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시 면허시험 어렵네” 김문수 지사가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에서 택시기사 면허시험을 치른 뒤 시험장을 나오고 있다. 김 지사는 경기도에 이어 서울에서도 민생체험 택시를 운영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
“요즘 김문수 경기지사의 생각이 저와 비슷해 위로받고 격려가 됩니다.”(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
“작년 6·2지방선거 때 땀 흘리며 저를 많이 도와줬습니다. 밥 한번 사겠습니다.”(김문수 경기도지사)
2011년 5월 19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포럼’ 강연에 앞서 김 지사와 정 전 대표는 서로를 격려했다. 이날 강연은 김 지사 초청으로 이뤄졌다. 한쪽은 노동운동가 출신, 다른 쪽은 현대중공업 회장 출신이지만, 대권·당권 분리규정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전술 핵무기 재배치 주장에까지 공통점을 늘려가고 있다. 정치인의 모습이다. 공동의 적을 위해서는 어떤 대상과도 통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공동의 적은 누구일까?
당내 대권 잠룡 가운데 한 명인 김 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라온 ‘한나라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는 한 이용자의 질문에 “재창당 수준의 개방과 개혁을 선도해야 살 것”이라고 답한다. 이와 동시에 ‘현재 한나라당의 문제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던 자유당 시절을 연상케 한다. (중략) 당을 해체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 사람만 바꾸면 될 일을. 사람이 안 바뀌려고 버티니 문제’라고 했다. 물론 바꾸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 속에서 자신의 대표 자리를 굳게 차지하려고 하는 현재의 홍준표 대표(12월 9일 결국 사퇴)가 아닌 또 다른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일 것이다. 정치인 김문수의 모습이다.
도지사 김문수의 또 다른 모습은 국내 최대 현안인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대한 그의 입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85%에 달하는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 속에서 적극적인 개방 없이 일자리를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노동운동가의 전력을 완전히 부정하고, 재벌회장이나 대기업 경영자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입장이다. 이런 그는 지사직을 수행하면서 주말이나 휴일에 택시를 몰며 경기도 각 지역을 다녔다. 택시기사 도지사의 이미지를 뚜렷이 보여준 그의 정치 스타일은 한나라당 내 다른 정치인들과 차별적인 ‘서민’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서민 이미지는 태어나면서부터 그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본능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행정가와 정치인의 두 가지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김 지사에 대한 대중의 마음은 그리 감동적이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공감하면서도 정치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갸우뚱한다. 끊임없이 정치, 사회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그의 모습에서 정치인의 면모를 찾기도 하지만, 도지사의 임무를 구태의연하게 주장하는 그의 모습에서 주저하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어떤 행위를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왜, 하는지’와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대중들은 이런 상반되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에 대해 막연히 ‘대권을 위한 정치 행위’라는 해석하게 된다. 경기도에서 주목받은 택시 민생체험을 서울에서도 하겠다는 것을 정치적 계산으로 본다.
경기도 지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김문수에 대한 대중의 눈은 긍정적이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확인했다. 열심히 일하는 도지사, 낮은 위치의 사람들과 공감하고 현실적으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는 그의 모습은 과거 새마을 지도자를 연상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는 60년대가 아니다. 이것은 또한 ‘정치인 김문수’가 가지는 임무가 무엇인가에 대해 대중이 가지는 기대이자 의문이다.
대중들은 김 지사에 대해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확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본다. 분명 더불어 편하게 이야기하고, 또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는 도지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를 통해 이 사회의 희망을 찾기는 힘들다. 도지사로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모습은 점점 대중들의 마음을 잡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정치인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심리적 성향으로 볼 때, 김 지사는 현재 현실주의자의 입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에이전트와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려는 휴머니스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일을 단순히 묵묵히 수행하려 한다. 나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이 사람의 특성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 맺는 관계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에 정작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 앞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다른 사람 앞에서 보여지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에 대해 조심하게 된다.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존하는 캐릭터다.
그는 또한 조직의 일꾼이다.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잘하는 대기업 임원 수준에서 잘 발견할 수 있는 특성이다. 최고 인물로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삼성과 같은 조직에서 가장 쉽게 일반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간부의 성격이다. 이런 성향은 놀랍게도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특성이다.
현재 김 지사는 한국 사회에서 포지션을 얻으려 하고 또 이것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고 하는 경향이 높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대중에게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따른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자신의 과업을 그때그때 분명하게 확인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유능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유롭기 힘들다. 그렇기에 더욱 전투를 치르는 군인처럼 우직하게 일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무엇보다 타인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에 둔감하며 잘 모른다. 자신은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머릿속으로 아주 복잡하게 다양한 생각을 하지만, 타인은 그의 속을 잘 알 수 없기에 항상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렇기에 정치인으로 보이는 그의 행보는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정리되고 끝날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