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리즈 우승 후 오승환이 막춤을 춰 화제가 됐다. 정말 춤추기 싫었지만 우승 분위기에 흠뻑 취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여론이 시끌벅적하다. 이 기사가 독자들에게 읽혀질 때쯤이면 이미 결과가 나왔겠지만, 굳이 보도자료를 내면서까지 시즌 MVP 후보 경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한 배경이 궁금하다.
▲먼저 분명히 할 게 있어요. 전 ‘사퇴’란 얘기를 꺼내본 적이 없어요. MVP 경쟁이 무슨 정치판도 아니고, KBO에서 MVP 후보라고 지정해주셨는데 ‘단일화’ 운운하는 것도 너무 이상하고…, 웃기잖아요. 그런 단어 자체가…. 전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탔고, 팀도 우승했고, 마무리 투수로서 선발 투수인 윤석민과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점도 있었고…, 그래서 최형우를 위해 후보 경쟁에서 물러서겠다고 말한 겁니다. 형우는 스토리가 있는 선수예요. 삼성이란 곳에 지명받고 왔다가 방출당한 뒤 경찰청에서 열심히 실력을 다진 다음, 삼성에 재입단해서 최고의 성적을 냈잖아요.
―그런데 오승환 선수한테 갈 표가 최형우 선수한테 가리란 보장은 없는 거 아닌가.
▲물론 그렇죠. 솔직히 저한테 몇 표가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단 한 표라도 저한테 올 표가 형우한테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결정한 부분이에요. 분명 제가 바라는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좀 봐 주십사 하고 얘기한 거예요. 조금이라도 제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차원에서.
―어쩌면 마무리 투수로서 시즌 MVP 후보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 아닌가.
▲그렇죠. 한 시즌을 돌이켜보면 제 자신한테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잘해냈습니다. 마무리 보직을 맡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상하게 선발 투수들에 비해 마무리는 덜 조명받게 되더라고요. 프로야구가 분업화되고, 선발과 마무리의 한계가 분명해지면서 더더욱 그런 현상이 나타났었죠. 이전에 구대성 선배가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면서 139이닝을 던지고 MVP를 수상하셨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는 선수가 없잖아요. 단순한 수치로만 비교했을 때 제가 마무리로 나와 던진 57이닝과 윤석민이 던진 172이닝은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마무리도 선발 못지 않게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고, 마무리로서 MVP 후보에 오른 게 얼마나 대단한 부분인지를 알려드린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물론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조금 더 깊이 고민했을 때, 저보단 형우가 MVP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 류현진 선수 인터뷰 때, 시즌 MVP는 오승환 선수라고 콕 짚어서 얘길했었다.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에 MVP 후보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발언이 예상 외로 큰 파장을 일으킨 것 같다.
▲(류)현진이가 그렇게 말해줬다니까 고마운데요? 누구보다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한테 인정받았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팬들을 실망시켜드렸다면 미안하지만, 제 의도가 순수했다는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해요.
▲ 왼쪽부터 8월 12일 최소경기 200세이브 달성 장면, 10월 31일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직후 포수 진갑용 품으로 풍덩,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고 승용차 위에서 포즈.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2009년, 2010년, 2년 연속 부진한 모습을 보인 데다 지난해 팔꿈치 뼛조각 수술로 마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올 시즌을 맞이하는 각오가 대단했습니다. 일찌감치 괌에서 훈련을 시작했던 결과가 좋게 이어진 것 같아요. 그러나 시즌 개막 전에는 불안감도 있었어요. 수술하고 운동을 많이 하지 못한 터라 막상 마운드에 올랐을 때 그렇고 그런 마무리 투수로 전락해버리면, 상대 타자에게 위압감을 주지 못한 투수가 돼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많았어요. 오승환이란 선수가 그냥 잠깐 잘했던 선수로 기억되는 것으로 끝나면 너무 허무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그렇게 가슴앓이를 하며 시작한 시즌이었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일은 가장 짜릿하고 기쁨 충만한 순간이 될 수밖에 없었죠.
―SK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올라오는 과정을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았나.
▲무엇보다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단 1승도 못 챙기고 무기력하게 패했던 가슴 아픈 기억을 떨쳐내고 싶었어요. SK한테 져서 준우승을 했고, 준우승을 못한 팀이 6팀이나 되는데도, 전 그 준우승이란 타이틀이 굉장히 기분 나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SK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면서 팬들이 가졌던 아픔을 조금이라도 씻어드리려 했습니다. SK가 준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올라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쳤을 것이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까 강팀은 강팀이더라고요. 이건 빈말이 아니고요, 만약 내년 시즌에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SK와 맞붙는다면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아요. 그만큼 SK는 기본이 탄탄한 팀이었습니다.
