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법률 자문 제대로 아는 변호사 적어 ‘촉각’…폭락장 갈등 이슈 증가, 테라 수사가 ‘가이드라인’
“실패와 사기는 다르다.” 테라·루나 관련 각종 의혹들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한 해명인데, 많은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도 ‘사기’로 고소나 고발당하지 않기 위해 법률 자문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 암호화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법조인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상황 1] 검찰 출신 A 변호사는 지인 소개로 암호화폐 개발업체 B 사의 자문을 수임하게 됐다. 거래소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A 변호사에게 B 사는 대형 프로젝트 관련 법률 자문을 의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A 변호사는 암호화폐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탓에 ‘암호화폐 전문 변호사’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A 변호사는 “암호화폐 기술에 대해 이해하는 변호사를 본 적이 없다”며 “찾아보니 암호화폐는 시세 조종 행위 등도 불법의 영역이 아직 아니더라. 암호화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변호사를 찾고자 하는 기업들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황 2] 로스쿨 출신 C 변호사는 암호화폐 기술에 관심이 많아 초창기부터 관련 사건을 많이 수임했다. 하지만 C 변호사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경찰이나 검찰, 법원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에 관련 업무를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C 변호사는 “1~2년마다 인사가 나서 사건 담당자가 바뀌면, 앞서 했던 설명을 모두 다시 해야 하는 게 너무 고역이었다”며 “변호사 시장에서도 암호화폐 시장을 이해하는 이가 드물다지만, 경·검찰과 법원 등 정부에서도 전문성 있는 인재를 키워내지 않는 게 진짜 문제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상황 3]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법무부 정책기획단 검사로 근무했던 D 변호사를 최근 최고법률책임자(CLO)로 영입했다. D 변호사는 정책기획단에서 박범계 당시 법무부 장관을 보좌할 당시에도 두나무에 입사하려 했으나 업무 관련성 비판이 제기되면서 두나무에 합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두나무 취업을 승인하면서, D 변호사는 두나무의 법률적인 문제를 총괄하는 최고법률책임자로 일하게 됐다. 두나무가 검사 출신 변호사를 영입한 것은 암호화폐를 둘러싼 법적 이슈가 첨예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폭락하는 만큼 늘어나는 갈등?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활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도 첫 사건으로 테라·루나 폭락 사건을 선택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코인 개발사 테라폼랩스와 권도형 대표에게 제기된 의혹은 크게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조세 포탈 △수상한 자금 흐름(횡령 의혹) 등 3가지다.
암호화폐 업계와 법조계는 이번 수사가 ‘암호화폐 관련 사건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암호화폐가 만들어져 거래소에 상장한 뒤 투자자금 회수를 위한 경영진의 시세 조종 행위 등을 모두 확인하는 수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루나·테라 사건이 터지면서 암호화폐 가치가 크게 폭락했고, 그만큼 변호사를 찾는 수요가 늘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암호화폐 개발부터 상장까지, 수많은 경영의 범주들이 모두 ‘위법성 여부’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테라·루나 사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테라USD(UST)를 1달러에 고정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및 테라 플랫폼의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앵커 프로토콜의 개발 자체가 사기라는 주장이 제기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실제 일부 직원들은 프로토콜 자체가 ‘불가능한 모델’이라며 권도형 대표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관련 진술들을 확보했는데 이를 놓고 권도형 대표는 “자신도 돈을 모두 잃었다”며 사기가 아닌, 경영 실패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으로 사기 혐의를 적용하려면 ‘고의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거꾸로, 실제 사업을 추진할 믿음과 의지가 있었다면 사기 혐의는 적용되지 않는다. 테라·루나 사건과 암호화폐 가격 폭락을 목격한 많은 개발사들이 ‘사기’가 되지 않기 위해 사업 과정에 대한 법적 자문을 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선 A 변호사는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 등으로부터 공문을 받거나 유권 해석을 받는 것 하나하나가 중요한 기업들이 많은데 이들의 목적은 ‘실제 사업 추진을 타진했다’는 증거를 남기려는 것”이라며 “투자자들 간 갈등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코인 개발 및 상장에 성공해야 하는데 이를 이루지 못한 경우 법적 다툼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코인 상장까지 넘어야 할 단계들
코인 및 관련 기술 개발은 그나마 쉬운 편이다. 거래소 상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더 험난한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업비트나 빗썸 등 유명 거래소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외국 거래소 상장 및 거래량 증가 등 상장 기준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어 이를 대행해주는 업체들도 존재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의 위법성 여부다.
C 변호사는 “암호화폐 개발업체가 이름 대면 알 만한 대형 거래소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최소 20억 원, 많게는 100억 원이 필요하다”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MM(마켓 메이킹)팀인데, 적어도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을 줘야 한다”고 귀띔했다. MM팀은 자전거래 등을 통해 시세를 띄우고 거래량을 늘리는 등의 행위를 담당한다. 시장에 여러 팀이 ‘프리랜서’ 개념으로 존재하는데, 이들의 역할은 단순하다.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목받을 수 있도록 시세도 수십 배 이상 올리고, 거래량도 늘려야 한다.
주식이었다면 주가조작에 해당하는 행위지만 암호화폐의 경우, 아직 ‘금융상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주가조작으로 볼 수 없다는 논란이 있다. 실제로 테라·루나 사건에서도 검찰은 권도형 대표 등이 자전거래를 통해 시세 조종 행위를 했는지, 이 중 자금 일부가 세탁에 활용됐을 가능성도 있는지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암호화폐의 경우 주식처럼 시세 조종 행위를 해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없기 때문에, 횡령이나 배임 정도로만 처벌하는 게 전부이지만 문제가 있다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지 않느냐”며 “테라·루나 사건에서 시세 조종 행위에 대해 기소할 수 있을지, 기소한다면 어떤 혐의를 적용할 것인지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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