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지상주의가 낳은 패륜의 끝 ‘참담’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 3월 13일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어머니 A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아들 B 군(18)에 대해 지난 11월 24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B 군은 살해 후 약 8개월 동안 시신을 방안에 방치하고, 부패해 냄새가 나자 공업용 본드로 방문을 밀폐하는 등 범행 사실을 숨겨온 사실도 드러났다.
아버지가 5년 전 가정불화로 가출한 뒤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던 B 군은 어머니로부터 성적에 대한 심한 압박을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정황만으로는 싸이코패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패륜범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들의 살해 동기가 밝혀지자 어머니와 아들 모두 ‘성적 지상주의’ 교육 풍토의 희생양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위 1%에 해당하는 전국 4000등까지 올랐던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끔찍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봤다.
지난 11월 22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다세대주택을 경찰이 급습해 밀폐된 안방 문을 열자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시신은 다름 아닌 집주인 A 씨의 시신이었다. 경찰은 그 옆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던 고3 아들에게 범행 경위를 물은 뒤 아들을 체포했다. 어머니의 시신과 범행을 자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들 사이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은 올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날인 3월 12일 B 군은 이날도 어머니 A 씨로부터 ‘성적이 왜 이것밖에 안 나왔냐’ ‘이래서 서울대에 갈 수 있겠냐’는 잔소리를 들었다. 오후 10시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잔소리는 다음 날 오전 8시경까지 약 10시간 동안 이어졌다. B 군은 이 과정에서 엎드려뻗친 채 골프채로 맞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다음날인 3월 13일 B 군은 밤새 자신을 꾸짖은 뒤 안방에서 잠든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했다.
B 군은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전국 1등’ ‘서울대 법대’를 강요하며 잠을 재우지 않거나 골프채와 야구방망이로 10시간 동안 때리는 등 체벌을 가해왔다”고 주장했다. 또 B 군은 “당시 전국 4000등 정도의 성적을 받은 모의고사 성적표를 62등으로 위조한 사실이 어머니에게 들통 나면 심한 벌을 받게 될까 두려워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B 군이 어머니를 살해한 다음 날인 14일에는 학부모회가 예정돼 있었다. B 군은 경찰조사에서 “학교에서 어머니가 진짜 성적을 알게 되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했다.
2006년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평소 어머니로부터 성적에 대한 압박을 받아왔던 B 군은 사실 중학교 때부터 성적표를 위조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항상 ‘1등’ ‘서울대 법대’를 요구하는 어머니의 기대를 중상위권 성적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우수한 성적만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학대에 아들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지면서 일각에서는 B 군도 희생양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B 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뒤 8개월 동안이나 어머니 시신을 집에 방치해 온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B 군은 시신이 부패해 냄새가 나자 시신이 있는 안방 문틈을 공업용 본드로 밀폐해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게 했다. 또 B 군은 이웃과 친지들이 A 씨의 행방을 물어오면 “가출했다”고 둘러대며 범행 사실을 숨겨왔다.
더군다나 B 군은 이런 상황에서 올해 대입수능까지 치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B 군의 행동들이 과연 친모를 살해한 아들의 행동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B 군도 범행 뒤 혼란과 방황의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증거는 B 군의 학교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어머니를 살해한 시기에 B 군은 학교를 자주 결석하는 등 불안한 심리를 행동으로 보였다고 한다.
B 군이 다녔던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B 군은 평소 조용하고 착실한 모범생으로 여느 고등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B 군은 2학년 들어 성적이 약간 떨어지기는 했지만 1학년 때까지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B 군은 2학년 때까지 결석 한 번 없을 정도로 학교생활에서도 성실한 편이었다. 학교 관계자는 “공부도 곧잘 했고 2학년 때까지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B 군의 행동에 변화가 일기 시작됐다. 3학년 들어 갑자기 결석이 잦아지고 성적도 중하위권으로 크게 낮아졌던 것이다. 3~4월경에는 이틀이나 사흘씩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일이 반복되기도 했다. B 군이 어머니를 살해한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B 군의 담임교사는 B 군의 결석이 잦아지자 B 군에게 전화를 하고 집에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연락 두절이거나 집에 찾아가도 문이 잠겨 있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 군은 담임교사와 면담에서 성적에 대한 고민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학교에서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차례 상담을 실시한 후에도 B 군이 나아지지 않자 담임교사는 어머니를 학교에 모시고 오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B 군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해외여행을 가셨다” 등의 말로 둘러댔다. 이후 11월 수능시험일이 가까워지자 B 군은 다시 학교에서 성실히 수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A 씨로부터 연락이 끊긴 것을 이상히 여긴 부친이 1년 만에 집에 들렀다. 안방 문을 잠가놓은 채 열지 못하게 하는 B 군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 일체가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B 군이 경찰조사에서 ‘꿈속에 어머니가 나와 고통스러웠다. 제가 잘되라고 그랬던 어머니의 마음은 이해했지만 두려웠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수차례 했지만 뻔뻔스럽게 살아있다’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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