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보면 바지사장을 구인·구직하는 글들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
대부분 이런 명의대여는 일명 ‘바지 사장’을 만들어 업소를 개설하는 데 쓰여진다. 바지사장은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실제 소유주는 따로 있고, 이름만 사장인 ‘가짜 사장’을 말한다. 주로 유흥업소, 안마시술소, 사행성 오락실 등 음지에 존재하는 업체들이 주로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이런 바지사장을 내세운다. 명의를 빌려준 바지사장은 실소유주는 아니지만 법적으론 엄연히 사장이다. 따라서 경찰 단속에 적발됐을 때에는 모든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또 진짜 사업주 대신에 징역을 살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명의대여는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까지 거래된다. 하지만 바지사장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범죄의 온상이자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바지사장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지난 4월 정치권과 금융권 인사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국회 앞 안마시술소 사건은 시각장애인 사장 A 씨(여·39)가 업주로 밝혀지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경찰조사에서 A 씨는 본인이 사장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안마시술소가 바지사장을 두고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A 씨 또한 바지사장일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지난 10월 18일 기자와 만난 경찰관계자는 “A 씨는 지분참여 형식으로 끼어든 것 같다. 공동으로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실제 사장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 날 기자와 전화통화한 안마업계 관계자의 말은 달랐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분참여 방식은 바지사장의 또 다른 유형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 의료법상 우리나라에서 안마시술소 개설은 대한안마협회에 등록된 시각장애인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보통 시각장애인들이 바지사장으로 참여하는 방법은 업소를 개설할 수 있도록 명의만 빌려주고 월급을 받는 형태와 A 씨처럼 지분참여, 즉 같이 수익을 나눠 갖는 식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실제 경영은 업소에 상주하는 실장이라는 사람이 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다고 해도 엄연히 투자자는 따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A 씨는 바지사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바지사장은 안마업계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유흥업소 사장, 안마시술소 명예원장, 불법 사행성 오락실 업주 등 바지사장의 세계는 다양하다. 기자는 과거 직접 유흥업계에서 종사하면서 바지사장을 구해 룸살롱을 경영한 적이 있는 유흥업계 관계자와 만나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눠 봤다.
김 아무개 사장은 “강남 일대 유흥업소 중 80~90%가 바지사장을 세운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지 사장을 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보통 업소 관계자들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중반의 남성을 선호한다. 또 업계 관계자들은 초범자를 선호한다고 한다. 김 사장은 “초범자는 대통령 빽보다 좋다. 그래야 나중에 단속에 걸려도 빼내기 쉽고 편하다”고 말했다.
김 사장 말에 따르면 바지사장이 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업소에 상주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 가게에 나오면 된다고 한다. 실제 운영은 진짜 사장(실소유주)이 실장이나 부장 등의 직책으로 위장해 가게를 운영한다. 경찰 단속이 나오면 진짜 사장은 ‘나는 직원일 뿐이다’며 발뺌하면 된다.
바지사장 계약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존재한다. 계약서는 절대 쓰지 않는다. 구두상으로 이뤄진다. 쓸데없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급여도 계좌이체는 이용하지 않는다. 보통 풀살롱 바지사장의 급여는 월 150만~200만 원이고, 하이클래스급 바지사장은 400만~500만 원인데 일급이나 주급 형태로 현금으로 지급된다.
여기에 바지사장 계약에는 반드시 보상조건이라는 것이 따라간다.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인데, 경찰 단속에 걸렸을 때 업소에서 뒤처리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런 보상조건은 업소의 급에 따라 달라진다. 풀살롱 급은 보상금으로 3000만~5000만 원이 지급된다. 물론 바지사장이 징역이나 법적 책임을 진 후의 얘기다. 여기에 변호사 선임비까지 지급된다. 텐프로나 쩜오 등 하이클래스 급은 액수가 더 커진다. 역시 변호사 선임비는 기본이고 보상금으로 5000만~1억 원이 지급된다. 이런 조건 때문에 신용불량자나 돈이 급한 사람들은 바지사장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지난 9월 국정감사장에서 “지하경제의 자금줄이자, 탈세와 불법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바지사장이 인터넷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며 인터넷에 넘쳐나는 바지사장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바지사장’ 키워드를 검색하면 관련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 4월에 신규 개설돼 3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는 A 인터넷 카페에는 카페개설 후 지금까지 꾸준히 바지사장 구인·구직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카페 회원인 김 아무개 씨는 “나이는 26세입니다. 등급은 8등급입니다. 시키시는 일 뭐든 잘할 자신 있습니다. 시켜만 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닉네임 ‘날아라 승짱’을 쓰는 회원은 “나이는 38세, 지역은 인천입니다. 신불 통불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기자는 바지사장을 구하는 업소 관계자로 위장해 카페 회원에게 접근해봤다. 그 결과 바지사장이 되길 원하는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신용불량자이거나 휴대폰 요금이 연체된 상태로 당장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신용)조건이 너무 나쁘다’는 기자의 말에 한 구직자는 “신용등급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조건만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바지사장을 하면 일확천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실제 업주가 도주하거나, 뒤처리를 안 해주면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실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바지사장이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바다이야기’라는 오락실에서 바지사장을 한 B 씨의 사연은 ‘바지사장’ 구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B 씨는 2007년 8월경에 바다이야기라는 사행성 오락실에서 일당 5만 원을 받고 일명 문방이라는 망을 보는 일을 했다. 그런데 사장이 대신 단속을 맞아주면 5만 원씩을 더 주고 벌금도 내준다고 해서 B 씨는 바지사장을 허락했다.
이후 B 씨의 오락실은 단속을 맞게 됐고 2008년 1월경 1000만 원의 벌금이 나왔다. 그런데 그 후 실제 사장은 가게 문을 닫았고 연락도 두절됐다. 검찰에 문의해보니 B 씨 이름으로 단속을 맞았으니 B 씨가 벌금을 내야 하고, 억울하면 정식재판을 청구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B 씨가 바지사장이라는 증인들은 여러 명 있었지만 서류상으론 증거가 없었다. 결국 B 씨는 억울하지만 벌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