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등판’ 컨벤션 효과커녕 되레 반작용만…지방선거 실패 시 당권 도전 불투명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발칵 뒤집혔다. ‘안희정·박원순·오거돈’ 사태에 이어 박완주 의원 성비위 의혹까지 덮치자 지방선거 패배론이 당 안팎을 휘감았다. 특히 ‘선 당권·후 대권 프로젝트’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측은 초비상 상황이다. 민주당이 과반 승리에 실패할 경우 이재명 위원장의 차기 당권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악 땐 차기 대권 도전도 불투명해진다. 회심의 승부수인 조기 등판이 ‘자승자박’ 카드로 전락하면서 이 위원장이 ‘외통수’에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딱 4음절.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박완주 성 비위 의혹 이후 당내 분위기를 묻자 “아수라장”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보수색이 강한 촌 지역에선 ‘또 민주당이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며 “이러다가 서해 벨트 핵심 축인 충청권이 전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했다. 민주당은 애초 충청권 4곳 중 세종은 ‘우세’, 충남은 ‘박빙 우세’, 충북과 대전은 ‘박빙 열세’로 분류했다.
그러나 박완주 성 비위 의혹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판세 균형추가 국민의힘 쪽으로 기울었다. 특히 박빙 우세인 충남에서 데드크로스(지지도 역전 현상) 조짐을 보였다. 5월 17일 민주당에서 제명된 박 의원 지역구는 ‘충남 천안을’이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상파 3사(MBC·KBS·SBS) 의뢰로 5월 14∼15일까지 조사(16일 공표, 이하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한 결과를 보면, 충남도지사 선거에서 김태흠 국민의힘 후보가 40.5%, 양승조 민주당 후보가 34.3%를 각각 기록했다. 양자 격차는 6.2%포인트(p)로, 오차범위 내(95% 신뢰수준에서 ±3.5%포인트)이지만, 지지도 추세선은 박완주 사태 이전과 이후로 극명히 엇갈렸다. 앞서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4월 30∼5월 1일 조사(2일 공표)한 결과와 비교하면, 김태흠 후보(38.8%)가 1.7%p 상승하는 사이, 양승조 후보(37.5%)는 3.2%p 하락했다. 양 후보는 여성 유권자와 천안권 유권자에서 6.5%p와 6.4%p 각각 떨어졌다. 박완주 사태가 양 후보 지지도를 끌어내린 셈이다.
민주당 인사들은 추세선이 뒤집어진 충남 여론조사가 나오자 충격에 휩싸였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지방선거의 제1 변수는 첫째도 둘째도 ‘현역 프리미엄’인데, 양 후보 지지도가 하락한다는 것은 지난 4년간 지역을 누빈 현역 광역단체장의 지지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했다. 당 내부에선 “지방선거 승리 매직넘버인 8곳 승리를 위해선 충청에서 최소 2곳(세종·충남)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이마저도 뺏긴다면 목표 달성에 적신호가 켜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더 큰 고민은 ‘윤풍(윤석열 대통령 바람)’이다. 원내대표 출마를 원하던 김태흠 후보가 충남도지사로 턴한 것은 윤심(윤 대통령 의중)이 결정적이었다. 민주당 일각에선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후보들의 선전이 윤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심 카드의 양대 축은 경기도지사와 충남도지사에 나선 김은혜·김태흠 후보다. 민주당을 덮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충청권에 부는 윤풍이 수도권으로 부상, 수도권 빅3(서울·경기·인천) 중 그나마 비벼볼 만한 경기까지 여당에 뺏기는 것이다. 민주당에선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인 김동연 후보가 출마했다. 지방선거 초반, 한때 10%p가량 앞서던 김동연 후보 측은 최근 초접전 여론조사가 속출하면서 긴장 상태에 빠졌다.
