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❶ 반타니 태국바둑협회 부회장(오른쪽)과 박애영 대학 바둑연맹 부회장. ❷ 황인성 아마7단(오른쪽), 이세미 아마6단 예비 부부. |
유럽도 그렇지만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공 같은 데에서 우리나라까지 자주 오기가 쉬운가. 우리가 부담하든 자비로 하든 항공료도 간단치 않고, 거리도 오는데 하루 가는데 하루인데, 한번 오면 그래도 최소 일주일 정도는 있어야 바둑을 두든 관광을 하든, 좀 제대로 할 것 아닌가.
지하철 역사 홀을 대회장소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노천은 아니었지만, 연회실 같은 방도 아니었고 그냥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넓은 통로였다. 한쪽에선 칸막이를 하고 바둑을 두었고 또 한쪽엔 간이무대를 만들어 공개해설을 했으며 그 앞에는 의자들을 갖다놓아 사람들이 앉아 구경을 했다.
대회장 구경을 갔다가 뜻밖의 사람들을 만났다. 태국바둑협회 반타니 나마손티 부회장, 황인성 아마7단, 이세미 아마6단이다. 반타니 부회장은 여자 분. 65세다. 태국바둑협회의 기둥이자 마당발이다.
태국바둑협회 하면 코작 회장이다. ‘태국바둑협회=코작’이라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태국에서 제일 큰 기업이 CA그룹이라는데, 코작은 CA그룹 산하 주력회사의 하나인 마케팅-해외사업 담당 회장이다. 태국 내 편의점, 모든 세븐일레븐을 총괄하고 있다. 바둑은 6단에 근접하고 있는 아마5단. 바둑 사랑이 넘치고 청년들을 좋아해 세계대학생 바둑대회를 개최하고, 대학에 바둑을 넣어 주고, 바둑 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세븐일레븐에 직장을 알선해 주고, 입사시험 같은 때 바둑 하는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주어 우선 채용한다. 널리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타니 부회장은 그런 코작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오른팔이다. 젊을 때는 해외 주재 태국 대사관, 태국의 해외 기업 등에서 일했다. 물론 영어가 아주 유창하고, 40대 후반부터 코작 회장을 도와 바둑을 따라 세계를 누비고 있다. 바둑은 아직도 초보 수준이고, 바둑 실력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면 “아, 바둑은 너무 어렵다. 늘고 싶어도 자꾸 잊어버려 잘 안 된다”면서 손사래를 치곤 하지만, 바둑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 그 내공이 만만치 않다.
“엊그제 포항에서 각국 팀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대만 여자 대표 분이 대만이 한국을 이기고, 중국을 이겨서 1등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Kick out!’이라고 하더라…^^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1등이 그렇게 좋은 건가? 바둑이 싸움만인가? 우리는 교류요 어울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냥 바둑을 두면 즐겁다,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바둑? 한국도 너무 이기는 데에만 열심인 것 같다…^^”
언중유골이다. 반타니 부회장은 25일 오후에 돌아간다. “내년 1월에 방콕 북서쪽, ‘콰이 강의 다리’로 유명한 칸차나부리에서 아시아 유-청소년(6~16세) 바둑대회가 열린다. 그때 오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생각이 비슷한 게 적지 않았다. 다음에 정식으로 소개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황인성 7단은 몇 번인가 소개했던 청년이다. 연구생으로 있다가 나와서 독일로 바둑 보급을 떠났고, 이후 병역문제, 비자문제로 왔다갔다 하는 청년.
“저는 이제 스위스로 갑니다. 지난 5월에 스위스 바둑협회로부터 공식 국가사범 제의를 받았어요. 독일은 저 말고도 윤영선 사범님이 잘 하고 계시니까 저는 새로운 곳을 개척하는 것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습니다. 스위스 바둑 인구요? 300명쯤 됩니다. 미미하지요. 그러나 잘 아시겠지만, 회원들 수준이 높아요. 바둑협회 회장도 젊습니다. 아직 공대 대학생 신분인데, 열의와 추진력이 대단합니다. 본인이 경제적 여력은 없지만, 기업들로부터 공식 후원을 받아 낼 자신이 있으니 염려 말라는 거예요. 예전에 일본에서 1년쯤 연구생으로 바둑 수업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11월에 스위스로 건너가면 우선 몇 가지 일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첫째가 온라인 리그입니다. 제가 ‘연구생 리그’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나라 연구생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모두들 실력 향상이 목적이니까 연구생과 같은 자세로 바둑을 두자는 뜻에서였지요. 두 번째가, 유럽 국가대항전 단체전이 있는데, 제가 스위스 팀 코치로 선수들을 훈련시키게 됩니다. 그밖에 취리히와 제네바에서 일주일에 두 번 희망자를 받아 고강도 지도를 하는 스케줄도 잡혀 있고, 소규모 자체 대회와 세미나 등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스위스는 역시 취리히와 제네바에 바둑팬들이 많습니다.”
말을 하다가 중간에 “이 친구 어디 갔지?” 하면서 사방을 살핀다. 잠시 후 나타난 사람이 이세미 6단. 아는 사람은 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선남선녀이고, 그건 바둑 동네도 마찬가지지만, 그 중에도 이 6단은 바둑계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미모, 더 없이 사근사근한 언행에 바둑 인터넷 사이트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실력자다.
두 사람이 11월 5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오르세웨딩컨벤션(구 건축사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린단다. 전혀 몰랐는데, 사귄 지 1년 반이 되었다고 한다. 이 6단은 이미 퇴사했고 결혼식 후 황 7단을 따라 스위스로 간단다. 황 7단은 명지대 바둑학과 02학번, 이 6단은 04학번, 동문이다.
“결혼도 하니 일단 생활은 돼야 할 것 아닌가. 현지인들이 후원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도 뜻 있는 기업에서 후원자로 나서면 좋겠다”고 하자 황 7단이 웃는다.
“충분히 버티고 꾸려 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구차한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황 7단은 남자로서는 실상 이 6단 못지않게 ‘예쁘게 생긴(?)’ 얼굴이다. 그 얼굴에 저런 당찬 얘기가 나오니 가슴이 서늘하다. 그렇다. 생소한 나라에서 바둑을 보급하는 것 같은 그런 길이 어렵다고 손을 먼저 내밀 때는 지났다. 기업이나 단체를 향해 “그쪽이 하는 일에 바둑이 도움이 될 것이니 바둑에 도움을 청하시라”고 말할 때다. 비즈니스나 문화, 그런 것들이 바둑과 함께 갈 때 얼마나 힘이 덜 들고 부드러워지는지, 그걸 가르쳐 줄 때다, 이제는.
반타니 부회장의 말처럼 대회에서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두 청년의 결혼식에 많이들 가주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날짜가 좀 안 좋네…^^. 그 날은 전남 강진에서 국제 시니어 바둑대회가 열리는 날인데. 두 사람이 잘 나온 사진 있느냐고 했더니 이번에 찍은 결혼사진을 보내왔다. 하긴 이보다 잘 나올 사진은 없겠지.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