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선거 범죄 ‘등’에 포함해 직접 수사…“빈틈 잘 찾았지만” 실제 재판 법원 판단이 관건
#검수완박법에서 ‘등’ 한 글자 빈틈 찾아
민주당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었던 6대 범죄에서 부패와 경제만 남겨두는 검수완박 법안을, 2022년 5월 초 통과시켰다. 하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와 관련한 시행령 개정안을 8월 12일 발표했다. 9월 10일부터 시행되는 검수완박법을 대통령령으로 무력화시키는 대응 조치인 셈이다.
민주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개정 법안에 “검찰이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만 직접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원래 검찰청법 개정안 원안에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중’이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이를 여야 합의 과정에서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으로 수정했다. 법무부는 ‘등’이라는 개념이 넓다는 점을 착안해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중요 범죄’를 재규정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다시 확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부패범죄와 경제범죄의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공직자범죄 유형으로 분류됐던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등 범죄와 선거범죄로 분류됐던 매수 및 이해유도, 기부행위 등 범죄를 ‘부패범죄 유형’으로 △마약류 유통 관련 범죄, 폭력 조직·기업형 조폭·보이스피싱 등 경제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범죄를 ‘경제범죄 유형’으로 △무고·위증죄는 ‘사법질서 저해범죄 유형’으로 각각 재분류해 검수완박법 시행 이후에도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는 시행령 개정안을 8월 29일까지 입법 예고한 뒤, 검수완박법이 시행되기 전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방침이다. 한동훈 장관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 전에 개정법이 시행될 경우를 대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 장관은 시행령 개정안을 놓고 “위헌 결정이 나기 전까지 이 법이 시행됐을 경우에 나올 수 있는 법의 공백과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만전을 기하는 것도 법무부의 일”이라며 헌재 결정을 앞둔 보험적 성격의 조치임을 강조했다.
#법무부-야당 신경전 국감 때까지 계속?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무력화시켰다”며 전면전, 쿠데타라고 강력 반발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또다시 대통령령으로 주요 수사의 범위를 원위치시킨다면 국회와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선전포고를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자의적 법률 해석으로 상위법의 위임 범위를 넘어서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검찰 밥그릇 챙기기”라고 지적하며 “국민과 민생도 검사 자리 챙겨주듯이 확실히 챙겨달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장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 의원이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리자 기자단에 입장을 공유했다. 한 장관은 “깡패·보이스피싱·권력 갑질·마약·무고 수사야말로 법무부가 할 수 있는 진짜 민생 챙기기”라고 반박했다. 또, 해당 자료에서 “서민 착취하는 깡패 수사하고, 서민 울리는 보이스피싱 수사하고, 국민 괴롭히는 권력 갑질 수사하고, 청소년층에게까지 퍼지고 있는 마약 밀매 수사하고, 억울하게 처벌당할 뻔한 무고 수사하는 것이야말로, 법무부가 할 수 있는 ‘진짜 민생’을 챙기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도 이에 발맞춰 16일 마약·조직폭력 등 민생을 어지럽히는 강력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국회 입법권 위에 대통령령이 있다”는 야당의 비판에 대해서는 법무부가 “(이번 시행령 개정은) 국회에서 만든 법률의 위임 범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받아치는 등 법무부와 야당의 신경전은 정기국회·국정감사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대응 경험이 있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여야가 정상적인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면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했다”며 “법무부가 급히 만들어진 법안의 빈틈을 잘 찾아서 유리하게 상황을 타개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이번 결정이 향후 정부와 야당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피의자가 재판에서 ‘위법 수사’ 주장할 수도
자연스레 법조계에서는 정치권이 여야 합의로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법 시행을 20여 일 남겨둔 시점에서 여야의 의견 차이가 팽팽한 검수완박 법안을 놓고 합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때문에 결국 법원의 판단으로, 이번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 카드의 ‘유효’ ‘무효’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안 입법 취지를 고려해 문제가 있다고 보면 문제가 될 소지도 있지만, 대통령령에 따른다는 조항 자체를 충실하게 해석해 본다면 이번 법무부의 결정은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며 “결국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를 받게 될 피의자,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이 사안을 ‘무죄의 이유’로 삼으면서 법원의 판단으로 최종 결정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시행령 개정으로 원래 검찰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가 기소된 피의자가 재판 등에서 ‘위법 수사’를 주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수완박 법안에 규정된 범위를 벗어난 수사”라며 법원에 위헌·위법 심사를 요구하거나 헌법소원 등을 제기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법원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검수완박 관련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권한쟁의심판을 심리 중인데, 헌재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이번 시행령 개정은 무의미해진다.
헌재·대법원에서 모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법무부의 이번 조치를 놓고 대법관들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각자 입법 위헌성, 개별 사건에 대한 위법 수사 여부까지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며 “결국 헌재나 대법원이 판단을 내려줄 때까지 검수완박 법안과 그에 대응하는 이번 시행령 개정은 계속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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