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너는 펫>의 남자주인공 장근석. |
일본만화 <너는 펫>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펫 문화는 이후 2003년 일본TV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케이블TV에서 리얼버라이어티 형식으로 제작되면서 펫 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펫 프로그램은 2009년 시즌7까지 방영된 뒤 종영됐다.
TV 예능프로그램의 인기는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인기배우들이 출연하며 펫 문화는 자연스레 신세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펫 문화가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생산되자 많은 젊은이들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체험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펫 카페’를 만들고 애완남이 되겠다는 사람과 주인이 되겠다는 여성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의외로 애완남이 되는 것은 쉽다. 해당 카페에 가입해 자신의 프로필과 사진을 올린 뒤 여성의 연락을 기다리면 된다. 실제로 체육 강사라는 김 아무개 씨는 안마 서비스에서 목욕까지 가능하다며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했다. 또 김 씨는 “부르시면 애타지 않게 빠른 시간에 서서히 편안하게 만족시켜드립니다. 펫으로 키워주시면 당연 너무너무 감사하죠”라며 다소 민망한 멘트와 함께 자신의 이메일 주소와 휴대폰 번호를 남겼다. 회원수 2000여 명이 넘는 A 펫 카페에는 김 씨처럼 이렇게 애완남이 되겠다는 남성들의 글이 수백 건이 넘었다.
펫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기자는 이 중 한 명인 카페 회원과 전화 통화를 나눠봤다. 박 아무개 씨(25)의 애완남 경력은 이제 1년으로 짧은 편에 속했다. ‘애완남이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씨는 “주변에 친구들이 하는 걸 봤다. 나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박 씨는 “솔직히 돈을 보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이 중요하다. 얼마 전에도 여성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한 달에 300만~500만 원을 제시해 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펫 만남에는 이유와 목적이 뒤따랐다. 기자가 여성으로 위장해 몇몇의 애완남이 되겠다는 사람들과 접촉해 본 결과, 다수의 남성들은 처음엔 ‘돈이나 성관계가 목적이 아니다’고 발뺌하다가 살짝 돈이나 성관계로 대화를 유도하면 그들만의 속내를 드러냈다.
▲ 최근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애완남, 애완녀를 찾는 변질된 만남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
대부분의 펫 만남은 애완남이 글을 올리면 주로 여성 측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간간이 ‘애완남을 찾습니다’라는 여성의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여대생 B 씨(22)는 “안녕하세요. 영화 <너는 펫> 보고 펫 키우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서울 ○○구 살고 착하고 귀엽고 애교 많고 말 잘 듣는 펫을 원합니다”는 글을 남겼다. 또 B 씨는 “아직 부모님하고 같이 살아서 같이 살 수는 없지만 졸업하고 좀 있다가 독립할 거 같다”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기자는 애완남으로 가장해 B 씨와 카카오톡 대화를 나눠봤다. 애완남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는 B 씨는 기자에게 조심스럽게 나이, 사는 곳, 키, 직업 등을 물어봤다. ‘어떤 만남을 원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B 씨는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올 수 있고, 나만 생각해 주는 애완남을 원한다”며 펫 문화가 남·녀 사이에 또 다른 만남의 형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처음인데 겁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B 씨는 “계약서를 쓰니까 걱정은 안된다”고 대답했다.
펫 만남은 연락이 닿은 후 서로 마음에 들면 본격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한 뒤 시작된다. 실제로 카페에는 ‘주인과 펫 계약서’라며 예시안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계약서 내용은 ‘주인의 요구사항’이라며 첫째, 주인방에는 들어오지 않으며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 둘째, 집에 친구를 데려오지 않는다. 셋째, 나갔다 올 시에는 어디로 가며 언제 오는지 꼭 미리 말해야 한다 등을 적으며 계약 기간을 명시한다. 하지만 이런 계약서가 어떤 실효성이 있는지에는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펫 문화는 애완남, 여주인 형태로 이뤄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애완녀를 찾는 남자들도 생겨나면서 애완녀 펫 카페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 애완녀를 키우려는 남성들의 목적이 성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변형 성매매, 즉 스폰 만남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애완녀 사이트에 올라온 남성들의 글은 대부분 ‘같이 동거할 수 있느냐’ ‘관계까지 가능하느냐’ 등의 글들이 많았다.
일부는 가학적이면서 변태적인 성관계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성 같은 남성, 주인님이 필요한 님들 찾아요. 25~35세. 가능하면 여성스럽고 복종심 강하고 양성이면 더 좋고, 혹시 젠더나 이반님들도 환영해요.” 마치 성인 음란물 광고에나 나올 법한 문구들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글에 댓글을 달고 연락을 취한 카페 회원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규제나 제재가 없다보니 펫 문화는 처음 친구 사귀기에서 애인 만들기, 이제는 사람을 동물처럼 키운다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변형되고 있다. 최근 남성연대는 영화 <너는 펫>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너는 펫>의 설정은 지극히 변형적인 인간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람 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범죄행위를 10대, 20대들이 무분별하게 따라할 수 있다”며 펫 문화에 대해 강한 우려감을 피력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