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필지에 두 집을 나란히 짓는 일명 ‘땅콩집’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용인 동백에 지은 땅콩집 1호. |
반값에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곧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정상을 수차례 차지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그 유명세만큼이나 말도 많고 궁금증도 불러일으키고 있는 땅콩집의 창시자인 이현욱 소장을 직접 만나 땅콩집의 허와 실을 낱낱이 들춰봤다.
“이월급으로는 능력이 안 된다. 땅을 사서 어떻게 집을 짓나?” 오랜만에 “소주 한잔 하자”며 만난 친구의 고민은 아이들을 마음껏 뛸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을 마련하는 것에 있었다고 이 현욱 소장은 회고했다. 서민이 단독주택을 짓지 못하는 것은 돈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 이 소장은 불과 2초 만에 묘안을 짜냈다고 한다. 돈이 부족하면 두 사람이서 땅을 사면 되고 남은 돈으로 집을 지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땅콩집은 자금이 충분치 않으면서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아주 우연히 만들어졌다. 땅콩집은 1호가 지어진 지 1년 만에 하남, 용인 등 수도권 지역 및 지방을 중심으로 700여 가구가 넘게 지어졌다. 이 같은 호응은 단독주택 시장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건축업계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인기가 높아지면 말도 많아지는 법. 2가구가 한집에 산다는 오해 때문에 부부생활이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땅콩집에 거주하는 이 아무개 씨(41)는 “벽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문제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단독주택은 난방비가 많이 나온다’ ‘2가구 1주택이면 재산분배가 까다롭지 않겠느냐’ ‘남이랑 어떻게 같이 사느냐’ 등 갖은 오해와 소문에도 불구하고 땅콩집 관련 커뮤니티 가입자 수가 올 초 2만여 명을 돌파하는 등 그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적은 비용으로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땅콩주택의 건설비용은 얼마나 될까. 일례로 이 소장의 집이기도 한 땅콩집 1호의 경우 땅값으로 3억 6000만 원, 공사비로 3억 2000만 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설계비와 취득·등록세는 각각 2000만 원씩 들었다. 그밖에 조경이나 기타 잡비로 1350만 원이 지출됐다. 2가구 1주택이기 때문에 총 비용은 옆집과 각각 나눠 부담을 줄였다. 재산세 역시 절반씩 부담한다. 땅과 집은 공동등기이기 때문에 만약 한 집이 나가면서 집과 땅을 팔면 공동 등기자가 바뀔 뿐 불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땅콩집 입주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낯선 이와 마당을 공유하기가 망설여지는 사람들은 가족끼리 땅콩집에 입주함으로써 혹시 모를 우려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안전 문제도 별 걱정 없다는 게 입주자들의 의견이다. 옆집과 한 가족처럼 지내는 구조의 특성상 ‘보는 눈’이 많아서인지 아직까지 커다란 사고는 한 건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땅콩집의 단점에 대해 묻자 한 입주자는 “마당에서 자주 바비큐 파티를 하다 보니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는 다소 ‘엉뚱한’ 답을 내놨다.
땅콩집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비단 아이 딸린 가족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하프 연주, 대형오디오, 대형 스크린 영화감상 등 화려한 취미를 가진 골드미스 등 싱글들이 땅콩집으로 눈을 돌리면서 땅콩집에 대한 열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땅콩집 열풍으로 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있다. 대체 얼마를 벌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계도에 로열티를 붙여 판매하지 않고 대부분 무료로 공개했기 때문에 별다른 이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취재결과 이 소장의 이런 행보는 국내 건축계는 물론 해외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였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소장이 안철수의 무료 백신과 비교될 만한 일을 했다. 이젠 그 친구도 돈 좀 벌어야 할 텐데…”라는 평을 전해왔다.
이 소장은 설계도 무료 공개 이외에도 기타 기술을 각 시공사들에게 전수하는 작업을 해 이목을 끌었다. 이 또한 무료로 진행됐다. 그는 “땅콩집은 애초에 돈 벌 생각으로 한 일이 아니다”라며 “최대한 다양한 설계 사례를 만들고 노하우가 생겨야 공사비도 더 저렴해질 것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행복하게 땅콩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몇 시공사들이 이런 이 소장의 의도와 달리 소비자를 위한 연구를 함께하지 않고 영업을 하는 바람에 땅콩집의 아류 브랜드가 시장에 넘쳐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갑작스레 일어난 땅콩집 신드롬으로 건축주들이 감리 과정에서 의문점이 생길 때마다 시공사보다는 이 소장을 먼저 찾았다. 이로 인해 이 소장은 근 1년간 주말을 반납해야만 했다고 한다. 땅콩집 하면 이현욱 소장을 먼저 떠올리게 되면서 생긴 웃지 못할 해프닝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공 시 발생한 문제는 이 소장과 같은 설계사에게 묻는 것이 아닌데도 무조건 이 소장만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이 소장이 돌연 ‘땅콩집 폐업’ 선언을 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주변의 간곡한 만류로 복귀한 이 소장은 “아이들이 층간 소음 걱정없이 뛰놀게 해주고 싶은 집, 그런 따뜻한 집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정작 내 가족과 지낼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고 토로하면서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시공면허를 획득해 제대로 된 땅콩집 시스템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