예바한테 배울 점
손연재는 세계 리듬체조계의 심장으로 불리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의 노보고르스크에서 8개월가량 훈련했다. 세계 리듬체조계의 1, 2위 선수들을 포함해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그중에서 손연재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선수가 예브게니아 카나예바와 다리아 콘다코바다.
“세계 랭킹 1, 2위를 다투는 선수들인 만큼 보고 배울 게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카나예바 선수한테선 성실한 자세, 콘다코바 선수한테선 파워풀한 연기력을 본받고 싶어요.”
# 악플에 대처하는 자세
손연재란 이름이 언론에 오르 내리고, 국제 대회에서 성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그는 남다른 고충을 안고 살아야 했다. 바로 그의 기사마다 따라다니는 악플들이다. 특히 손연재가 김연아와 비교되고 김연아가 출연하는 CF들의 경쟁사에 손연재가 등장하면서 악의적인 비난의 댓글들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주위에선 댓글들을 보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시지만, 아예 안 볼 수는 없더라고요. 안 보려고 해도 자꾸 댓글들에 눈이 가게 됐어요. 절 응원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는데, 제 마음 속에 남는 건 이상하게 절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댓글들이었어요. 전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이에요. 아직 어린 나이라 비난의 댓글들을 접하면 아무리 안 그런 척해도 상처를 받게 되더라고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훈련을 해야 했고, 내색하지 않고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짓곤 했었죠. 올해는 더더욱 괴로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더 노력하고 더 좋은 성적을 내면, 절 비난하는 분들도 제 편이 돼주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자꾸 오기가 생겨요. 더 잘해야겠다는 오기가요.”
# 올림픽 도전 자세
“원래는 올림픽에 출전해서 탑10 안에 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이젠 조심스럽게 욕심을 내보려고 해요. 바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겁니다. 러시아에서 훈련을 하면서 자신감이 상승된 것 같아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어요. 여기서 더 노력하면 또 다른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어요. 분명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해보려고요.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하다보면 그 근처에는 도달해 있지 않겠어요?”
# 신체 조건의 불리함
유럽 선수들이 장악하고 있는 리듬체조계에 손연재의 존재는 ‘이방인’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젠 ‘이방인’에서 머물지 않고 손연재는 그들과 함께 서 있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종종 동양인의 신체적인 조건의 불리함이 손연재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손연재는 언제까지 신체 조건 탓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가볍게 항변한다.
“유럽 선수들은 팔, 다리가 길고 늘씬하잖아요. 얼마 전까지 그들의 신체 조건이 너무 부러웠어요. 왜 나는 키도 작고 팔, 다리가 더 길지 않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고요. 그러나 그런 점들을 기술적으로 보완해 갈 수 있는 방법들이 생기더라고요. 똑같은 동작을 해도 크게 움직인다든지 하면서 제가 표현해 낼 수 있는 극대치를 끌어내는 거죠. 체조는 맨발로 하기 때문에 키가 작으면 절대적으로 불리해요. 전 그 한계를 깨보고 싶어요.”
# 체조보다 어려운 시험
손연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다음날 학교로 달려가 중간고사를 치러야 했다. 대회 준비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손연재. 시험보러 가는 기분이 즐거울 리가 없다.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려운 점들이 많아요. 특히 시험 볼 때는 도망가고 싶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요. 공부를 많이 하고, 준비도 제대로 한 뒤 시험을 치르면 기분도 좋고, 자신감도 생기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학교 시험은 체조 시험과는 아주 다른 ‘숙제’가 돼요. 그래도 나름 영어, 러시아어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죠(웃음)?”
손연재는 기자와 만난 날, 전국체육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10월 10일 고등부 리듬체조 부문에 출전하는 손연재는 다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대회를 준비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이번 체전은 오랜만에 국내 팬들에게 제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라, 더 많은 훈련을 통해 ‘손연재가 이렇게 발전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그런데 오라는 데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아서 훈련에 집중하지를 못했어요. 주어진 시간 동안 잘 준비해서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요.”
오는 10월 말 러시아로 돌아가는 손연재는 러시아 코치와 함께 본격적인 올림픽 준비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새로운 시즌에 맞춰 작품과 음악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손연재로선 굉장히 중요한 시간들이다.
스스로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라고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가 보여준 모습은 성숙함이 물씬 풍겼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손연재를 가리켜 이젠 ‘제2의 김연아’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리듬체조의 요정’이었고,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당차고 승부근성이 강한 오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올림픽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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