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이동국. 사진제공=전북 현대 |
#화끈한 전북의 ‘닥공’과 이동국
챔피언 등극 여부를 떠나 올해 K리그 전체 판도를 이끈 클럽으로 전북 현대를 빼놓을 수 없다. 팀으로서도, 선수로서도 전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고 히트상품은 ‘닥공(닥치고 공격)’이었다. 정규리그 30라운드에서 18승9무3패라는 엄청난 성과를 올리며 K리그 가을잔치 마지막 무대에 우뚝 섰다. 67골을 기록해 파괴력에서도 일인자임을 확인시켰다. 학습효과였다. 작년 모든 대회에 도전했다가 아무 소득도 올리지 못했던 전북은 올 시즌 노선을 확실히 정해뒀었다. 시즌 개막에 앞서 올해는 무조건 K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에만 전념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이에 반해 수원 삼성은 전북이 1년 전 경험했던 아픔을 되풀이해 대조를 이뤘다. FA컵 준우승, ACL 4강, K리그 준 플레이오프(PO) 탈락 등 손에 넣은 토끼가 전혀 없었다.
국내 최고의 킬러로 군림하는 전북 스트라이커 이동국도 갈채를 받았다. 전북 ‘닥공’의 중심에는 이동국이 있었다. 걸음걸음이 드라마틱했다. 펄펄 날던 이동국은 10월 국가대표팀 조광래호에 차출됐지만 오히려 아픔만 경험했다. 짧은 출전 시간은 페이스 저하와 부상으로 직결됐다. ACL 4강 알 이티하드 원정을 앞두고 종아리 근육 부상을 입었고, 이는 결승전 최악의 플레이로 나타났다. 이동국이 ACL 결승전 직후 남긴 한마디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재계약을 둘러싼 스토리도 흥미진진했다. 전북이 ACL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K리그 챔피언결정전이 열리는 한 달 동안, 전북 관련 스토리는 모두 이동국의 재계약이었다. 항간에서는 전북이 내년 시즌에 대비해 ‘폭풍 영입’을 벌이기에 앞서 이동국 재계약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전북이 자유계약(FA) 선수로 풀린 국가대표 출신의 특급 미드필더 A를 영입하려는데, A에 전북이 제시한 연봉은 약 15억 원 선이었고 이동국 측이 이보다 적은 금액으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6월 이후 “이동국을 무조건 잡아달라”고 요청했다지만 합의까진 멀고멀었다. 재계약 협상 시작 이후 새 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 3개월 가까이 걸렸다. 계약기간과 연봉을 놓고 이견이 컸다. 전북은 10억 원 선, 이동국은 최소 12억 원을 희망했다. 다행히 합의점을 찾았다. 그것도 K리그 챔프전 직전으로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계약기간 2년에 연봉을 이동국이 희망했던 금액에 맞춰줬다고 한다.
▲ 지난 6월 11일 전북 심우연이 경남과의 경기에서 헤딩을 하기 위해 점프하는 모습. 사진제공=전북 현대 |
빈약한 축구 외교는 K리그를 계속 울렸다.
ACL 결승전을 빼놓을 수 없다. 알 사드(카타르)의 ACL 우승에 한국을 제외한 전 아시아가 연합한 게 아니냐는 시선도 짙었다. AFC 관계자는 “결코 그런 일이 없다. 한국 입장에선 서운하겠지만 AFC 징계위원회는 외압이나 강요에 의해 결정을 좌우하는 조직이 아니다”란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해 못할 대목은 많았다. 뒷이야기를 한 가지 하자면 알 사드는 결승전 날짜를 이슬람 연중행사로 연기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AFC에 타진했다고 한다. 결국 AFC에서 ACL 대회 진행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투표를 진행했고, 그 결과 날짜 변경에 응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사실 올 초 버젓이 정해진 날짜를 바꾸기 위해 투표를 진행한 것 자체부터 코미디였다.
AFC와 알 사드 간의 커넥션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날짜 변경에 응하지 않는 대신, 관중 폭행에 대한 징계를 늦추기로 협의했다는 것. 개연성은 충분했다. 알 사드는 또 결승전에서 특유의 침대 축구를 선보이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개인 비리로 불명예스럽게 축구계에서 영구 퇴출된 모하메드 빈 함맘 전 AFC 회장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전북, 수원이 도전한 ACL 4강전 때 중동 심판들이 계속 배정된 것도 아리송했다. ACL 운영을 관장하는 월드스포츠그룹(WSG) 직원들도 “왜 그런지 궁금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대로 한국 축구에 상처를 준 AFC는 K리그 챔피언십이 한창 진행 중이던 11월 말, 어처구니없는 발표로 K리그에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내년 ACL 티켓 숫자를 기존 4장에서 0.5장 축소한 3.5장으로 확정한 것. 희대의 생채기로 남을 승부조작 여파였다. 대신 항상 인정받지 못해온 카타르는 2.5장에서 4장으로 늘었다. 바야흐로 아시아 축구 최고 강자는 카타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택에 또 다른 코미디가 연출됐다. 최대 희생양은 포항이었다. K리그 정규리그 2위로 마치며 PO에 직행했던 포항은 내년 ACL 티켓을 확보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AFC 발표로 포항은 준PO에서 수원을 꺾은 울산과 티켓 경쟁을 벌여야 했다. 사실 울산도 수원을 꺾은 뒤 ACL 출전권을 얻은 줄 알고 있었지만 하루 만에 기쁨이 불안함으로 바뀌는 상황을 겪게 됐다. 결과적으로 울산이 포항을 꺾고 K리그 챔프전에 오르며 웃었다. 포항은 0.5장 티켓을 위해 내년 2월 ACL PO를 펼치게 됐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던 포항 프런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 지난 11월 5일 전북 현대와 알 사드가 펼친 2011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사진제공=전북 현대 |
올 시즌 컵 대회 타이틀을 따냈던 울산은 정규리그 6위에서 가을잔치 최상위 무대에까지 오르는 저력으로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줬다. 설기현은 ‘왕년의 스타’가 아닌, 진짜 스타로 발돋움했고, 탁월한 PK 선방 감각을 보유한 ‘중고 신예’ 골키퍼 김승규의 스토리가 더해져 마지막 잔치를 풍성하게 장식했다.
이에 반해 정규리그에서 시(도)민구단들의 연이은 몰락, ‘전통의 강호’ FC서울과 수원의 챔피언 도전 실패는 아쉬웠다. 엎치락뒤치락 3위 싸움을 벌이던 양 팀은 나란히 PO 진출 실패로 내년 ACL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