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계 일각에서 신당창당론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엔 이명박 대통령이 끝까지 박 전 대표를 지지할 수 있겠느냐는 불신이 깔려 있다. 2010년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초청 만찬에서의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
하지만 박 전 대표를 원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그룹은 플랜 B도 없는 외길을 택했다가 망할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끝까지 박 전 대표를 지지할 수 있겠느냐는 불신도 깔려 있다. 친박계 내부에서 퍼져 나오고 있는 신당창당 논란의 막후를 따라가 봤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전례 없이 신속하게 신당창당론을 잘랐다. 현안에 대한 논란이 무르익을 때를 기다린 뒤 한마디를 던지며 종결자의 면모를 보여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것이다. 이토록 박 전 대표가 신당 창당론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그것이 내부에서부터 발화되고 있는 계파 분열의 서곡이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 새 터진 신당 창당론은 주로 박 전 대표의 핵심 그룹이 아닌 원거리 참모진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이정현 의원 등 원내의 소장파를 중심으로 하는 친박계 핵심들은 신당창당에 대해 “0.1%의 가능성도 없다”며 박 전 대표의 의중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들은 신당창당과 같은 분열전술이 아닌 정책기조에 올인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길 선호한다.
하지만 친박계 핵심을 제외한 저변부 기저에는 다른 분위기가 흐른다. 안철수 바람으로 박근혜 대세론의 둑이 터진 이상 플랜 B 전략을 수립하고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는 논리다.
최근 박 전 대표가 신당창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고 검토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해버리자 친박계 일각에서는 거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친박계의 한 전직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전혀 개선되지 않아 신당창당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이 결과적으로 적전분열 양상을 보여주었다. 일관된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니 중구난방으로 신당창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 박 전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선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박 전 대표가 일부 핵심참모들과 최소한의 채널만 유지하며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자꾸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심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 구조에서 자꾸 소외되고 있는 친박계의 원거리 그룹들은 이번 신당창당 논란을 거치면서 ‘번지수를 잘못 찾아 신당론에 부화뇌동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박근혜의 사랑을 받지 못한 서자의 설움을 토로하고 있다. 적자들에 비해 정보공유가 부족하고 이는 ‘박근혜 대권 쟁취’라는 강고한 의지의 결핍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안풍과 같은 외풍에 당연히 흔들릴 수밖에 없는 계파 구조에 묶여 있는 셈이다.
실제로 박근혜 신당론의 진원지도 이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공천 탈락을 우려하는 영남권의 일부 중진들과 총선 걱정을 하는 수도권의 초·재선 의원 그리고 핵심그룹에서 밀려난 옛 캠프 출신 인사 등이 신당론의 발화점이다. 이들은 “안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시점에서 한나라당이라는 구시대 옷을 입고는 절대 박근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며 걱정하고 있다.
사실 친박계 내부에서 신당론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당내 친박인사들뿐 아니라 박 전 대표와 가까운 당 바깥의 인사들 사이에서도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결별보다는 정책을 통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일단’ 선호하고 있다. 급격한 정계개편보다는 정책개발을 통한 민심과의 소통에 치중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박 전 대표의 원거리 그룹에서는 “너무 안이한 대응”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사실 박 전 대표가 소장파와 연대해 청와대를 향해 국정기조를 바꾸고 쇄신을 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지만 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오히려 청와대는 박 전 대표가 당을 절대 떠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그를 철저하게 옭아매는 출구전략을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서 바로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어느 정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박 전 대표도 신당창당에 대한 전략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여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끝까지 박 전 대표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와 특정 시점에서 2인자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전자는 주로 친이계 강경파의 속셈이다.
한 친이계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 청와대가 정운찬 전 총리를 대권주자로 다시 띄우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일요신문 1018호 보도). 이 대통령 자신은 박 전 대표와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싶겠지만 형님 이상득 의원과 일부 청와대 강경파들이 반대를 하고 있어 고민인 것으로 안다. 권력 생리상 일단 저쪽에 넘겨주게 되면 그것으로 이 대통령의 정치생명은 끝이 난다. 정 전 총리가 강력한 대항마는 아니지만 죽더라도 끝까지 대권주자로 내세워 박 전 대표를 견제해야 한다는 전략을 두고 이 대통령이 고민에 빠진 것 같다. 친이직계는 여전히 박 전 대표가 집권할 경우 야당집권 때보다 더 심한 고초를 겪을 것으로 우려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여의도 주변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일부 대기업과 언론사를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로 압박하는 배경을 두고 그들이 박근혜 전 대표 측에 줄을 대려했다가 들통나 시범케이스로 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미래권력 박근혜 전 대표에게 줄을 대려는 대기업에 공개 경고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대통령은 앞으로도 힘이 있을 때까지 철저하게 박 전 대표를 압박할 것이라는 게 하나의 시나리오다.
이 경우 박 전 대표는 당연히 신당창당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 최근 친박계의 원거리 그룹이 신당창당 카드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대안으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와 일부 핵심측근들이 플랜 B 전략 수립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고 그것이 곧 박근혜 필패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서서히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는, 외길 구도로 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내가 경험한 이 대통령은 간이 작다. 정치적인 배짱이 없다는 말이다. 기업경험만 오래 했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데 익숙해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올 오어 나씽’의 정치적 승부수를 모르는 사람이다. 당분간 박 전 대표를 견제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되는 답답한 상황이 올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박 전 대표는 굳이 신당창당을 할 이유가 없다. 현재 박 전 대표와 그의 핵심참모들이 믿고 있는 구도다. 하지만 이 전략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과연 이 대통령을 끝까지 믿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명분으로 이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을 압박할 경우 양측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인내력의 한계를 보일 경우 친이계의 반발과 이탈이 이어져 양측의 연대는 깨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양측은 분당 직전까지 가는 치열한 싸움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박 전 대표는 신당창당 문제를 두고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한다. 박근혜 신당은 대권으로 등극하기 위해 그가 넘어야 하는 가장 어려운 산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