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감독 웃찾사 시절부터 팬 “노련한 배우처럼 연기”…김신영 “낯선 전학생 느낌” 담금술 들고 와 현장 적응
박찬욱 감독과 김신영의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각자 활동 무대가 다른 데다, 접점이 될 만한 인맥을 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김신영의 출연은 비밀에 부쳐진 탓에 ‘뜻밖의 캐스팅’을 둘러싼 궁금증은 증폭되고 있다. 연기력 또한 반전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개그맨 김신영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배우가 이제 막 스크린에 데뷔한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관객 반응 역시 호의적이다. 박찬욱 감독의 선구안에, 동료인 봉준호 감독은 질투를 감추지 않았다는 후문도 들린다.
#박찬욱 감독이 김신영을 택한 이유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이자 용의자인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빈틈없이 반듯한 형사와 유력한 용의자 사이에 흐르는 묘한 감정이 사랑으로 흐르는 과정이 몇 개의 살인 사건과 맞물려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에 이어 전 세계 192개국 선판매에 성공해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올해 최고 화제작으로 거론되는 ‘헤어질 결심’을 둘러싼 여러 평가와 궁금증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김신영이라는 존재다.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이 처음 공개된 직후부터 영화계 관계자들은 물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부분이기도 하다. 박해일과 호흡을 맞춰 극 후반부를 이끄는 데다 캐스팅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이를 영화로 확인한 관객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헤어질 결심’에 김신영이 출연한 데는 전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팬심’이 작용했다. 박 감독은 김신영이 데뷔 초 SBS 개그프로그램 ‘웃찾사’에서 ‘행님아’ 코너를 선보일 때부터 팬이었다고 고백했다. “원래 코미디를 잘하는 사람은 다른 연기도 다 잘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감독은 “캐스팅에 별다른 염려를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오랫동안 김신영을 지켜보면서 확신이 섰다는 뜻이다.
박찬욱 감독은 내심 김신영을 통해 연출자로서 ‘전략’을 펼쳐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영화 ‘마더’의 송새벽처럼 대학로에서 몇 십 년 연기한 배우가 첫 영화에 출연한 느낌이 되길 바랐다”며 “실제로 현장에서 노련한 배우처럼 연기를 잘해줬다”고 만족해하면서 김신영을 “보배”라고 칭했다.
김신영이 연기한 젊은 형사 연수는 새로 부임한 선배 형사 박해일과 살인 사건 수사를 맡게 되는 인물이다. 지역 토박이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 그는 경찰서 안에 자신의 편이 없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사건을 파헤친다.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선배 박해일을 자극하기도 한다. 개그맨이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 코믹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에 그쳤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김신영의 모습은 뜻밖이다. 발군의 연기력은 그 자체로 반전이다. 스토리 진행과 별개로 김신영의 등장은 관객을 긴장시키는 효과까지 톡톡히 낸다.
박찬욱 감독이 김신영을 캐스팅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박해일은 “신의 한 수”라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조금도 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극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배우로 여겼다. 박해일은 “원래 희극인이고, 다른 말로 무대에서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배우이기도 하니 연기에 대해 걱정이 없었다”며 “현장에서도 진지한 모습으로 연기에 임하는 것을 봤고, 현장에서 개인적으로도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낯선 전학생 같은 느낌”
2003년 데뷔해 연예계 활동 20년을 맞은 김신영은 사실 ‘못하는 게 없는’ 다재다능한 스타로 꼽힌다. 공개 코미디 무대를 통해 쌓은 연기력,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의 인기 DJ로 인정받은 순발력, 최근 ‘둘째 이모 김다비’라는 이름의 트롯 가수로 데뷔한 가창력, 그룹 셀럽파이브로 인정받은 댄스 실력까지, 재능이 어느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전천후 스타다. 어쩌면 박찬욱 감독이 김신영에게 팬심을 품고, 캐스팅한 건 남다른 ‘눈’을 지닌 연출자의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하다.
김신영은 박찬욱 감독의 출연 제안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응했다. 누구나 원하는 기회이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직접 만난 영화 현장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김신영은 그 기억을 “낯선 전학생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존재는 다름 아닌 박해일. 김신영은 “대학생이 돼 처음 본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었는데 그때 본 박해일 배우와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라고 얼떨떨한 심정을 밝혔다.
보기와 달리 낯가림이 심하다는 김신영은 영화 현장에 적응하기 위해 남다른 시도도 했다. 직접 담근 술을 한아름 싸서 지방 촬영 현장을 찾아갔다. 김신영이 가져온 담금술을 현장 스태프들은 한 모금씩 나눠마셨고, 영화계 애주가로 통하는 박해일의 마음까지도 빼앗았다. 귀한 술에 대한 애착은 박찬욱 감독도 예외일 수 없었다. 박 감독은 김신영의 담금술이 차츰 줄어들자, 남들 모르게 자신의 차 트렁크에 넣어두기까지 했다.
김신영은 ‘헤어질 결심’을 계기로 배우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챙겼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영화 시상식에서 조연상이나 신인상 수상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만큼 영화와 캐릭터에 절묘하게 녹아든 실력이 눈길을 붙잡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여러 감독에게 당부했다. 김신영에게 많은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부탁이다. 그러면서 여지를 남겼다. “김신영이 바빠서 출연해줄지는 모르겠다”라는 단서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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