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FA 계약을 앞두고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넥센으로의 귀환은 모두의 예상을 깬 ‘깜짝쇼’였다. 특히 입단 조건이 굉장하다.
▲내가 LG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넥센과의 계약을 ‘의외’라거나 ‘쇼킹하다’거나 하는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50억 원이라는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쇼킹 운운하게 만든 것 같다. 이전 같으면 ‘잘할 수 있으니 지켜봐 달라’ ‘이택근이 밥값을 제대로 하는지 이제부터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등의 약속을 꺼내들겠지만, 지금은 말로 내뱉는 것보단 앞으로 야구장에서 직접 그 대답을 보여주고 싶다. 그게 최선일 것 같다.
―누구보다 김시진 감독이 이택근 선수의 귀환을 가장 크게 반겼을 텐데….
▲2년 전 트레이드 통보를 받고 떠나기 전 감독님께 전화를 드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자신도 트레이드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든 상황이라 감독님께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러다 이번엔 다시 돌아오게 됐다는 전화를 드렸는데, 많이 좋아해주셨다. 반갑게 받아주셔서 감사했고, 감독님께 드린 아픔을 조금이라도 갚아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그동안 히어로즈는 선수를 팔아 먹는 구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구단 운영비를 조달하기 힘들어서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그런 구단에서 이전 소속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50억 원을 투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장석 대표께서 날 다시 영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시면서 ‘이택근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라고 말씀하신 얘기를 들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2년 전 날 LG로 보내시면서도 ‘우리 꼭 다시 만나자’며 많이 미안해 하셨다. 이 대표께서는 어떤 형태로든 날 꼭 다시 만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아마도 그때의 미안함이 내 몸값에 조금은 포함되지 않았나 싶다. 외부에서 보는 시선과 달리 선수들은 이 대표를 믿고 따른다. 나 또한 LG로 옮겨가서도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배경이 원소속팀과의 협상이 끝난 후 제일 먼저 이 대표를 만났을 때 바로 계약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택근 선수의 FA 계약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넥센이 50억 원을 줄 정도라면 분명히 나중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를 시키려는 음모라는 얘기도 있다.
▲나도 그 얘길 들었다. 그런데 그냥 웃고 넘겼다. 당연히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서 신경조차 쓰이지 않더라. 지켜보면 음모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부분 아닌가.
이택근은 이 부분에서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소문이라고 해도 결코 듣기 좋은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신경을 건들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조차도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LG에서 보낸 시간들이 결코 편치 않았다. 부상도 있었고, 그로 인해 성적도 안 좋았는데, 지난 2년 동안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팀을 옮겼었다. LG는 히어로즈와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4강에 들어가야 한다는 성적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LG맨이 된 내가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동안 연습했던 패턴과 방법들을 모두 무시하고 경기 때마다 성적을 내려고 버둥거렸다. 그 결과가 부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천천히 성적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면 조금은 다른 모습이 돼 있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조급했다는 생각만 든다. 얻은 건 정말 많다.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고, 내 몸이 힘들고 피곤할 때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무엇보다 (이)병규 형, (조)인성이 형, (박)용택이 형 등 좋은 선후배들과 따뜻한 스킨십을 나눴다는 게 큰 선물이다.
―지난 시즌 중 허리 부상으로 출장 기회가 줄어들었을 때 코칭스태프와의 불화가 나돌면서 ‘100억 원을 줘도 LG에 남지 않겠다’라고 말한 선수가 이택근이란 소문이 있었다.
▲정말 나도 궁금하다. 어떻게 해서 그런 얘기가 소문으로 나도는지. 코칭스태프와의 불화 운운은 낭설이다. 박종훈 감독님도 나한테 너무 잘해주셨다. 오히려 내가 그 기대치에 어긋나는 성적 등으로 인해 죄송한 마음이 더 컸다. 100억 원을 줘도 LG에 남지 않겠다는 얘기에는 웃음이 나올 정도다. 만약 LG에서 100억을 준다면 남아야지, 왜 떠나나. 몸이 안 좋았고,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다보니 내 안의 스트레스가 쌓였을 것이고, 그런 부분들이 이런저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듯하다. 다 내 탓이다.
▲ 지난 11월 29일 이택근이 넥센 히어로즈 입단 환영식 및 기자회견에서 부모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등번호 29번을 넥센에서 LG에서 그리고 또다시 넥센에서 계속 달고 있는데, 그 번호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프로 처음 시작할 때는 31번을 달았었다. 그러다 2008베이징올림픽 대표팀에 발탁이 된 것이다. 당시 군 문제가 걸려있는 상태라 어머님께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병역 면제 혜택까지 받았으면 하시는 바람에 어디 가셔서 번호를 받아오신 모양이다. 대표팀 들어가선 꼭 29번을 달고 뛰어야 한다고 강조하셔서 그때부터 29번을 달았는데, 운 좋게 8전 전승에다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고 군 문제까지 해결이 됐다. LG로 팀을 옮길 때 다른 번호를 달 수도 있었지만 29번을 사용하던 페타지니가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그 번호를 받게 되었고, 지금 다시 넥센으로 오면서도 29번의 윤지웅 선수가 군입대를 하는 바람에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29번이 나랑은 꽤나 깊은 인연인 모양이다.
▲ 2008베이징올림픽 미국전에서 극적인 역전 득점을 올린 이택근을 향해 이승엽, 송승준이 뛰어오고 있다. 이 올림픽이 이택근의 등번호 29번의 시작이다. 연합뉴스 |
▲글쎄, 그게 대인기피증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바깥 출입과 사람 많은 데 돌아다니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이다. 커피 로스터를 사서 집에서 에스프레소 내려 먹고 음악 듣고 이런 시간들이 더 좋다. 성적 부진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들은 탓에 속상하고 힘든 부분은 있었지만 그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생기거나 하진 않았다. 단, 성적이 안 좋을 때는 야구장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기가 두렵더라. 몸도 힘든데 차까지 부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웃음). 그 또한 팬들의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였다.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안 물어볼 수가 없다. 한때 유명 여배우와 공식 열애를 즐기다 이별을 했고, 그로 인해 꽤 오랫동안 후유증을 겪었다.
▲그분도 공인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 얘길 거론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럽다. 인연이었으니까 만났던 것이고, 인연이 아니었기에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젠 결혼하고 싶다. 아기들만 보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이전에는 이런 감정조차 들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지더라. 야구를 잘하려면 빨리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이제야 실감난다. 빨리 결혼하고 싶고 빨리 아기도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이택근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다”고 운을 떼다가 그냥 배시시 웃고 만다. “노코멘트하겠다”는 말과 함께.
이택근은 내년 시즌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만나게 될 박찬호, 이승엽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 히어로즈와 ‘예약’이 돼 있는 김병현에 대한 아쉬움을 꺼냈다. “선배의 진로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게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넥센으로 오셔서 어린 선수들한테 큰 도움이 된다면 선수들도, 팬들도 김병현 선배님을 많이 따르고 좋아할 것이다”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어느 때보다 김병현의 존재가 팀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이택근의 김병현 바라기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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