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비자금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영완 씨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전경. 작은 사진은 김영완 씨. |
박 전 대표는 문화관광부 장관 재직 시절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으로부터 총선자금 150억 원을 전달받은 혐의로 지난 2006년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당시 이 전 회장으로부터 150억 원을 받아 박 전 대표에게 ‘배달’한 장본인이 바로 김영완 씨였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대법원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실 박 전 대표는 김 씨의 귀국에도 전혀 ‘쫄’ 필요가 없다.
그런데 검찰의 칼은 김 씨가 아니라 박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듯 보인다. 검찰 측은 표면적으로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내세우며 박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 씨와 관련한 현대 비자금 사건을 다시 수사할 예정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피라미’ 김 씨보다 ‘몸통’ 박 전 대표를 잡기 위해 그의 귀국을 기획했다”는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각계의 정보망을 총동원, 장관 청문회 등에서 이명박 정권을 ‘괴롭혀’ 미운털이 박힐 법도 한 상황이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다음 달 출범하는 통합정당의 유력한 당권주자로 부상 중이다. 시점이 절묘하다 못해 ‘콕 찝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검찰의 김 씨 수사 재개만으로 박 전 대표는 이미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셈이다. 타 주자들의 공격 소재가 될 뿐 아니라 구태정치의 중심이었다는 이미지가 계속 리바이벌되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이 검찰의 수사 재개를 두고 즉각 “수사 시작부터 표적수사였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까지 났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수사가 될 수 없는 사안이다. 야당의 유력한 당권 후보 죽이기”라고 반발하는 것도 그가 받은 충격을 대변하는 것이다.
<일요신문>은 지난해 8월 955호를 통해 여권 핵심부가 ‘대북송금 사건’ 키를 쥐고 있는 전직 무기중개상 김영완 씨의 행적을 쫓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 뒤 올해 5월 991호에서는 여권이 그의 은신처를 파악했다는 후속보도도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그가 곧 국내로 송환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전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결국 1년이 지나서야 귀국을 했다.
김 씨는 고려대 출신으로 김영삼 정권 때부터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무기 중개상 일을 해왔다. 그는 평소 자신의 신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등 철저히 베일에 가린 채 활동을 해 화제를 모았다. 김 씨의 유별난 보안의식은 종로구 평창동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자택 주변에 사설경호원 5~6명을 상시 배치할 정도였다. 하지만 대북송금 사건 과정에서 김 씨의 집에 7인조 강도가 침입해 현금과 무기명 채권 등 100억 원대의 금품을 강탈한 사건이 뒤늦게 불거져 세간의 온갖 억측을 낳기도 했다.
돈세탁 전문가로도 알려진 김 씨는 자신이 세탁한 돈의 규모가 현대 비자금 150억 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도 당시 무성했다. 김씨가 1999년 하반기부터 2000년 상반기에 걸쳐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뒤쪽 이면도로에서 4차례에 걸쳐 건네받아 종로구 평창동 자택으로 운반한 정체불명의 현금 160억~180억 원의 성격도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남북정상회담과 현대의 유동성 위기를 전후해 음성적으로 조성된 자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가 귀국해서 그 가운데 일부라도 밝힐 경우 김대중 정권 라인은 초토화될 수도 있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씨는 본지가 지난 2003년 특종 보도했던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박지원 전 장관과 해외출입국 기록이 일치했다’는 점 때문에 정상회담에도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