한국갤럽이 중앙일보 의뢰로 5월 13∼14일 조사(공표 16일)한 경기도지사 지지도에 따르면 김은혜 후보는 40.5%, 김동연 후보는 38.1%를 각각 기록했다. 같은 여론조사기관이 4월 29∼30일(공표 5월 2일) 조사한 결과와 비교하면, 김동연 후보 하락세(4.5%p)는 김은혜 후보의 하락세(2.2%p)보다 더 가팔랐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발 성 비위 의혹 이후 캠프에 위기감이 커졌다고 하더라”며 “수도권 빅3도 다 뺏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기뿐만이 아니다. 한국갤럽·중앙일보 조사에서 서울시장의 경우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56.5%, 송영길 민주당 후보 31.4%로 양자 격차가 21.9%p에서 25.1%p로 더 벌어졌다. 인천시장 조사에서도 유정복 국민의힘 후보와 박남춘 민주당 후보 격차가 5.2%p(41.5% vs 36.3%)에서 12.9%p(45.8% vs 32.9%)로 두 배 이상 났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은 이재명 위원장이다. 여의도 안팎에선 이 위원장이 보궐선거(인천 계양을)에서 당선되더라도, 수도권 3곳을 뺏길 땐 ‘승자의 저주’에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본인만 승전고를 울릴 경우 ‘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에선 패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당 전략통들은 격차가 벌어진 서울보다는 경기·인천 판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위원장이 전임 경기도지사인 데다, 조기 등판 연결고리가 ‘인천’이라는 점에서 이 두 곳을 실기할 땐 책임론을 둘러싼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당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은 이재명 조기 등판에 따른 컨벤션 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는커녕 되레 반작용만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진영 한 관계자는 “정치는 명분인데 전직 경기도지사가 인천 계양을에, 그것도 험지와 가장 거리가 먼 전임 당 대표(송영길) 지역구에 출마하는 게 명분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 여론조사 분석가는 “민주당이 조기에 판을 뒤집지 못한다면, ‘이재명 심판론’이 이번 지방선거 프레임 중 하나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재명 심판론이 부상할 경우 민주당은 경기·인천 수성에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지역 정가에선 “이재명 조기 등판 이후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말도 나온다. 이재명 비토 정서에 따른 중도층이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친명계 내부에선 “이재명 조기 등판 때문에 그나마 버티는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민주당의 국면전환 카드 부재다. 야당 광역단체장 후보 캠프 한 관계자는 “최대한 몸 낮추기 외에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며 “판을 바꿀 카드가 없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헛발질하기만을 기다리는 꼴”이라고 자조했다. 이 와중에 곤두박질친 당 지지도는 민주당이 그나마 기댄 ‘이재명 원맨쇼’조차 덮어버렸다. 한국갤럽이 5월 10∼12일 자체 조사(13일 공표)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도는 한 주 만에 10%p 하락한 31%를 기록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도는 45%로, 2014년 11월 이후 7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 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52%, 부정 평가는 37%를 기록했다. 여의도 인사들은 “당 지지도가 추락하면, 선거에선 답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6·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한다면, 이재명 복귀 로드맵은 사실상 올스톱된다. 이 위원장의 보궐선거 출마는 ‘선 당권·후 대권’ 플랜을 위한 몸풀기였다. 문재인 모델을 통한 원내 진입과 오는 8월 당권 장악은 사실상 차기 대권의 안전판이다. 당권 장악에 실패할 땐 ‘제22대 총선 공천권 행사 불발→당 최대 주주 등극 실패→차기 대권 적신호’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관계자들도 “전면에 선 이 위원장이 민주당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다면, 당권 도전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경우 이 위원장은 최소 제22대 총선인 2024년까지 로키 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2년가량 정치적 잠행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이 위원장이 올해 당권을 잡지 못하면, 민주당 다수파는 현 최대 주주인 친문(친문재인)계가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으로선 차기 대권 길목에서 친문계를 또다시 넘어야 하는 최대 과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차기 대선 9개월 전인 2026년 6월 3일 열리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넘어야 할 산이다. 만에 하나 4년 뒤 지방선거에서 패할 경우 또다시 책임론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이 위원장은 대선 레이스에서 완전히 이탈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권 플랜의 첫 번째이자, 최대 고비인 6·1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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