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탁, 뭔가 만지는 듯한 행동 지적받자 “투구 루틴 일부”…MLB선 부정행위로 망신살 뻗친 투수 숱해
최근 프로야구에선 부정 투구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두산 베어스 외국인 투수 로버스 스탁이 원인 제공자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이글스 감독은 6월 7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한 스탁의 이물질 사용 의혹을 제기했다. 1회 초 첫 공격이 끝난 뒤 3루심에게 다가가 "스탁이 자꾸 오른손으로 글러브 쪽을 만진 뒤 곧바로 공을 잡고 던진다"고 항의했다. 이 내용을 전달 받은 주심은 3회 초가 끝난 뒤 스탁의 모자, 벨트, 글러브 등을 검사했고 한화 벤치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수베로 감독은 이튿날 스탁의 행동에 대한 불만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스탁이 투구 전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모아 글러브 입구 사이에 살짝 넣고 뭔가 만지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중계 화면에도 그 모습이 잡혔으니 (취재진도) 직접 확인해보라"고 지적하면서 "땀이 묻었든, 침이 묻었든 유니폼에 손을 닦지 않고 곧바로 공을 잡는 건 규정 위반이다. 심판에게 이 부분을 계속 주의 깊게 봐달라고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스탁의 부정 투구 의혹, 사실? 억측?
스탁이 부정 투구 의혹을 받은 건 처음이 아니다. 래리 서튼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이미 5월 20일 잠실 두산전 2회 초 도중 스탁의 이물질 사용을 의심하면서 심판진에 검사를 요청한 적이 있다. 당시 스탁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양 손과 글러브 검사에 응했고, 역시 이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서튼 감독도 더는 항의하지 못했다. 그런데 2주 만에 다시 다른 감독이 같은 행동에 의문을 표하고 나선 것이다. 두 감독 모두 미국에서 온 외국인 사령탑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일단 두산은 "스탁에게 문의해 보니 예전부터 갖고 있던 투구 루틴의 일부라고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수베로 감독은 "미국에서 스탁이 던지는 투구 영상을 찾아봤다. 비슷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국에 온 뒤 (글러브 쪽을 만지다 공을 잡는) 새로 생긴 동작"이라고 주장했다. 수베로 감독은 또 "절대 우리 팀이 스탁의 부정 투구 탓에 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그런 동작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말 습관이라면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증거가 없으니 스탁은 죄가 없다. 애꿎은 '흔들기'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스탁은 한화전 다음 등판인 6월 12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4⅓이닝 9피안타 5사사구 7실점(6자책)으로 무너져 올 시즌 처음으로 5회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롯데와 한화 외의 다른 구단들도 스탁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난 시즌 미국에서 기록으로 남긴 '심증'이 있어서다.
MLB 사무국은 지난해 6월부터 대대적인 부정 투구 단속에 나섰다. 최근 수년간 MLB 투수들의 이물질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판단해서다. 그전까지는 상대 팀 벤치의 요청이 있어야 이물질 검사를 했지만, 6월을 기점으로 경기 도중 무작위 기습 검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또 적발된 선수들은 10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ESPN은 "MLB 구단들이 소속 투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 투수들의 부정 투구를 보고도 모른 척해 온 게 일을 키웠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LA 다저스 투수 트레버 바워는 신시내티 레즈 시절이던 2020년 2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빅리그 투수 중 약 70%가 파인 타르(송진)를 사용해 부정 투구를 한다. 글러브 안, 모자 속, 허리벨트 안에 묻히는 식으로 몰래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인 타르를 조금이라도 손에 바르면, 같은 구속이라도 공에 극적인 변화가 생겨 타자들이 공략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며 "부정 투구는 공 하나하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보다 경기력에 더 큰 이득을 주는 반칙"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LA 에인절스 클럽하우스 매니저였던 라이언 하킨스는 2021시즌 개막을 앞두고 게릿 콜(뉴욕 양키스), 저스틴 벌렌더(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정상급 투수들이 이물질로 부정 투구를 했다고 주장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킨스는 "선수들의 부탁으로 내가 직접 송진과 크림 혼합물을 섞은 이물질을 제조해줬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MLB 공인구는 KBO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의 공인구보다 표면이 상대적으로 미끄럽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 역시 투수들이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지나칠 정도로 이물질이 자주 쓰이고, 새로운 이물질도 등장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제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무국 차원의 수시 점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눈에 띄는 변화도 생겼다. 콜, 뷸러, 바워 등 파인 타르 사용 의혹을 받았던 투수들 모두 이물질 검사는 무사히 통과했다. 하지만 이 투수들이 던지는 직구의 회전수가 크게 줄었다. 물론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진 것인지, 단속을 피하기 위한 파인 타르 사용 중단이 원인이었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스탁도 이들과 비슷한 케이스다. MLB 투구 데이터를 분석하는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스탁의 직구 분당 회전수는 2020년 평균 2218회에서 지난해 평균 2033회로 200회가량 줄었다. 또 A 구단 관계자가 지난해 스탁의 마이너리그 투구를 분석한 결과, 6월 이후 직구 계열의 분당 회전수가 5월보다 500회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B 구단 관계자는 "스탁은 KBO리그에서도 이닝별 직구 회전수 차이가 큰 편이다. 검사는 통과했지만 의심을 지우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C 구단 관계자는 "스탁이 의심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회전수만으로 '이물질을 사용했다'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야구 규칙에 명시된 금지사항은?
