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김동규
2005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번으로 SK에 입단했던 김동규. 어렸을 때부터 소원했던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었다는 기쁨은 1군이 아닌 2군 무대를 맴돌면서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 말 공익근무요원으로 훈련소에 들어갔다가 퇴소하는 날, SK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고 나선 더더욱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제대 후 아는 에이전트가 월 20만 엔에 일본 독립리그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해서 현해탄을 건넜다가 전혀 다른 계약 조건을 듣고 돌아와야 했다. 그 팀에선 8만 엔을 불렀고 숙식도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8만 엔에서 세금 떼고 숙식비 내고 나면 교통비조차 빠듯했다. 너무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다시 보따리를 싸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게 눈치가 보였던 김동규는 급기야 막걸리 제조업체에서 실업야구팀을 병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서울생조주’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하게 된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방금 나온 막걸리를 냉동 탑차에 싣고 배달을 나가는 게 김동규의 주업무였다. 배달을 마치면 슈퍼마켓이나 동네 가게를 돌며 영업을 시작했다. 막걸리 회사이다보니 영업할 때 막걸리를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말이 실업야구였지 그 회사에서 야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도 채 안 됐다. 야구를 하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 막걸리 배달을 선택한 김동규로선 점차 야구 훈련은 게을리하게 되고 막걸리 배달과 영업으로 살이 찌기 시작하는 사회인 김동규를 발견하곤 4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하고 말았다.
“막걸리 회사를 나와서 인사차 모교인 장충고등학교를 찾았다가 유영준(현 NC스카우트) 당시 감독님께서 나한테 야구팀 코치 자리를 제의해주시는 바람에 다시 야구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코치를 하면서 20㎏이나 늘어난 체중조절에 들어갔고 NC다이노스에서 공개 트라이아웃을 실시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을 하게 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김동규는 1차, 2차 공개 테스트를 통해 NC유니폼을 입었지만 여전히 선수들 사이에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한마디로 ‘×줄’이 탄다. 처음에는 단 1년 만이라도 다시 프로팀 유니폼을 입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NC가 평생 직장이었으면 좋겠다. 욕심이 생기다보니 마음이 급해지고, 몸은 안 따라오고, 선수들 사이에서 경쟁은 치열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막걸리 배달이 아닌 야구선수인데 야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는 일이다.”
SK 최정, 정근우가 입단 동기라는 김동규는 올 시즌 포스트시즌을 지켜보며 두 선수의 활약에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최정, 정근우와 출발은 비슷했지만 결과가 천양지차인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김동규가 치열한 내부 경쟁을 딛고 NC 다이노스의 최종 멤버로 승선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황덕균
2002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황덕균(28). 그러다 2004년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고 조용히 사라져야만 했다. 그렇다고 야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황덕균은 지인을 통해 전설적인 대선배 이상훈을 소개받게 된다.
“처음 이상훈 선배를 만날 때 굉장히 두렵고 긴장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좌완투수로부터 조련을 받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고 떨렸다. 처음엔 다소 무뚝뚝하셨지만, 나중엔 ‘선배’라고 부르지 말고 ‘형’으로 부르라며 살갑게 대해주셨다. 송파구청에서 공익근무를 했는데 일이 끝나면 이상훈 선배한테 달려가서 훈련을 반복했었다. 그 사이에 LG에서 두 번, 한화에서 한 차례 테스트를 받았고 좋지 못한 결과를 받았다. NC 다이노스 공개 트라이아웃은 마지막 기회라는 비장한 심정으로 치른 테스트였다.”
황덕균은 김경문 감독과의 남다른 인연도 공개했다.
