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표' 아닌 '쉼표' 찍으며 깊은 울림 선사
[일요신문] "가진 건 없어도 행복한 인생 나는 나는 나는 딴따라."

그는 대중가요가 흘러가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봤다. "흘러가지 않았어요. 지금도 부르고 있잖아요. '그리운, 불러보고 싶은, 들어보고 싶은 노래'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국노래자랑'으로 시작된 그의 유랑의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갑작스런 외아들의 사망소식에 충격에 빠진 그는 수십년간 진행했던 방송에 하차했다.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전국노래자랑'이다. 당시 안인기 PD로부터 "더는 슬픔에 잠겨있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나 저와 야전부대나 하면서 전국을 돌며 바람이나 쐽시다"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있어 '전국노래자랑'은 먼저 떠난 아들이 보내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송해는 30년이 넘도록 MC자리를 지키며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부자냐 물으면 대부분 건강한 사람이라고 하죠. 그럼 건강한 사람 중에 또 부자는 누구냐 하면 다들 머뭇거려요. 저는 '사람을 많이 아는 게 부자다'라고 말해요. 그게 바로 저거든요."

"저는 무대에서 시작해서 무대에서 죽을 사람입니다. 다른 길로 가면 100번 지게 돼 있어요. 무대인은 무대만 생각하며 살아야지 옆길 돌아보면 무대는 소홀해지기 마련...웃음 아낄게 뭐 있어요. 죽는 그날까지 무대에서 사람들과 웃고 싶어요."
그의 투철한 직업관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그를 검소하고 소탈하게 만들었다. 또 건강하게 만들었다. 송해는 매니저도 운전기사도 없었다. 지하철을 다니며 시민들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을 사귀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전국! 노래자랑!"

"희극을 하려면 정극을 알아야 해요. 비극도 알아야 하고,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기쁨을 알겠어요. 구봉서 선배가 영화에서 죽어가며 읊은 명대사가 있어요. '나 죽으면 누가 너희들 웃기니.' 그런 페이소스가 있는 희극 배우가 요새는 드물어요. 바닥부터 제대로 배우고 익혀야 할 텐데 다들 너무 급해요. 하루아침에 이루려하고, 번쩍하며 스타가 되는 것으로 착각해요. 그 계산서가 나중에 다 온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예요."

"잠시 또 피했다가 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송해 선생은 대구에서 군복무를 했다. 군 무선 통신 최고 기술자인 766고속도 통신사에 합격해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을 알리는 평화의 모스 부호를 직접 날리기도 했다. 그는 3년 8개월간 복무를 하는 동안 직속상관이 본인의 여동생을 중매해 결혼하게 됐다. 1952년 대구 달성군 기세리 출생의 '석옥이' 여사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가 달성군의 제2의 고향으로 부른 이유이다.
지난 8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송해 선생이 별세했다. 임시분향소는 대구 달성군 송해기념관에 설치됐다. 9일 오전부터 조문객이 몰려들었다. 송해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현장 봉사에 나서며 밀려오는 조문객을 맞이했다.
송해 선생의 영결식은 10일 새벽이다. 장지는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 인근이다. 묘소는 석옥이 여사의 옆자리로 옥연지 일대가 훤히 보이는 송해공원 맞은편 동산이다.

'딩동댕! 송해 선생'은 대구 달성군에서 '마침표'가 아닌 '쉼표'을 찍으며 대한민국 모든 이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