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겨우 열다섯 살 여학생이 내뱉은 말이다. 대화의 장소는 성형외과. 수술 동기를 묻는 의사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연예인의 전유물이던 성형수술이 일반인에게도 유행처럼 번지더니 청소년까지 그 열풍 속에 빠져든 모습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등학생뿐 아니라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초·중등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하나의 트렌드가 된 청소년 성형수술의 세계를 들여다봤다.서울 강남은 성형외과 천국이다. 길목마다 빽빽이 들어선 병원 수만큼이나 유명한 곳도 많다. 그중 쌍꺼풀 수술로 소문난 시온성형외과는 청소년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 정시온 원장은 “예전에는 어린 학생이라 해봤자 고등학생이었는데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많이 찾아온다”며 “쌍꺼풀 수술은 비교적 간편한 편에 속해 문의가 가장 많다. 코도 세워달라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성인에 비해 청소년들은 성형수술 조건이 단순한 편이라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유명 ‘얼짱’ 사진을 들고 와선 똑같이 해달라는 요구가 대부분. 성인의 경우도 ‘누구를 닮게 하고 싶다’는 요구를 하긴 하지만 청소년은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정 원장은 “성인의 경우 성형수술을 결심하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온다. 전문가 뺨치는 정도로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분들도 많아 요구사항도 까다롭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그저 예쁘게만 원할 뿐 세세한 요구는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성형수술 티가 나는 것을 매우 꺼린다고 한다. 정 원장은 “성인의 경우 성형수술을 통해 확 달라진 모습으로 ‘예쁘다’는 칭찬을 받으면 좋아하지만 학생들은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수술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한다. 성장이 미처 끝나지 않았기에 뼈를 깎는 등의 심한 수술은 못해 크게 티가 나진 않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해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 성형수술은 특정 기간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손상섭 아름다운성형외과 원장은 “요즘 고등학생들은 졸업앨범에 상당한 신경을 쓴다. 예쁜 모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일 텐데 이를 위해서 미리 준비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고등학교 졸업앨범의 경우 대부분 봄에 촬영을 하기 때문에 1, 2학년 방학을 이용해 수술을 받는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회복한 뒤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졸업앨범 후 또 한 번 ‘성형 특수’ 기간이 있으니 바로 요즘, 수능시험이 끝난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다. 이때는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새 시작을 앞둔 자녀들에게 성형수술을 선물하는 것이다. 또 평소와는 달리 남학생들도 이 기간에는 성형외과를 많이 찾는다.
하지만 이제 막 10대가 된 어린 학생들이 찾아오면 병원 입장에서도 난처하다고 한다. 섣불리 수술을 받았다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성호 부산 파라디아성형외과 원장은 “최근 성형외과를 찾는 청소년들의 나이가 어려지고 있다.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는 학생들도 있지만 혼자 오거나 친구들과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가 없으면 성형수술을 할 수 없는데 무작정 고집을 피우는 학생들도 종종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또 ‘수술 부위’를 놓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청소년은 신체적 성장이 끝나지 않아 뼈를 깎는 수술은 받을 수 없다. 윤 원장은 “쌍꺼풀 수술은 중학생들도 받을 수 있으나 나머지는 만 18세 이후, 즉 성장이 완전히 멈춘 후에야 가능하다. 그 전에 눈 외 수술을 받을 경우 성장과정에서 모양 변형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은 신체적 성장도 끝나지 않았을뿐더러 판단력이 미숙해 무작정 성형수술을 동경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부모가 나서 자녀의 성형수술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지적하고 부작용 등에 대해 설명해주면 판단에 도움이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작정 성형수술을 반대하고 나서는 것도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손상섭 원장은 “미성년자의 경우 대개부모님을 설득해 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충분한 설명 없이 무조건 수술이 안 된다고만 하면 오히려 반감을 산다. 실제로 수술을 허락하지 않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성적을 떨어뜨리는 학생도 있었다”고 밝혔다.
손 원장은 “자녀가 성형수술을 원할 경우 충분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면 함께 병원을 찾아 상담하는 것이 좋다.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버스로 4시간’ 강원도서 왔드래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박 아무개 양(여·18)은 한 달 사이 성형외과를 세 번이나 찾았다. 그렇다고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니다.
“수능이 끝나고 성형수술을 받으러 친구들과 함께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비용이 비싸 망설여지네요. 우리 반만 해도 벌써 5명이나 쌍꺼풀 수술을 받았어요. 전부 부모님이 대학입학선물로 해줬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성형은 절대 안 된다고 해요. (수술 받은) 친구들이 부러울 따름이에요.”
아무리 간단한 성형수술이라도 수십만 원은 기본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겐 상당한 금액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박 양의 말처럼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것도 안 된다면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기도 하는데 이 역시도 만만치 않은 기간이 필요하다. 다음은 정시온 시온성형외과 원장이 전하는 ‘기억에 남는 학생 두 명의 이야기’다.
평소 눈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여학생이 쌍꺼풀 수술을 받기 위해 몇 달간 횟집 서빙을 하며 돈을 모아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이 학생의 눈은 쌍꺼풀 수술만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 없어 앞트임을 추가해야 했다. 물론 돈이 문제였다. 급기야 여학생은 눈물을 흘리며 연이어 한숨을 내뱉었는데 정 원장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앞트임은 무료로 해줬다”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에서 홀로 버스를 타고 올라온 여학생도 비슷한 경우였다. 4시간 넘게 고생하며 병원을 찾았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 원장은 “수술만 하면 예쁜 눈을 가질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는 학생을 실망시킬 수 없어 70만 원만 받고 전체적인 눈 수술을 해줬다”면서 “이 두 학생의 경우처럼 미성년자다 보니 돈 때문에 발생하는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