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 “반성하고 조심 또 조심”하겠다더니…공식·비공식 일정 늘리며 전면에, 의혹 수사는 제자리
김건희 여사는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본인을 둘러싼 허위 경력 의혹 등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김 여사는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남은 선거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대선 직전 진행된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어떤 대통령 배우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해외에는 대통령의 배우자가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갖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하지만 나는 당선인(윤 대통령)이 국정에만 전념하도록 내조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 여사 측에서는 “영부인으로서 적극적인 대외활동보다는 당장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조용한 내조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김 여사가 본인이 설립하고 대표로 있는 코바나컨텐츠도 폐업 또는 휴업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실제 김 여사는 대선 기간 내내 두문불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태세가 바꾼 듯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 4월 26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를 찾아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 주지 원명 스님과 2시간 동안 비공개 차담을 한데 이어 5월 3일에는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해 참배를 올리고 총무원장인 무원 스님 등 법당 관계자들과 차담 및 오찬을 했다.
또한 김 여사는 4월 28일 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전시 ‘나 너의 기억’을 관람하고, 30일에는 그가 오랫동안 후원해온 유기동물 구조단체 주최로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유기견 거리 입양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종교·봉사 행보는 비공개 일정으로 진행됐지만 결국 언론과 커뮤니티 등을 통해 대중에 알려졌다.
공식석상에는 윤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모습을 나타냈다. 5월 10일 윤 대통령과 함께 서울 동작구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 및 취임 경축연회,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펼쳐진 외빈 초청만찬에 참석했다. 이날 김 여사는 검은색 치마 정장부터 흰색 정장, 아이보리색 원피스, 베이지색 이브닝드레스까지 옷만 4차례 갈아입어 눈길을 끌었다.
이어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뤄진 한미 정상 만찬 전 바이든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됐다. 바이든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방한에 동행하지 않아 상호주의 외교 원칙에 따라 공식일정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환영의 의미로 깜짝 등장해 인사를 한 것이다.
다음 날에도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린 KBS1 ‘열린음악회’ 도중 객석에 윤 대통령과 함께 나타나 관심을 모았다. 이날 객석에 앉아있던 윤 대통령 내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관람객들에 인사를 건넸다. 윤 대통령은 파란색 줄무늬 셔츠에 흰 재킷을, 김 여사는 반묶음 머리에 노란색과 검은색 체크무늬 정장을 입었다.
이외에도 김 여사는 SNS(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반려견과 함께 윤 대통령의 첫 출근을 배웅하는 모습, 시장과 백화점 등에 주말 나들이를 하는 모습, 아파트 안을 산책하는 모습, 경호견과 함께 있는 모습,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 등이 공개됐다.
김건희 여사의 머리스타일과 옷, 신발, 액세서리 등 일거수일투족이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보다도 화제의 중심에 서자 이런 모습이 김 여사가 처음에 말한 ‘조용한 내조’가 맞느냐는 지적이다.
김 여사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대선 전 “김 여사는 본인의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이다. 대선 기간에도 본인이 앞장서 지원 유세도 하고, 홍보 아이디어도 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위 경력이나 주가조작 등 본인과 모친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연달아 제기되면서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본인이 가장 답답해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결국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 돋보이려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실제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건희사랑’을 만든 강신업 변호사가 최근 화제가 된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일상 사진들을 김 여사로부터 직접 받아 공개했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강 변호사는 직접 사진은 받은 것에 대해 “내가 ‘건희사랑’ 회장을 맡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내가 ‘이렇게 보도됐다’며 (문자 메시지로) 링크를 보내면 김 여사는 ‘좋네요’ ‘감사합니다’ 정도로만 답한다”고 밝혔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과 영부인은 일반인들이 접근해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김 여사는 비공식 일정부터 업무‧산책 등 일상 사진이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강 변호사가 김 여사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말한 만큼, 김 여사가 자신의 홍보를 위해 직접 기획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의 행보에 대해서는 여권에서도 우려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대선 기간, 당선 전후로 당 내부에서 김 여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여러 논란에 휩싸였던 만큼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였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당내 누구도 윤석열 대통령과 그 주변에 제대로 된 의견을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대선 기간 김 여사 공식행보에 발목을 잡은 각종 의혹들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부장검사 조주연)가 수사 중이다. 검찰은 대선 전인 1월 초 김 여사에게 ‘비공개 소환’ 조사를 통보했지만, 김 여사 측에서 대선 전까지 출석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수사는 더 진행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서 수사 중인 ‘허위학력·경력 기재 의혹’ 역시 대학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는 이뤄졌지만 김 여사는 소환조차 되지 않았다. 장모 최 아무개 씨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 특혜 의혹 역시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수사를 담당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불과 반년 전 국민 눈치를 보며 지원 유세에도 나서지 못했던 김 여사가 관련 의혹 진척사항이 없는 상황에서 당선이 됐다고 공식행보를 늘려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후로 김건희 여사가 점점 공식·비공식 일정을 늘려가고 있다. 또한 이를 여러 경로를 통해 알리며 자신을 홍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것이 김 여사가 말한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내조에 충실하게 하는 모습인지 모르겠다”며 “김 여사를 둘러싼 비리 의혹은 아직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 일정을 소화하기에 앞서 수사기관에 출석해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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