투수가 자신의 능력 이외의 요소로 부당하게 공의 위력을 높이는 행위는 스포츠맨십에 위배된다. 야구 규칙 8.02 '투수 금지사항'에 상세하게 명시돼 있다. a조 1항은 '투수가 투수판을 둘러싼 18피트(5.486m)의 둥근 원 안에서 공을 던지는 맨손을 입 또는 입술에 대는 행위'를 가장 먼저 금지하고 있다. 침을 묻힌 손으로 공을 만질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유일한 예외는 날씨가 추울 때다. 추위로 곱은 손을 입김으로 데워야 할 때만 허용되는데, 경기 전 미리 양 팀 감독의 동의와 심판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만약 투수가 사전 합의 없이 이 조항을 어기면 반드시 공을 교환해야 한다. 또 투수가 던지려던 다음 공은 무조건 볼이 된다. 풀카운트 승부에서 1항과 같은 행위를 한다면 타자를 자동 볼넷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투수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그때마다 공을 바꿔야 하고, 경기 후 KBO 총재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a조 2항은 '공에 이물질을 붙이는 것', 3항은 '공, 손 또는 글러브에 침을 바르는 것', 4항은 '공을 글러브, 몸 또는 유니폼에 문지르는 것', 5항은 '어떤 방법으로든 공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6항에는 '이른바 샤인볼(Shine Ball), 스핏볼(Spit Ball), 머드볼(Mud Ball), 에머리볼(Emery Ball)을 던지는 것'도 금지사항으로 적시했다. 투수가 2~6항 가운데 하나를 위반하면 심판은 즉시 볼을 선고하고 투수에게 경고 조치를 한다. 또 그 투수가 부정 투구를 했다는 사실을 다른 선수들과 관중에게 장내 방송으로 설명해야 한다. 만약 한 투수가 같은 경기에서 같은 조항을 위반하면 즉각 퇴장당한다. 추후 1항 위반보다 훨씬 더 센 징계를 각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6항에 나열된 샤인볼, 스핏볼, 머드볼, 에머리볼 중 가장 유명한 스핏볼은 투수가 손가락에 침이나 바셀린 같은 점액을 발라 공을 꽉 움켜쥔 뒤 던지는 투구를 말한다. '침을 뱉는다'는 의미의 '스핏'이 이름에 붙은 이유다. 앞서 바워가 '파인 타르 볼'을 설명하면서 언급했듯 끈끈한 물질이 공 표면에 붙으면 예상치 못한 회전이 생기면서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발생한다. 직구처럼 날아오다가 마지막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기 때문에 타자에게 큰 혼란을 준다. 투수가 맨손을 입가에 댈 수 없게 한 첫 번째 금지사항도 스핏볼을 막기 위한 예방 장치다. 공에 입김을 쏘이는 것도 안 된다. 투수는 공의 표면을 오직 맨손으로만 문지를 수 있다.
