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하구에서 화려한 군무를 펼치는 가창오리떼. |
전북 장수에서 발원한 물이 바다와 만나기까지 천 리. 금강은 하구에 이르러 충청도와 전라도를 가른다. 북쪽이 충남 서천, 남쪽이 전북 군산이다. 그러나 강은 하나의 풍경을 함께 공유한다. 철새다.
올해도 어김없이 철새들이 금강하구로 돌아왔다. 노을을 등지고 ‘깨깨’ 거리며 하늘을 뒤덮는 가창오리와 이 추운 겨울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활공하는 고니, 언제나 자신들의 행렬을 유지하는 큰기러기들. 금강하구는 자신의 몸을 내어 새들의 지친 날개를 보듬는다. 새들은 이곳에서 시베리아의 한기가 풀리는 봄까지 포근한 안식을 취할 것이다. 그들이 있어 ‘비단 같은 강’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수많은 종류의 철새 중에서도 이 강의 주인을 꼽으라면 단연 가창오리다. 전 세계에 서식하는 가창오리는 70여만 마리. 이중 9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난다.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계속되는 시베리아의 혹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 추위를 피해 가창오리들은 날개를 젓는다. 시베리아를 가로지른 가창오리들은 바이칼호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남으로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들의 최종 기착지는 천수만과 금강호 일대. 먹이가 널린 드넓은 평야와 삭풍을 피해 쉴 수 있는 갈대숲, 낮 동안 놀기 좋은 강물까지. 새들에게는 휴양지나 마찬가지다.
철새를 조망하기에는 서천이나 군산 모두 좋다. 서천에서는 한산면에서 금강하굿둑으로 이어지는 29번국도 좌측에 철새조망대를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그러나 가창오리가 해거름녘이 되어서야 군무를 펼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천보다는 군산 쪽이 낫다. 왜냐하면 서천 쪽에서 군무를 바라볼 경우 뒤편에 산이 걸리기 때문이다. 반면, 군산 쪽에서는 바다를 향하기 때문에 시야가 훨씬 밝고 넓다.
군산에는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조망대를 따로 금강하구둑 부근에 만들어놓았지만, 가창오리를 보려면 금강대교 안쪽으로 가는 편이 낫다. 이곳이야말로 천혜의 지점이다. 바로 옆으로 나포십자들녘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창오리들은 금강하구에서 낮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나포십자들녘이나 망해산 너머 김제평야와 호남평야로 날아간다.
빛과 어둠이 힘겨루기를 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면 이곳에서는 가슴을 헤집어놓는 장면이 연출된다. 가창오리들이 일제히 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군무를 펼치는 것이다. 시인 장석남은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라는 시에서 수많은 찌르레기떼의 울음을 ‘쌀 씻어 안치는 소리’ 같다며, 새떼가 몰고 온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고 했다. 그러나 가창오리의 소리는 찌르레기떼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기보다 마치 폭풍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 곧 밀려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것만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창오리들이 떠난 하늘은 곧 어둠이 내려앉는다. 서쪽에 남아 있던 태양의 붉은 잔흔도 마침내 다 사라지고 사위는 고요에 젖는다. 하지만 마음은 소란스럽다. 가창오리떼에게 습격당한 마음은 여전히 두방망이질 친다.
▲ 신성리갈대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여행객. |
요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갈대밭은 아주 포근하다.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대도 갈대밭 안에 있으면 추운 줄 모른다. 바람은 성내어 달려들지만 숲 안으로 들어서면서 화를 풀고 새끈 잠든다.
▲ 신성리갈대밭에는 곳곳에 솟대와 원두막이 설치돼 있다. |
갈대밭산책로는 마치 얼기설기 그물처럼 얽혀 있다. 길 곳곳에는 널리 애송되는 시편들을 적어 놓았다. 강변에는 원두막도 지어 놓았다. 어쩌면 단조로울 수도 있는 공간이 이로 인해 훨씬 풍성해졌다.
갈대밭 산책을 하다보면 주기적으로 강물이 밀려와 강둑을 때리는 소리, 갈대가 저희들끼리 부딪혀 서걱거리는 소리, 갈잎이 바람결에 떠는 소리, 갈대숲 속으로 숨어든 철새들의 울음소리 등 온갖 자연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거대한 도시 속에서 소음에 길들여져 있던 귀가 이곳에서 비로소 진짜 소리를 접하는 것이다. 자연이 빚어내는 놀라운 하모니를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혼탁하던 정신이 맑아진다.
김동옥 여행전문작가 tour@ilyo.co.kr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또는 공주서천간고속국도 동서천IC에서 나와 좌회전→29번국도→한산모시관 지나 우측 613번지방도→이정표 따라 좌측 다리 건너 직진 신성리갈대밭. 철새 위해서는 동서천IC에서 나와 우회전 한 후 29번 국도를 따라 금강하굿둑 방면으로 가야 한다. 금강하굿둑 못 미쳐 조류관찰대가 곳곳에 있다. 금강하굿둑 너머에는 조류공원이 조성돼 있다. 군산 쪽에서는 나포둑방에서 철새를 관찰하는 게 좋다. 서해안고속국도 군산IC→강경/나포 방면 우회전→서왕산 삼거리에서 좌회전→금강휴게실 지나 우회전→나포둑방 철새탐조회랑.
▲먹거리: 서천 신성리갈대밭이 있는 한산면에 담쟁이넝쿨(041-951-9288)이라는 향토음식점이 있다. 모시를 이용한 밥과 된장찌개가 일품인 곳이다. 군산 나포들녘 철새조망회랑 근처에는 들꽃내음(063-453-8384)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청국장과 두부버섯전골을 잘 한다.
▲잠자리: 한산면에 신성파크(041-951-0654), 프로포즈모텔(041-951-0920)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군산나포들녘 근처에는 묵을 만한 곳이 거의 없다. 군산시내 쪽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문의: 서천군청(http://www.seocheon.go.kr) 문화관광과 041-950-4224. 군산철새탐조투어안내 063-453-7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