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원을 만끽하며 용평스키장에서 신나게 스키를 타고 있는 모습. |
평창으로 가는 길은 이른 아침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좋다. 그래야지만 매일 아침 피었다가 이내 사그라지고 마는 바람서리꽃을 볼 수 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수정처럼 빛나는 그 꽃을 보기 위해서는 달콤한 잠의 유혹쯤은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 발왕산 정상에서 사람들이 추억을 담고 있다. |
8시30분 첫 운행을 시작하는 용평리조트의 곤돌라를 타면 발왕산 정상까지 15분 걸린다.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3740m의 로프웨이에서 바라본 눈 세상은 숨을 턱 막히게 만들 만큼 아름답다. 해발 1000m 고지를 넘어서면서부터 나무들이 제 몸을 완전히 덮은 바람서리꽃으로 치장을 한다.
상고대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안개나 습기 따위가 나무에 얼어붙어 생긴 산호 같은 설화(雪花)다. 안개가 잦거나 습한 고지대에서 바람서리꽃을 관찰할 수 있다. 발왕산은 계곡을 끼고 있어 상고대의 발생조건에 부합한다.
정상에 이르자 또 다른 풍경이 가슴을 두방망이질치게 만든다. 포근한 솜털 이불을 깔아 놓은 듯한 구름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구름 위로 태백산과 오대산, 계방산 등이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하늘은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발왕산 정상에는 주목들이 모여 터널을 이루고 있다. 천 년을 살고, 죽어서도 천 년을 버틴다는 그 나무다. 주목이 피워내는 꽃들이 햇빛에 부서지며 반짝이고, 멀리 동쪽으로 구름바다 너머 바다가 보인다. 그 감동의 그림에 장승처럼 두 발이 그 자리에 박힌다.
▲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건초주기 체험을 하고 있다. 원안은 명태를 널어 말리고 있는 황태덕장의 모습. |
겨울이 아니라면 규모로 압도하는 삼양목장이 제격이다. 무려 2000만㎡ 넓이로 동양 최대를 자랑한다. 삼양식품그룹의 계열사인 삼양축산이 운영하는 이 목장은 그러나 겨울이면 가는 길이 빙판이 되기 일쑤여서 사륜구동차량이 아니라면 다소 위험할 수 있다. 반면, 양떼목장은 접근이 보다 쉬운 편이다. 구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 뒤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길이 편하다.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약 1.2㎞를 걸어가면 목장이 나온다. 규모는 삼양목장의 100분의 1수준이다. 1988년 풍전목장으로 시작해 2000년 양떼목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목장을 둘러보기 편하게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다. 겨울이면 양떼들이 쉬는 축사에서 건초주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양떼목장 가까이에는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칼바람이 두렵긴 하지만, 평창을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걸어봄직한 길이다. 선자령은 대관령과 곤신봉 사이에 자리한 1157m의 낮은 고개다. 삼양목장처럼 이곳에는 200여m 간격으로 풍차가 서 있다. 선자령 정상까지는 왕복 4시간쯤 걸린다. 경사가 급한 곳이 없어서 걷기에 힘이 들지는 않는다.
평창을 여행하다보면 곳곳에서 황태덕장을 만나게 된다. 감자를 수확하고 난 빈 밭이 겨울에는 황태덕장으로 변신한다. 명태가 흔하던 시절에는 거진이나 고성에서 잡아온 것들을 썼지만, 요즘은 러시아나 북한산이 대부분이다. 명태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뺀 후 코에 꿰어 두 마리씩 엮은 후 덕장에 널어 말린다. 눈과 바람을 맞아가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 황태는 육질이 쫄깃한 게 더덕과 비슷하다고 해서 ‘더덕북어’라고도 한다. 동 틀 때면 황태덕장은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준다. 해가 떠오르면서 황태를 녹이는데, 그 때 발생한 수증기가 안개처럼 덕장에 풀풀 깔리는 것이다. 꾸덕꾸덕 마르는 황태들이 추운 입김을 내뱉는 듯도 보인다.
선자령 외에도 걸어볼 만한 길은 또 있다. 오대산옛길이다. 월정사전나무숲에서 상원사 방향 섶다리까지 총 2.5㎞의 길이다. 기점인 전나무숲은 일주문에서부터 약 1㎞ 이어진다. 최고 370년, 평균 수령 85년에 이르는 전나무들이 울창하게 모여 있다. 숲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월정사는 634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물 제139호로 지정된 석조보살좌상과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이 있다.
옛길은 월정사 부도군을 지나면서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개울 징검다리 너머로 좁디좁은 오솔길이 나 있다. 번듯한 ‘찻길’을 계곡 왼쪽에 놔두고 가는 ‘사람길’이다. 계곡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 땅을 힘차게 딛고 나아가는 나그네의 발자국 소리가 전부인 호젓한 곳이다. 옛길은 섶다리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전나무숲에서부터 약 1시간쯤 걸린다. 그 옛날 스님들이 구도하며 걸었던 길, 그러나 우리처럼 그저 흐르는 나그네들은 종교를 떠나 혼미한 마음을 구원하러 그 길을 걸으면 될 일이다.
한편, 아이들과 함께라면 앵무새학교도 들러보길 권한다. 철분이 많이 함유돼 위장병에 특효인 방아다리약수에서 멀지 않다. 귀여운 앵무새들이 배우다 만 말에서부터 의심의 여지없이 완벽한 인사까지 따따부따 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는 곳이다.
김동옥 여행전문가 tour@ilyo.co.kr
▲길잡이: 영동고속도로 횡계IC→용평리조트→발왕산. 선자령과 양떼목장은 횡계IC로 나와서 456번 지방도에 합류 한 후 대관령북부휴게소 쪽으로 달리면 된다. 가다보면 왼쪽으로 삼양목장 가는 길도 나온다. 오대산 월정사는 진부IC를 이용한다.
▲먹거리: 겨울의 평창은 입맛이 도는 여행지이이도 하다. 눈 맞아 가며 숙성된 황태가 그 첫 번째 맛이요, 차가운 계곡이 키운 송어가 두 번째 맛이다. 그리고 고원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란 한우가 세 번째 맛이다. 황태는 횡계 시내 황태덕장(033-335-5942)과 황태회관(033-335-5795)을 알아준다. 송어는 평창에서 홍천으로 넘어가는 31번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 그 중 운두령마을(033-332-9114~6)이라는 송어집이 있다. 송어회와 회무침, 각종 장아찌가 일품이다. 한우는 영월 다하누촌처럼 싸게 고기를 구입해서 자릿세를 내고 구워먹을 수 있는 대관령한우타운(033-332-0001)이 용평스키장 가는 길에 있다.
▲잠자리: 용평리조트(033-644-5722), 알펜시아리조트(033-339-0000), 용평황토빌(033-644-5722), 올리브콘도(033-336-7222) 등 묵을 만한 숙박업소들이 평창동계올림픽의 주무대인 횡계 쪽에 몰려 있다. 해마다 열리는 눈축제의 주무대 중 하나인 차항마을 쪽에도 펜션들이 많다.
▲문의: 평창군 문화관광포털(http://yes-pc.net) 033-330-2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