사실 스핏볼은 MLB보다 더 역사가 오래된 투구법이다. MLB가 생기기 전인 1868년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투수들은 주로 언더핸드 유형이어서 대부분 변칙적인 움직임이 생기는 스핏볼을 던졌다고 한다. 심지어 MLB 출범 후에도 1920년까지는 합법적인 투구였다. 그러나 그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내야수 레이 채프먼이 뉴욕 양키스 투수 칼 메이슨의 스핏볼에 얼굴을 맞고 사망하면서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는 공'에 대한 금지 여론이 고개를 들었다. 당연히 스핏볼 전문 투수 17명이 거세게 반발했고, MLB 사무국은 이들이 은퇴할 때까지만 스핏볼을 던질 수 있도록 조처했다. 1934년 마지막 스핏볼 투수 벌레이 그라임스가 은퇴하면서 마침내 스핏볼은 공식적인 '어둠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MLB 통산 314승을 올린 게일로드 페리는 바로 이 스핏볼 꼬리표 탓에 기록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대표적 투수다. 그는 MLB 역사상 최초로 양대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13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린 명투수였다. 페리가 가장 오랜 시간 몸 담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그의 등번호 36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런데도 명예의 전당 입성 투표에서 두 차례나 고배를 마신 뒤 세 번째 도전 만에 간신히 헌액됐다. 현역 시절 바셀린을 사용한 '스핏볼의 달인'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페리가 스핏볼을 던지는 건 워낙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터라 그와 동시대에 뛰었던 한 선수는 "페리는 어떤 경기에서는 스핏볼을 그리 많이 던지지 않고, 위기 상황에서만 사용했다"고 농담했다는 후문이다. 그런 페리가 스핏볼로 공식 징계를 받은 건 정작 단 한 번뿐이다.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이던 8월 23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스핏볼을 던지다 적발돼 1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늘 "스핏볼 논란은 상대의 심리전"이라고 주장했고, 은퇴 후 바셀린 광고에 출연하는 대담함도 과시했다.
샤인볼은 투수가 글러브나 유니폼에 야구공을 문질러 표면을 미끄럽게 만든 뒤 던지는 공이다. 머드볼은 말 그대로 진흙을 묻힌 공, 에머리볼은 투수가 공을 샌드 페이퍼 등으로 문질러 표면을 거칠게 만든 공이다. 형 필 니크로와 함께 '너클볼러 형제'로 잘 알려진 조 니크로는 에머리볼을 던지다 발각된 투수로도 악명이 높았다.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이던 1987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전에서 유니폼 하의 뒷주머니에 사포 조각과 손톱을 다듬는 줄을 넣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눈에 띄게 불규칙한 궤적을 그리는 공이 계속 들어오자 수상함을 느낀 심판이 글러브와 몸을 수색하기 위해 니크로에게 다가갔다. 니크로는 심판의 시선을 피해 사포 조각과 손톱 줄을 그라운드로 몰래 버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 행동까지 적발돼 더 망신을 샀다. 니크로는 MLB 통산 221승 투수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기면서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외에도 1961년 사이영상을 수상한 양키스 화이티 포드도 에머리볼을 애용한 투수였다. 포드는 전담포수인 엘스틴 하워드가 몰래 정강이 보호대에 긁어서 건네 준 공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MLB의 부정 투구 사태에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 파인 타르는 2014년 양키스 투수 마이클 피네다로 인해 유명세를 탔다. 그는 그해 4월 24일 '숙적' 보스턴과 원정 경기에서 오른쪽 목에 파인 타르를 바르고 공을 던지다 상대 벤치의 항의를 받았다. 1회엔 그냥 마운드에 올랐다가 2회 등판을 준비하면서 몰래 파인 타르를 묻혀 놓은 것이다. 4월 11일에도 보스턴전에 등판했다가 같은 의혹을 샀지만 당시엔 "땀과 흙이 섞여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 핑계가 두 번은 통하지 않았다. 피네다는 일부러 땀이 많이 흐르는 부위에 이물질을 발라 착시 현상을 일으키려 했지만, 잠시 목에 올렸던 손바닥에 시커먼 이물질이 묻은 모습이 중계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피네다의 목을 만진 게리 데이비스 주심의 손가락에도 파인 타르가 그대로 묻어났다. 결국 퇴장 명령을 받아 망신을 당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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