“감독님과는 두산에서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다 2008년 잠실 송파구청 앞 신호등에서 건너편에 계시는 감독님을 발견하게 됐다. 당시 감독님은 베이징올림픽 이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계셨다. 당연히 날 못 알아보실 거라 생각하고 조용히 스쳐지나가려 했는데 감독님께서 날 부르시더니, ‘덕균아, 잘 지냈어? 야구 안 할 거니?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다시 도전해봐라’하고 얘길 해주시는 게 아닌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날,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다 NC 공개테스트 첫 날, 내가 피칭을 하려고 마운드에 서니까 먼저 알아보시더니 웃으셨다. 정말 신기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김경문 감독은 황덕균을 ‘꼴뚜기’라고 부른단다. 다른 코치들 사이에선 ‘덕구’로 통한다. 2013년 황덕균이란 이름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1군 마운드에 올라가는 게 소원이라는 ‘덕구’는 훈련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꼭 써달란다. 김경문 감독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다.
#김진성
처음 기자 앞에 나타난 김진성은 말수가 없고 표정도 어두웠다. 훈련이 고돼서 그런가보다 싶었지만 그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조금씩 자신의 진심을 꺼내보였다.
“난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이혼하시는 바람에 나한테는 할머니, 할아버지밖에 안 계셨다. 초등학교 시절, 비가 올 때 엄마가 우산을 들고 친구들을 데리러 오는 모습을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사춘기 시절을 지배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할머니한테 많이 못 되게 굴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은 자꾸 비뚤어진 모습만 보이게 됐다. 그렇게 고생하신 두 분에게 처음으로 효도했던 게 SK 유니폼을 입었을 때다. 손자가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지금도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쁨은 SK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됐다가 지난해 방출되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고등학교 때 입은 팔꿈치 부상이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고 결국엔 수술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방출당한 후 재활센터에 들어가 재활 훈련을 받아야 했지만 한 달에 50만 원 정도하는 재활비를 낼 수 없어 동네 헬스클럽에서 혼자 재활 훈련을 소화해냈다고 한다.
“지금 꿈이라면 내가 1군 마운드에 등판하는 날, 할머니 할아버지를 경기장으로 초대해서 손자가 공 던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일이다. 아마 그 모습을 보게 되신다면 두 분은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
김진성은 감독, 코치, 모두 감사한 분들이지만 선수들을 위해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치료를 해주는 트레이너들한테 큰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재활센터 등록비 50만 원이 없어서 동네 헬스장을 찾았던 김진성으로선 지금의 트레이너들이 은인이자, 응원군이기도 한 셈이다.
#한윤기
2007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번으로 SK에 입단했던 한윤기. 김광현과 동기였다. 2군에서만 머물다가 군 입대를 자원해 2년간의 현역 복무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잇단 부상 속출로 결국엔 올해 초 방출 통보를 받고 만다.
“광현이랑은 신인 때 많이 친했다. 그러다 내가 줄곧 2군에만 머무르는 바람에 자주 볼 수 없었는데 광현이가 지난해 2군으로 내려오면서 다시 친하게 지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SK와 인연을 이어가지 못하는 나로선 광현이가 많이 부러웠었다.”
갑자기 소속팀이 없어진 한윤기는 잠시 방황을 거듭했다고 한다. 하루 아침에 ‘백수’로 전락한 자신의 신분이 어이없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시간들이 많았다.
“NC의 공개 트라이아웃 1차 때 살 떨리는 긴장감을 맛봤다. 한 번 프로 생활을 경험해 보니까 다시 그 세계로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었고, 선수들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고 있어서 합격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SK에 첫 입단했을 때보다 NC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가 열 배는 더 기뻤다(웃음).”
한윤기는 가장 최근까지 선수 생활을 한 덕분에 체력적인 면에선 크게 힘들지 않다고 한다. 구단 측에선 한윤기의 곱상한 이미지가 여학생 팬들한테 어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얘기를 듣고 한윤기는 “1년 계약 후 재계약을 할 수만 있다면 여학생 팬들뿐만 아니라 창원의 야구 팬들을 위해 몸 바쳐 뛰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제주=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