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 상류 하천의 물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국내 최대 인공습지인 안산갈대습지. 이곳에 둥지를 튼 채 33년간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습지가 일터이자 쉼터인 최종인 씨(67)는 매일 아침 주변 동물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대화한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오래 애정을 쏟은 대상은 멸종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 303호 수달이다. 2013년 처음 시화호에 수달이 발견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관찰해오며 수달에게 필요한 쉼터와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있다.
수달을 위해 직접 지은 집과 별장만도 23곳이며 그 외에도 안산갈대습지 구석구석 최종인 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출퇴근이 따로 없이 관리사무소 한켠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갈대습지의 밤낮을 지키는 종인 씨는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하게 매일 '공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삶을 살아간다.
가족들과 낚시하고 바지락을 캐던 안산 앞바다가 어느 날부터 망가지고 물고기와 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기 시작했다. 시화호 대규모 물막이 공사 때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는 시화호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실태를 기록하고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공룡알 서식지도 발견해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후 안산시 환경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하며 자연과 관련된 각종 민원을 만능으로 해결한다. 최근 도심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야생동물들을 처리하고 구조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얼마 전 하수구에 빠진 너구리를 구해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낸 최종인 씨는 도시화로 야생동물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이 못내 가슴 아프다.
5월이 되면 시화초지는 찬란한 띠의 향연이 펼쳐진다. 과거 갯벌이었던 땅에서 염생식물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피어난 띠를 보면서 종인 씨는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새삼 느낀다. 이렇게 자연과 교감하기에 그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띠 사이에서 거미줄을 이용해 주먹만 한 둥지를 튼 개개비사촌, 관리사무소 주차장 자갈밭에 새끼를 부화시킨 꼬마물떼새. 그가 아니면 발견해서 지켜내기 힘든 야생의 생명들이다. 그들과 함께 숨 쉬는 모든 시간이 그저 일하거나 스쳐 지나는 것이 아닌 그만의 시간이라는 최종인 씨.
소중한 자연의 시간을 하나하나 기록해가는 그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
24시간을 시화호 안산갈대습지에서 보내는 최종인 씨를 바라보는 가족들은 걱정이 많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야생과 더불어 살아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자란 10살 손주는 덕분에 '사육사'라는 꿈을 품게 되었다.
안산갈대습지 구석구석을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보며 살아온 세월. 이곳에 뿌리 내린 나무 한 그루도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작은 묘목이었던 나무가 어느새 자기보다 훌쩍 커버린 그 시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종인 씨.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나무가 되고 싶다.
가장 험한 야생이 가장 온순한 삶을 품고 있다고 믿는 최종인 씨. 그는 오늘도 시화호 습지에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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