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박근혜 전 대표. 대통령 출마를 앞두고 정수장학회 문제를 깨끗이 정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의 설립자 유족들이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재산환원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2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과거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를 국가에 헌납한 고 김지태 씨의 장남 등 유족들은 지난해 6월 “정수장학회는 강제 헌납 받은 주식을 반환하고, 반환이 곤란하면 국가가 10억 원을 배상하라”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이었던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주식양도 청구소송을 냈다.
유족들은 소장을 통해 “1962년 9월 김 씨 소유 문화방송 주식과 <부산일보> 주식 등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로 강제 이전됐다. 이는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7년 “부일장학회의 재산 헌납은 강압에 의한 것이므로 그 재산을 원상회복함이 원칙이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가 내려진 이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김 씨 유가족과 정수장학회의 재산환원 소송 내막을 들여다봤다.
부일장학회는 (주)삼화,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등을 창업하고 2, 3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언론인이자 기업가인 고 김지태 씨가 지난 1958년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당시 삼화고무 사장이었던 김 씨는 5·16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회사 임원 8명과 함께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에 의해 국내재산 해외도피 혐의로 구속됐다. 김 씨는 재판에서 7년형을 구형 받고 다음날 5월 24일 구치소로 찾아온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법률고문이 제시하는 재산포기각서에 날인하였다. 그리고 6월 20일 전 법무부 장관이 계엄사령부 법무관실로 불러 제시하는 재산양도 서류에 날인을 했다. 그렇게 부일장학회의 땅 10만 평과 부산일보 주식 100%, 한국문화방송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100%는 군사정권에 넘어갔다.
이후 1962년 7월 5·16장학회가 출범했다. 김 씨로부터 강탈한 부산일보와 MBC 등이 기본재산이었다. 김 씨의 재산은 국고에 환수되지 않은 것은 물론 국유재산법 등에 따른 절차도 거치지 않고 5·16장학회로 이전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기부승낙서에 김 씨의 날인을 받은 고원증 전 법무장관은 2004년 9월 모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62년 6월께 ‘중앙정보부가 김지태 씨한테서 기부 받아둔 재산을 바탕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라’는 박정희 장군의 지시를 받고 부산에 내려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82년 5·16장학회는 박정희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 자씩 따 오늘날의 ‘정수장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정수장학회는 문화방송 주식 30%와 부산일보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고, 박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을 지낸 최필립 씨(73)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95년부터 2005년 2월까지 약 10여 년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문제는 부일장학회의 재산이 군사정권에 넘어가는 과정이 억압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1988년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변호사)이 변호를 맡아 부산일보 소유권 반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던 이 사건은 당시 서류상으로는 김 씨가 재산을 자진 납부한 것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김 씨의 유가족들은 고인이 된 김 씨의 자서전을 근거로 군부정권이 빼앗아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지태 씨는 1976년 발간한 자서전 <나의 이력서>를 통해 “내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고 맞서는 경우를 생각해 보니 나 개인보다도 우선 산하 기업체 간부들이 희생을 당하는 데다가 기업경영이 엉망이 되어 수천 종업원이 실직하게 될 것이 안타까웠다. 구속된 상태에서 그런 서류(양도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니 석방된 연후에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버티었으나 막무가내로 어느 날 작성해 온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기술했다.
이어 김 씨는 “이렇게 하여 1946년 4월 이래 14년간 애지중지 가꾸어 놓은 부산일보와 만 4년 동안 막대한 사재를 들여 궤도에 올려놓은 한국문화방송과 부산문화방송은 1962년 5월 25일 5·16재단으로 넘어가고 말았고, 이 기본재산을 토대로 하여 5·16장학회가 그해 7월 14일에 발족을 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씨의 장남인 김영구 씨도 모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감옥에 갇힌 상태로 수갑이 채워진 채 포기각서를 쓴 만큼 명백한 강탈”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앞서 ‘부일장학회 재산 강제헌납 의혹 사건’은 2006년 1월 김 씨의 차남 김영우 씨가 “부친의 재산헌납이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해 조사가 이뤄진 바 있다. 위원회는 1년 4개월여간의 조사를 마친 뒤 2007년 5월 29일 이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당시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범죄수사에 수사권이 한정되어 있던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보장과 무관한 김 씨의 혐의까지 수사를 행한 것은 권한남용이다”고 결론지었다. 또 위원회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및 중앙정보부 관계자가 군법회의에서 회사 임원들과 함께 구속재판을 받고 있어 궁박한 처지에 있는 김 씨에게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토지 10만여 평 및 김 씨 소유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 언론 3사를 국가에 헌납할 것을 요구하여 재산을 헌납 받은 것은 공권력에 의해 강요된 것으로서, 개인의 의사결정권 및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위원회는 “헌납재산의 경우 책임의 귀속에 따라 원상회복함이 상당하다고 보고 기본법 제4장에 의거 국가는 피해자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중앙정보부의 수사와 공권력의 강요로 인해 발생한 부일장학회의 재산권 및 김 씨의 재산권 등 침해에 대하여 사과하고,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당시 위원회의 발표에 정수장학회 측은 박근혜 전 대표를 노린 정치적 탄압이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2004년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을 이끌었던 조성래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부산시민의 품으로 재산이 환원되길 바라는 마음에 조사가 이뤄졌지만 당시 조사가 이뤄질 때에도 상당히 힘들었다. 정수장학회에서는 꿈쩍도 안했다”며 “이번 소송이 유족들에 의해 제기된 만큼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