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랐다. 자신이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을 이루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이나 아부를 잘 한다. 경쟁이나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의 기세를 제압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구로부터나 얻어낼 언변이 있다.”
과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에서 나름 한 목소리를 하였거나 대표 정도의 위치를 지낸 사람이라면, 이런 특성을 대개 가지고 있다. 몇 주 전에 사퇴한 한나라당 홍준표 전 대표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정치인과 다른 새로운 종류의 정치인들도 있다.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남들이 인정하는 명문대(국내 국외)를 나오고 박사를 받았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거나, 능력 있는 집안이거나 배우자가 있다. 인맥(도와주거나 이끌어 주는 선배나 상사 등)이 좋다는 평을 받는다. 가능한 튀지 않으려 하고, 대세에 따르는 편이다. 남의 지탄을 받거나 비난을 받을 짓을 하지 않는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특성을 가진 정치인의 대표적인 인물은 홍준표 전 대표 이전에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정몽준 의원이다. 사실 정 의원이 무소속으로 정치활동을 한 것은 10년 이상이다. 하지만 대중이 정치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나라당 대표로 등장하면서부터다.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정몽준 전 대표는 정치인으로 아주 낯선 인물이다. 잘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의 전형적인 정치인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이는 그가 한 발언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치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기계’가 되지 않겠는가. 정치판에 오래 있으면 인간성이 황폐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견제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의 통일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올 것이다. 통일은 마치 지진과 같다. 반드시 일어날 것을 알지만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 서민물가를 알아보려고 재래시장에서 일부러 물건도 사 보고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 버스요금 잘 몰라서 송구스럽고 속상했다.”
정치인으로 가진 정치에 대한 정의, 국가 아젠다에 대한 의견, 서민 생활에 대한 심정의 표현이다. 분명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표명하지만, 그것이 주장인지 의견의 표현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렇기에 대중들은 이런 이야기에서 정작 정 의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거나 심지어 그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인상마저 받는다. 그렇기에 그는 비교적 단순한 사람, 꿍꿍이가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정치인이 된다. 신랄한 표현도 없고 그렇다고 세련된 표현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밋밋한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대중이 보는 정 의원의 이미지는 정작 그가 국가 정책에 대해 언급할 때 더욱 본인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인식된다.
“우리나라는 치산치수를 해야 하는데 치산은 했지만 치수를 한 역사가 한 번도 없는 나라로서 하는 것이다. ISD를 이유로 (FTA를) 반대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문명사회인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아들딸이 결혼하면 자식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것 자체가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지, 우리가 지원했으니까 북한이 달라질 걸 기대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천안함 문제는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게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말을 보면 그는 동네아저씨 수준의 편하고 쉬운 표현(비유)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정치인 특유의 선구자적 권위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대중은 본인이 문제 자체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느끼지도 못한다. 정치판에 있지만 정치가 자신의 전부가 되지 않은 사람의 이미지다. 막연히 보수적 입장에서 합리성과 실용성을 노련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다. 대중이 공감하기 힘들다.
사실 이 나라에서 정치인은 서민이 되기 힘들다. 서민의 대표, 서민을 위한다고 나서지만, 대중들은 그것조차도 기만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 사회에서 정치를 한다고 나선 그 자체로 나름 ‘잘난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정치인은 분명 서민과 다르지만 서민들이 좋아하고 그와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몽준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대중이 그를 분명히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그 핵심은 대중이 부러워하는 재벌 자녀로서의 정체성이다. 스스로 서민을 이해하는 듯이 보이려 하고, 또 그런 표현을 하면 할수록, 대중은 그를 잘난 어떤 분이 자신의 우아함과 나름의 초연함을 지키기 위해 대중을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한다고 보게 된다. 정 의원의 경우 이런 함정에 빠져있다. 정치인 정몽준 의원은 이런 정체성의 혼란 때문에 본인은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더라도 대중은 그에 대해 자신의 입장만 고려한 계산된 발언 정도로 취급한다. 결국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으로 인식하려 한다. 대중은 이 사람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거나 자신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나서 줄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단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맞아 그렇지’ 하는 정도의 지지를 얻을 뿐이다.
현재까지 정몽준 의원은 정치인으로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만들었다기보다, 자신이 모시는 사람(?)이나 소속 당에게 충성스러운 정치인 정도가 되었다. 이는 정당정치 붕괴의 시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한 정치인이 어떤 곤란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과거와 다른 ‘출세’의 공식을 잘 보여준 새로운 종류의 정치인들이 직면하게 될 운명이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