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서울 유명 사립대 광장에서 미혼모 A 씨가 생후 11개월 된 딸을 안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A 씨는 이 대학 청소년 관련 학과 교수가 자신에게 파혼 낙태 등을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미혼모 A 씨(여·8)가 충격적인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 소재 모 유명사립대 잔디광장에 처음 나타난 건 11월 초 무렵. 한 미혼모 여성이 벌인 피켓 시위는 한동안 네티즌 사이에서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이 사건은 현장을 목격한 몇몇 행인들이 생후 11개월인 여아를 안고 추위 속에서도 꼿꼿이 피켓을 지키고 서 있는 A 씨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으면서 알려지게 됐다. 자연스레 인터넷에 A 씨의 1인시위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퍼지면서 네티즌들은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피켓에 적힌 A 씨의 주장이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미혼모인 A 씨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내막을 취재했다.
A씨는 최근 한 온라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대학교 청소년 학과 교수 B 씨로부터 파혼 및 낙태를 강요당했다는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서 어렵사리 피켓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 온라인 매체를 통해 확인된 A 씨의 사연은 누가 들어도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A 씨는 3년 전 B 교수의 아들 C 씨(29)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다. 그러나 C 씨 집안의 재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된 A 씨는 “집안 차이 때문에 이뤄질 수 없다”며 거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C 씨의 끈질긴 노력 끝에 A 씨는 교제를 승낙했고, 교제 반 년 만에 C 씨로부터 청혼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A 씨가 초반에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 C 씨 집안에서 결혼을 강하게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두 사람은 지방에 있는 A 씨의 집에서 약 7개월간 동거를 했다고 한다. 이어 2009년 말경 A 씨는 미국 시민권자인 C 씨를 따라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고, 당시 현지 이웃주민들 대부분이 A 씨와 C 씨가 결혼할 사이로 알고 있을 정도로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그 무렵 미국 현지에서 임신을 하게 된 A 씨는 C 씨와 2010년 5월 중순경 국내에서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A 씨에게는 악몽 같은 날들이 시작됐다. C 씨의 어머니인 B 교수는 “남녀가 사귀면 헤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여전히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A 씨는 B 교수가 “아들과 헤어지고 아기를 없애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파혼을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A 씨에게 닥쳤다. A 씨에게 결혼을 약속했던 C 씨가 결혼식을 앞두고 돌연 미국으로 도피해버린 것이다. 이에 A 씨는 곧바로 C 씨를 찾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소문 끝에 만난 C 씨는 A 씨에게 “이제는 너를 지켜줄 수 없어…. 아기를 뱃속에서 잘라서 흡입하면 돼….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서울에 최고의 의료진을 알아놨대”라고 말했다고 한다.
C 씨를 설득하며 같이 지낸 시간이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C 씨의 부모가 들이닥쳤다. 그 바람에 A 씨는 쫓기듯이 한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혼자 C 씨와도 연락이 끊겨버리자 A 씨도 순간 낙태를 고민해봤다고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라인에 올라온 낙태사진들을 보며 ‘아이는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수차례의 고민 끝에 A 씨는 그해 11월 여아를 출산했다. 그러나 A 씨는 출산을 한 후에도 B 교수로부터 ‘아이를 미국에 입양시키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요구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A 씨는 결국 B 교수가 재직하는 대학교를 찾게 됐다고 전했다.
▲ B 교수의 연구실에 찾아가 문을 두드려봤지만 인기척 없이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또한 B 교수는 “A 씨의 친인척들이 남편의 연구실까지 찾아와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며 “우리 쪽도 많은 괴로움을 당했는데 여론이 A 씨의 주장대로만 흘러가는 것 같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11월 9일경부터 A 씨의 시위는 갑자기 중단됐다. A 씨가 시위를 그만둔 것에 대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아파서 쓰러진 것이 아닌가’ ‘아니다. 거액의 합의금을 타낸 것 같다’ 등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기자는 돌연 종적을 감춘 A 씨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B 교수를 직접 찾아가봤다. 기자가 수차례 B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가 문을 두드려봤지만 인기척 없이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어렵사리 통화하게 된 A 씨의 지인은 “현재 A 씨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몹시 지친 상태이며 아이의 건강을 신경 써야 할 상황”이라고만 간략히 귀띔했다.
만약 A 씨와 C 씨 측이 합의를 선택한다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혼전문 이인철 변호사는 “우선 C 씨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결혼을 강제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A 씨와 C 씨 간의 동거가 사실혼에 해당할 수 있다면 A 씨가 C 씨 측에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을 할 것처럼 확실히 믿게 하고 여자가 이에 속아 임신까지 하였다면 어느 정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는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 변호사는 “법원과 실무에 따라 조정이나 합의의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