―한국시리즈가 SK의 체력 난조로 무기력하게 패하는 걸로 마무리되면서 포스트시즌 제도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일본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는 정규리그 우승을 더 크게 인정해줘요. 1위팀은 분명히 프리미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들로 인해 제도를 고친다는 것도 우스워 보이고요. 반대로 생각해서 상대팀이 준PO나 PO를 3연승을 거두며 올라올 경우 충분히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요. 삼성이 내년에도 정규리그 1위를 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설령 다른 팀이 1위를 한다고 해도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1, 2, 5차전에 투입됐다. 어느 경기가 가장 긴장되었나.
▲1차전이었어요. 오랫동안 쉬었다가 큰 경기에 처음 등판하는 터라 긴장도 많이 됐고 몸이 반응하는 것도 조금 늦더라고요. 그런데 1차전 끝나고 이런 자신감은 있었죠. 1차전보다 다음 등판 때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마무리 투수의 고단함? 어려움? 을 얘기한다면?
▲가끔 친구들이 이런 얘기를 해요. ‘넌 야구장 가서 공 서너 개만 던지고 억대 연봉 받는다’라고요. 그런데 그 1이닝을 틀어 막기 위해 아침에 눈을 떠서 야구장에서 훈련하고 경기 들어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어요. 막상 경기 시작하면 몸을 풀 준비를 해야 하고요. 더욱이 1점차 승부에 투입됐을 때 그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그런 긴장감을 즐기고 있더라고요. 마무리 투수를 할 운명이었나봐요.
―마운드에서의 무표정한 모습 때문에 ‘돌부처’란 별명이 생겼다. 표정의 변화가 없는 부분이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는 무기라고 생각하나.
▲사실 마운드에 올라가서 웃을 일이, 얼굴 찡그릴 일이 뭐가 있겠어요. 투수가 표정의 변화가 심하면 조금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일부러 웃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공을 던지다보니까 오승환은 웃지 않는 선수라고 인식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경기장 밖에서 절 보신 분들이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 ‘어? 오승환도 웃네’라고 하세요. 친구들 만나면 잘 웃고 농담도 잘 하는데….
―‘돌부처’도 막상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니까 ‘막춤’을 추던데, 댄스 실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하. 이거 절 놀리는 질문이시죠? 정말 춤추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방송에서 ‘흔들어주세요’라는 음악이 나오고, 모든 선수들이 우승 분위기와 샴페인 세례에 흠뻑 취한 상태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죠. 지금 생각해봐도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어요(웃음).
의외로 말을 참 잘하는 선수였다. 마운드만 벗어나면 ‘돌부처’도 인간 오승환으로 변신하는 듯했다. 인터뷰 말미에 오승환에게 여자친구에 대해 물었다. 몇 해 전, 여자친구의 신분이 공개되면서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터라 그 후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런데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 후론 아직까지 혼자라면서. 만약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비밀 연애를 고수하겠다고 강조한다. 아마도 그때의 후유증이 꽤 깊었던 모양이다.
대구=riveroflym@ilyo.co.kr
“그날의 악몽 이후 야구 떠나고 싶었다”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취임식 다음날인 11월 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만난 이 감독은 ‘2011년 8월 18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의 하차 후 대전 한화전에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이 감독이 1군에 ‘구원 등판’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도망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대전으로 향한 것이다. 그 후로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속으로 울었는지 모른다. 내 앞에서 시위하는 팬들을 보게 되었고 SK 팬이 상대팀을 응원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해 올라오는 ‘악플’들은 지금까지 야구에 몸 담고 살면서 처음 접한 악몽들이었다. 그 일들로 인해 아내가 병원까지 다녔다. 내 야구 인생에서 8월 18일은 여러 가지 장면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이 감독은 한국시리즈 종료 후 ‘당연시’됐던 정식 감독 선임에 대해 짧은 시간 동안 다른 고민을 했었다고 털어 놓는다.
“감독을 맡고 싶지 않았다. 이 얘긴 와이프도 모르는 내용이다. 구단도 언론도 나의 감독 승격을 당연시했지만, 정작 내 자신은 야구를 떠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번 포스트시즌을 통해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욕 먹는 야구판에 몸 담고 싶지 않았다. 이때 날 잡아준 사람은 평소 내가 멘토로 생각하는 한 지인이었다. 그 분은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이만수의 몸은 야구라는 세포로 이뤄졌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야구판을 떠날 생각을 하느냐’며 용기를 갖고 도전하라고 조언해주셨다. 그 분의 말이 큰 힘이 됐다.”
이 감독은 올 시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김광현에 대해서도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통해 완전히 달라진 김광현으로 만들 것”이라면서 “김광현이 무너지면 SK 마운드도 무너진다”라고 김광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내보였다.
“감독이란 자리는 과정일 뿐이다. 결코 종점이 아니다. 잠깐 있다 가는 것이고 영원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받아들였다. 항간에는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박수 치고 감정을 드러내는 내 행동들이 감독으로서 가벼워 보인다고 지적하는데, 난 앞으로도 그렇게 야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이만수 야구이기 때문이다.”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