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하면 꺼내드는 ‘자금 조달 카드’ 주주들 손해 감내…파이프라인 진행 경과 설명 등 선행돼야
2006년 기술특례 방식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소액주주 20여 명은 최근 신주 발행을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7월 29일 크리스탈지노믹스는 타법인 출자 등 경영상 목적으로 금호에이치티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약 58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금호에이치티는 크리스탈지노믹스의 2대 주주다. 지난 8월 5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번 신주 발행은 없던 일이 됐다.
그보다 앞선 7월 20일 크리스탈지노믹스 소액주주 20여 명은 크리스탈지노믹스가 현대투자파트너스 에스앤에이치 신기술사업투자조합에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한 건에 대해서도 신주발행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약 22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목적은 회사의 연구개발 및 운영자금 조달이었다. 6월 24일 유상증자 납입이 완료됐다. 아직 재판은 기일이 잡히지 않은 상태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 주주는 주주카페를 통해 “성과를 낼 생각은 없이 돈이 모자란다며 유상증자를 계속해 주가를 하락시키고, 경영권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유상증자를 하는 경영진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금호에이치티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크리스탈지노믹스에 자금을 투입하면, 최대주주인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와 금호에이치티의 지분율은 각각 7.99%와 7.54%가 된다. 0.45%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 셈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2017년과 2018년에도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381억 원의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주가는 유상증자 계획 발표 전인 올해 초 5000~6000원대를 기록했으나, 유상증자 공시 이후엔 3000~4000원대로 주저앉았다. 상장 당시 공모가는 1만 8000원이었다.
#변경‧지연되는 임상에 주주들 신뢰 하락
유상증자와 관련된 주주들의 반발은 최근 크리스탈지노믹스가 잇달아 임상 계획을 변경하면서 불신을 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지난 7월 1일 코로나 환자 대상 카모스타트 임상 2상을 조기 종료한다고 공시했다. 오미크론 하위 변이 확산과 엔데믹 전환 등에 따라 임상 환자 모집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다. 앞서 3월에는 전이성 췌장암 환자에게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신약후보물질인 ‘아이발티노스타트’와 다국적 제약사의 기존 항암제인 ‘젬시타빈’ 및 ‘엘로티닙’을 병용 투여하려던 임상 2/3상 계획을 자진 취하했다. 임상 대상 환자 수가 부족한 게 이유였다.
크리스탈지노믹스가 상장한 이후 신약 성과를 내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15년 22호 국산 신약인 골관절염 진통소염제 ‘아셀렉스’를 국내 허가받았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아셀렉스의 연 매출 100억 원 이상을 목표로 했지만, 아셀렉스 매출은 지난해 53억 원 정도에 불과했다. 업계에서는 골관절염 치료제는 고령층이 복용하는데, 허가 사항에 고혈압을 앓는 사람은 먹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어 의사들이 처방을 꺼렸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가 아셀렉스 외에 상용화한 신약은 없다.
이와 관련, 크리스탈지노믹스 관계자는 “미국에서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아이발티노스타트의) 임상 2상 예상 개발 비용이 240억~250억 원 정도다. 미국에서 하는 간암 대상 임상도 비슷한 규모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비소세포성 폐암이 적응증인 캄렐리주맙(크리스탈지노믹스가 중국 항서제약으로부터 도입한 면역항암제) 허가 임상을 신청할 계획인데, 환자당 1억 5000만~2억 원 정도가 들어갈 예정이다. 단기적인 주가 하락을 우려하는 일부 주주의 주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성과를 내기 위해 증자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0년 6월 기술특례상장한 카이노스메드도 485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6월 결정했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오는 9월 28일이다.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우려가 커지자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카이노스메드는 올해 1분기 기준 20.6%의 자본잠식률을 기록했는데, 투자설명서를 통해 “반기 말까지 32억 4500만 원 이상 순손실이 발생하고 추가로 자본 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리종목에 지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카이노스메드의 지난해 매출은 17억 원, 영업손실은 112억 원으로 신약 라이선스아웃(기술수출) 비용을 제외하면 수익이 나오는 창구가 마땅치 않다.
그러나 투자설명서에서 최대주주인 이기섭 대표가 신주 배정분의 15%가량 참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혀 일부 주주 사이에서는 일반 주주의 부담이 과도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카이노스메드는 지난해 11월에도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20억 원 규모의 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카이노스메드엔 중국에서 지난해 허가받은 에이즈 치료제를 제외하면, 임상 3상에 진입한 파이프라인은 없다. 회사는 파킨슨병 치료제 ‘KM-819’에 대해 2018년 미국 임상 2상에 돌입한다고 밝혔으나 올해 8월 9일에서야 임상 2상 첫 환자 투약을 완료했다. 카이노스메드는 7월 12일 자로 주식 5주를 1주로 병합하는 액면병합을 실시했다. 액면병합 전의 주가로 환산하면 8월 9일 종가는 1213원이다. 유상증자 공시 직전 주가는 2000원대였다.
#자금 조달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올해 유상증자를 결정하거나 완료한 기술특례상장 바이오 기업은 크리스탈지노믹스와 카이노스메드를 비롯해 제노포커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퓨쳐켐, 유틸렉스 등이다. 기술특례상장 바이오 기업들은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아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신약을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을 진행하려면 평균 10~15년이 걸리고,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 원 이상이 든다. 최근 얼어붙은 시장 상황에서 유상증자로 자금이라도 확보하면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들 입장에서는 유상증자를 한다고 해서 이 기업이 결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실적이 안 좋다는 등의 이유로 유상증자를 꾸준히 해온 기업의 경우 더욱 그렇다”며 “임원 보수를 낮추는 등 다른 방법을 쓰지 않고, 유상증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주주들에게 일단은 주가 하락에 따른 손해를 감내하라는 셈이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바이오 업종은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했다.
유상증자로 꾸준히 자금을 조달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한 대표적인 기업이 헬릭스미스다. 헬릭스미스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네 번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5800억 원가량의 자금을 모았다. 그러나 아직 신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헬릭스미스 바이오 신약 파이프라인 중 가장 단계가 빠른 당뇨병성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는 당초 2020년 상용화가 예상됐으나 여전히 임상 3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다. 헬릭스미스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유상증자 자금 등 2643억 원을 고위험 사모펀드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앞서의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인 이득을 보고 유상증자를 하더라도 경영진이 제 살을 깎는 노력을 했는지, 연구개발 상황 등을 주주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왔는지가 주주들에게는 중요하다”며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본 사업과 연계된 사업을 벌여 신약이 상용화되기까지 수익이 나올 구조를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벤처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려면 유상증자가 최선이다. 그러나 학회에 지속적으로 파이프라인에 대한 유효성 데이터를 입증하고 진행 경과를 설명하는 등 신뢰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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